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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박근혜 게이트와 ‘의도하지 않은’ 희망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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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5  1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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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어두운 이야기가 많다. 국가기밀사안의 외부반출, 대기업에 대한 모금 강요, 성형의혹, 마늘주사구입,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침묵, 비아그라. 국정농단으로만 끝나지 않는 정말이지 다양한 막장드라마.

어렵게 만들고 지켜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품격은 아프리카 부족 국가 수준 보다 못하게 떨어졌다. 과연 이러한 사건들을 평범한 외국의 시민들은 대한민국 어디에 국가가 있다고 할 것인가?

학교 불량배들의 삥 뜯기의 국가적 확장판. 과거 아줌마들이 집에서 하던 파마시술의 국가수준으로의 확장.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요구에도 굳건하고 놀라운 침묵.

어두운 이야기가 많다. 요즘 들리는 이야기는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가져온다. 또한 분노를 넘어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암울함은 예상보다 깊다. 대통령은 사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정치행보를 보았을 때 모르쇠로 버틸 것이다. 탄핵정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탄핵의 결과가 꼭 대통령탄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겠지만,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혀 역사에 남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시민들은 분열될 수 있다. 이정도면 되었다고 하는 자포자기 심리. 지쳤으니 자기 자리로 빨리 돌아가자는 정상화론. 보수와 진보의 이념 공세들. 새로운 대선 후보들의 돌발적인 행동. 정당들 간 분열. 사회혼란과 더욱 나빠질 경제. 살아있는 생물로서 정치무대에서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돌발변수들.

현재 모든 미디어 매체들이 죽어가고 있는 권력을 물어뜯고 있고 대통령은 버티고 있다. 게임이론으로 보자면 '겁쟁이게임(chicken game)' 상황인 것이다. 누구 하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를 제기한 뉴스매체들은 대통령퇴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퇴할 수는 없다. 대통령도 지금 분위기에서 하야, 퇴진 하면 정치적 생명만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다. 물러나면 검찰은 죽은 권력의 사체를 발기발기 찧어놓을 것이다. 매주 늘어나는 촛불시위의 시민들 역시 끝을 볼 것이다. 촛불은 ‘4,19 혁명’, ‘6월 혁명’에 이은 3번째 민주화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횃불로 전환될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는 패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좋은 소식도 있다. 이 암울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세 가지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분노해야 하는 것과 분노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배우고 있다. 두 번째로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학습하고 있다. 세 번째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시위의 진화를 배우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랜만에 ‘분노’를 배우고 있다. 무기력한 일상에서 화를 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분노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부여한다. 분노는 무엇이 나쁜가를 이야기 하면서 그래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 거부와 버티기는 분노할 때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지를 명확하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냥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화가 나는 이유를 따져 보게 한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단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미지’로 대통령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분노, 중간 중간의 신호들을 무시했던 것에 대한 분노, 간신배들과 부역자들이 판치는 우리 현실에 대한 분노, 다양한 이유의 분노들이 모여 한국 사회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게 할 것이다.

분노의 이유가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분노의 다원성으로 이어진다. 다원적 분노는 다름에 대한 인정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최근 촛불시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 기업인들이 마지 못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버티면 버틸수록, 자신 있게 촛불을 거부하는 이들과 자부심을 가지고 촛불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이런 과정속에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다툴 수도 있다. 정치는 투쟁이니 그것도 당연한 것이다. 또한 촛불하면 무조건 진보로 규정하는 단순화의 논리가 강화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점을 배울 수도 있다. 보수인사들도 공화국을 붕괴시킨 대통령을 향해 거부의 촛불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촛불과 시위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문제지만 막연한 공포심도 문제다. 시간이 지나고 촛불이 길어지면 특히 경험하지 않고 판단하고 확신하는 경향들이 만들어 온 이념의 추상성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통령과도 싸우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막연한 이념과도 싸워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시위하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11월 19일의 촛불시위에서는 경찰 차량에 꽃 스티커를 달기 시작했다. 국가 세금으로 산 자동차를 부수지 않고 꽃을 달아서 분노를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그리고 의경을 걱정하여 시위가 끝난 뒤 스티커를 자발적으로 떼는 시민들이 생겼다. 11월 27일 시위에서는 떼기 쉬운 꽃 스티커를 달겠다고 한다. 또한 포스트 잇을 사용해서 경찰 버스에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붙이겠다고 한다. 시위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11월 19일 시위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시민들이 시위가 끝이 나자 마주보고 있는 경찰들에게 애썼다며 꽃을 선물하거나 포옹을 한 것이다. 불같이 피가 끌어오를 같은 연배의 경찰관에게 위로를 하면서 분노가 대통령에게 향해있는 것이지 경찰관 개인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민들의 반응에 경찰청장은 버스를 부수는 것 보다는 꽃을 다는 것이 더 좋다고 화답했다. 국제정치학자 액셀로드가 말한 협력에는 협력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시위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국제적인 이슈이다. 동 시대를 사는 다른 이들에게 분노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줌으로서 시위가 다른 형태의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는 미개하지만 시민은 현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과 평판을 높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형해화하였고 퇴행시켰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게 시민들의 분노를 일깨우고 있고 그 해결방식을 진화하게 만들면서 민주주의발전을 돕고 있다. 이 사태를 반드시 암울하게만 볼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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