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13)- 이봐, 그 사이 지구가 또 평평해졌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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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13)- 이봐, 그 사이 지구가 또 평평해졌다는군.
  • 차근욱
  • 승인 2016.11.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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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얼마전, 우연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지구평면협회(Flat Earth Society)와 The International Flat Research Sociey - IFERS 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앗!’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거나 틀린 정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생각하고 있기에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조사를 해 보았다. 뭐, 진짜 세상은 평평할 수도 있으니까.
 

이 분들의 주장은 ① 지구는평평하며 5각형의 모양을 띠고 있다. ② 지구는 안과 밖이 있는 반지 같은 것이다. ③ 남쪽에 치우친 대륙들은 바깥쪽에, 북쪽의 대륙들은 안쪽에 위치한다. ④ 남극은 세계의 가장자리이며, 커다란 산맥으로 둘러 싸여 있다. ⑤ 중력은 지구가 구체라는 잘못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⑥ 높은 데서 지구를 촬용한 사진은 비전문가들 눈에는 구체인 것으로 보인다. 등이 있다.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실들에 대하여 다시금 의문을 갖고 자문해 보고 탐구하는 정신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뭐, 그러니까 이 분들의 이야기를 대체로 정리해 보자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에 대한 상식이나 우주에 대한 담론들은 모두 프리메이슨이나 나사에서 만든 허구의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큰 유리 돔 같은 것으로 덮여 있는데, 이 유리돔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강대국들이 핵 미사일이나 미사일을 개발해 쏘아 올리는 것은 이 유리돔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알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핵미사일 정도로는 깨어지지 않는 유리돔이라고 한다. 그 위에는 지구 위를 돌고 있는 태양과 달이 있고. 그리고 그 위에는 천국이 있으며, 땅 역시 밑으로 내려가면 지옥이 있다는 말씀. 그러니까 우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외계인도 UFO도 당연히 없고, 태양계라는 것이 없기에 달착륙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이야기. 뭐, 달착륙이 거짓말이 아닐까에 대해서는 나도 좀 그렇지 않을까 생각 하지만서두...

여튼 비주류 기독교 계열의 단체답게 매우 교리적이면서도 중세적 마인드의 내용을 토대로 그 이론이 정립되어 있는데, 난 여기에 기왕이면 지구공동설도 함께 정리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어 지구공동설이 빠진 부분은 좀 아쉬웠다. 그러니까... 유리돔 속에 평평하게 만들어진 세상의 땅 속에는 큰 공간이 있어서 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UFO는 땅 속 세상의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 지상세계를 감시하기 위해서 보내는 탐사선이라고. 그 땅 속 세상에는 공룡도 살고 있고, 인류와는 다르게 진화한 평화적인 지적 인류도 존재 하는거다. 나는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가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브렉시트 이전부터도 조금씩은 그랬지만, 세상이 조금씩 어수선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국지 첫 구절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세상은 합해지면 다시 나누어지고, 나누어지면 다시 하나로 합해지기 마련인 탓이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로운 세상에 뭔가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조짐이랄까. 우리네 사는 것도 뭐, 그렇기는 하지. 월급받고 살 때는 자영업을 하고 싶어하고, 자영업을 할 때에는 월급받고 싶어하는 심리랄까.

최근 뉴스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었다. 아, 그 이야기가 정말 허무맹랑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만화를 보면서 건전한 상식이나 보편적 판단력이라는 것이 우리 세상에는 있기에, 말도 안되는 허구라고 생각했던 모든 내용들이 사실은 허구가 아니고 오히려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건전한 상식이나 보편적 판단력이라는 것이 거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우리가 정상이라고 느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실은 얼마나 피땀어린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고 지켜져 왔는지에 새삼 감격하게 되었다. 뭐, 민주주의나 법치주의처럼. 그런걸 이제는 옛날 언젠가의 신화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1999년의 세상에는 세기말적인 혼란스러움이 가득했었다. Y2K로 세계가 핵전쟁에 휩싸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휴거가 곧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노스트라다무스께서 예언하신 앙골라 대마왕이 세상을 절단 낼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뭐,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앙골라 토끼털로 부티 귀티나게 차려입은 뿔달린 대머리 아저씨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을 때, 그 세기말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를 입장의 나는 좀 웃음이 앞섰었다. 좀 허무맹랑했거든. 세상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휴거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이야기가 정말 믿어질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그런 순수함이 많이 부러웠었다. 의심 많은 나의 불신이 답답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정말로, 이제 평화와 풍요의 시대가 막을 내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란 것이 이제는 아주 극소수의 도덕적 인간에게서만 관찰될 수 있는 종교적 기적같은 것이 될 것만 같은.

어쩌면 두려워할 일이 아닐지도 모를, 당연한 일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 것이 세상이고 인간일 수도 있으니까. 나이가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익숙한 세상과의 결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에 가득찬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읽을 때에만 하여도 먼 발치에서 보는 듯, 관조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고, 이미 진행 중이었던 사실을 나만 몰라던 것 뿐이었다. 미래에는 인터스텔라의 앞부분처럼, 우주개발이라는 것은 인류의 오점이었고 세상은 평평하며 천국과 지옥이 이 무적의 유리돔 외부에 존재한다고 학교에서 배울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의 인류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라는 체제 속에서 살았던 때도 있었지만 이것은 경제기반 신분제의 합리성을 외면했던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것이 모두의 상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믿어왔던 것들이,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할지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리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그리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깨달음으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에 의해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코맥 매카시의 ‘The Road’가 떠올랐다. 하지만 왜 안되겠는가. 왜 세상이 꼭 우리가 옳다고만 믿는 것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배우고 노력하며 우리가 이루었던 그 모든 찬란함을 지키고자 애써 왔지만, 역사란 그렇게 무심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1999년의 세기말보다 왠지 더욱 순수해지고 있는 듯한 자신을 느끼며 요즘을 보내고 있던 얼마 전, 우연히 월 스트리트가 찍힌 사진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일렬로 늘어선 성조기가 이렇게까지 멀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순간,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진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제 우주 속 구체에서 평평한 돔 안의 세계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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