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범인(凡人)들의 범인(凡人)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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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범인(凡人)들의 범인(凡人)정치
  • 신희섭
  • 승인 2016.11.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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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뉴스 시청율이 드라마 시청율보다 더 나오는 세상이다. 태블릿 PC를 공개하면서 이번 박근혜-최순실게이트의 중심에 선 jtbc의 뉴스룸은 11월 14일에 시청율 9.289%를 기록하였다. MBC나 SBS의 저녁 뉴스 보다 2배 가까운 시청율이다. “손석희 앵커가 나오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번 게이트를 만든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주장들도 있다. 대통령이 몸소 현실을 드라마보다 더 역동적이게 만들어 ‘다이나믹’코리아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퍽퍽한 현실속에서 시간을 너무 잘 가게 만들어 준다는 것도 있다. 2002년 월드컵이후 대한민국이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환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하겠지 설마 그렇겠어?”라고 생각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해준다는 점도 근거중 하나이다. 이번 사태 관련 패러디가 확대되면서 한국인들의 풍자능력을 극대화해주었다는 점을 들어 고맙다는 주장도 있다. 씁쓸한 반어법.

이 반어법에는 마음속 분노가 담겨 있다. 분노는 집단적이며 복합적이다. 11월 12일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분노는 점점 더 집단적이 되고 있다. 어처구니 없음에 대한 분노.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주는 상실감. 거짓말과 변명만 하는 지도자에 대한 적개심.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지도자에 대한 경멸. 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하나로 응축되고 있다. 촛불집회는 기폭제이다.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 복합적인 분노를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현실이지만 이 상황을 좀 더 큰 틀에서 보자면 부정적인 면 외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현재 상황은 한국인들의 ‘민주주의 세포’를 깨우고 있다. 4.19를 만들고 6월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그 민주주의세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부정의에 대한 분노. 민주주의를 다시 자리 매김하려는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굳건할 것이라는 희망.

우리는 큰 비용을 들이면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있다. 좋은 미래 그림도 있다. 몇 주간 대통령과 국민의 대치가 이어질 것이다. ‘헌정중단의 위험’과 ‘대한민국 역사속의 자신에 대한 평가’와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보수정권 유지’를 논리로 대통령은 강력히 버틸 것이다. 강대강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저항의식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격화될 때 이 분노는 미래를 위한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식전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더 분노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의도치 않게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만든 분노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으로 전환된 역사를 기억해보자.

하지만 현실에서 만날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 분노를 전환해 줄 리더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의 정치리더로서 역할은 이미 끝이 났다. 그럼 대안이 되어줄 리더는 있는가? 어두운 미래 예측의 핵심은 바로 리더부재에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나 야당인 민주당이나 국민의 당 모두는 갑작스런 대통령 레임덕과 국민 분노 앞에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야당들에게 이런 호재가 없지만 지도자들은 손익계산이 서지 않아 공조조차 안 되고 있다.

정치지도자라고 할 사람들은 엉뚱한 행동으로 걱정에 빠진 국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든다. 축구로 비유하면 자살골을 엄청 넣고 있는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대표는 당내 의견 수렴 없이 오전에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저녁에 철회하는 코미디를 했다. 문재인 전민주당대표는 11월 15일 대국민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퇴진운동과 명예혁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정국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촛불시위이후 자신이 혁명을 주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이 여전히 소영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공표했다. 새누리당도 비박과 친박이 나뉘어 눈치 보기는 마찬가지다. 총리로 지명을 받은 김병준 지명자도 국가의 안위를 걱정한다고 하지만 청와대의 제안을 덥석 문 자리에서 자신이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국가를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가와 미래의 국가보다는 현재 상황에 관심이 높다.

추미애 대표는 현재 상황이 정말 걱정이라면 혼자 걱정할 일이 아니다. 만약 다른 야권대표들과 대안을 모색한 뒤 ‘국민과 의회의 이름’으로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면 대통령도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은 야당이 새로운 대안이자 문제해결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문재인 전대표도 자신이 대권의 뜻을 포기한 뒤 이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본인에게 대권이 목표가 아니라 국가재건이 목표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그 진정성을 보여주었다면 국민들을 그를 진정한 지도자라고 여길 것이다. 명예욕이나 권력욕구라는 사심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진정성 있게 국민과 함께 이 시국을 이끌 의지를 보였다면 그는 다시 지도자로 추앙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면을 풀어갈 때 사회각계 원로들의 의견을 듣고 야당대표들의 견해를 청취하며 다양한 국민들의 분노를 겸허히 받아들이는데 누가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지난 4.13총선에서 호남의 거부가 있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그 호기로운 주장을 지키면서 국가를 위해 자연인으로서 자신을 헌신하겠다면, 현재 문제가 해결된 뒤에 국민들은 문재인을 다시 찾지 않겠는가? 다른 정치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상황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다. 위기상황에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에 주변에는 범인(凡人)들만 있다. 그저 평범하게 자기 이속을 차리는 이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국가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범인들의 범인(凡人)정치가 한국정치에 있어 가장 큰 문제이다. 공사를 구분 못하여 이 난국을 만든 대통령이나 최순실도 그저 범인이다. 사심에 차 권력을 전횡한 최순실은 그냥 아줌마일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지도자들도 그저 범인(凡人)들이다. 사심에 이끌린다면 이들도 그냥 아줌마 아저씨에 불과하다.

반어법을 쓰자면 범인들만 있는 이 상황이 국가를 아끼는 국민들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다. 한국정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이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출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시켜준다는 점에서. 진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범부(凡夫)가 아닌 이를 어디 찾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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