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12) - 휴식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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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12) - 휴식이 필요해
  • 차근욱
  • 승인 2016.11.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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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인생은 짧다. 지당하신 말씀. 어느 순간 부터인가, 인생은 짧으니까 1분 1초도 아껴서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이어리에 내일 해야 할 일을 빽빽하게 적어 놓고 흰둥이한테 해당 일정을 입력해 놓아, 때가 되면 알람을 울리게 하여 일정에 따라 빈틈없이 살아가야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뭔가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 예를 들어 계획에 없이 막연하게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를 - 못견디게 되었고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엄청난 초조함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것은 좋지만 강박이 되어서야 쓰나.

일정을 잡을 때면 거의 쉬는 날 없이, 시간의 여유없이 빡빡하게 일정을 잡았다. 일이든 운동이든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일이 없는 시간이 혹여라도 생기면,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잊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하다 못해 무작정 달리기를 하거나 팔굽혀펴기라도 해야 그 허전함을 피할 수 있었다.

빈틈없이 일하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 생각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서는 일 중독자라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사실은 후회없이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중, 얼마 전부터 머리가 멎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생겼다. 그냥 멍 해진달까. 일에 진척이 없달까. 원고를 붙잡고 있어도 도무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시간들.

원고를 쓸 때면 늘 마감이 코 앞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은 생각보다 집요하니까. 그런데 전에는 어찌 어찌 원고를 써 냈는데, 최근 들어서는 마감에 대한 압박만 심하게 받을 뿐, 도무지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시간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저 모니터를 계속 노려보면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시간만 보낼 뿐이다. 원고가 나오지 않는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문장을 쓰는 것 조차 쉽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일을 하거나 책을 봐야만 의미가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쉰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쉰다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나태로만 느껴졌었다. 자칫 30분 정도 늦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흰둥이를 붙잡고 뉴스 기사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일 하는 것이 좋았고 성과를 만들어 낼 때의 존재감이 뿌듯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그보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조금씩 감각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다. 번아웃이었다. 두통과 메스꺼움의 무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그렇다. 나는 휴식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굳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기 보다, 처음에는 여유가 없었고 그 다음에는 모르고 살았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급할 수록 잠시 숨을 돌려가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다.

책을 읽어도 빨리 빨리 요점정리만 하려 들었고, 이야기를 들어도 대화의 결론만을 원했다. 언제였던가. 느긋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곰곰이 생각 속에서 책을 읽었던 때가... 실없는 농담을 하며 마음을 풀어놓는 대화를 한 적이 언제였더라...

해야 할 일은 늘 많다. 내가 하기로 했으니 나의 책임이다. 내가 책임지고 마감까지 끝내야 하는 원고들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난 신뢰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밀려있는 일을 성실하게, 누구보다 빨리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스스로를 질책하며, 늦어지는 원고에 자신을 탓하며.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현을 팽팽하게 당기기만 한다면 결국 끊어지는 법이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몰랐다. 잘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야 알았다. 인생에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쉬어야 다시 자신의 의무와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잠을 적게 자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었고, 빈틈없이 일로만 24시간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리석었다. 가끔은 게으름도, 무위도식도 인생에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야만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도 볼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나쁘기만한 것이 어디있고, 절대적으로 좋기만한 것이 또 어디있던가. 중용이라 그랬다.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는 치기어린 유치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만 옳다고 악쓰는 좁디 좁은 속알딱지로는 세상을 볼 수 없기 마련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인 탓이었을까. 빨리 빨리. 근면 성실. 중용을 잃은 과도한 성과주의. 다 타고 나면 허무만 남는 가열찬 맹종. 그게 좋은 줄로만 알고들 산다. 우리가 배웠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는 과연 쉬고 놀고 웃는 모습의 인간이 담겨 있었던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서 못쓰는 법이다. 모자람도 인정하고 잘잘못도 포용하면서 그렇게 가끔은 천천히 걸으며 함께 앉아 쉬며 놀며 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다. 나는 이제 짬을 내어 쉴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당장이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인정하며 짬을 내어 쉬는 나를 용서하며 살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고수의 인생 비법까지는 범접하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배워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조금은 넉넉한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달콤한 물 한 잔을 전해줄 수 있도록.

아... 아... 그나저나 PPT원고는 또 언제 끝낸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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