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산책 138 / 보수 기준과 감정평가의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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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산책 138 / 보수 기준과 감정평가의 특수성
  • 이용훈
  • 승인 2016.11.11 09: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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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지난 정부부터 ‘규제 철폐’는 경제 활성화 논의 때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기업 경영 환경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 지극히 합리적이고 또 논리적이다. 한 발 더 들어가면 과연 규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운용하는 담당자의 ‘복지부동’이 더 큰 문제였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규제는 과연 억누르기 위한 것일까? 위법과 탈법을 억제하고 상도덕과 경제 윤리를 강제한 것이라면 그 또한 당연히 존속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자중지란으로 업계가 몰락하고 그 폐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면, 무턱대고 ‘규제철폐’ 목록에 올려서는 안 된다.

최근 감정평가업계 가장 큰 이슈는 ‘수수료 기준 철폐’ 논의다. 한 일간신문이 이 기사를 내 보냈고 정책브리핑에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전혀 없다고 반론 보도를 냈다. 이미 업계에도 소문이 무성한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 심지어 탄식소리도 들린다. 이 업계의 밥그릇을 끝까지 움켜쥐려는 집단 이기주의로만 바라봐야 할까.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조목조목 짚어보고 싶은 이유, ‘감성팔이’가 아닌 논리적 호소를 뿜어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감정평가 수수료는 종가제이면서 일부 종량제가 혼합된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면서 기준 수수료를 제시하고 거기에 20%를 할증 또는 할인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수수료 기준은 그 어느 전문자격집단에도 없다. 그래서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할 때마다 ‘왜 유독 감정평가업계만 보수 기준을 부당하게 지켜주고 있는가.’라는 지적을 받곤 했다. 이 보수기준을 손보겠다는 것은 법정 할인 폭을 아예 없애고 하한선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수수료 자율 시장을 만들면 경쟁은 유발될 것이고 수수료가 현행보다 낮아질 것은 당연하므로, 정부든 공공기관이든 은행이나 국민 모두 그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혜택이 아니고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면 어쩌겠는가?

수수료 경쟁을 유도해 더 낮은 수수료에 현행 서비스 품질을 제공할 수 있어 업계를 제외한 만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의 전제는, ‘현행 서비스 품질’이 유지되고 또 그 결과물의 신뢰성도 여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 못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누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감정평가의 특수성’ 때문에 이 시장은 혼돈스럽고 자정능력은 소멸될 것이다.

감정평가업계는 국토부의 감독을 받고 있다. 현재도 잊을만하면 감정평가 사건사고가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뢰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수임구조 탓이다. 부실, 허위 감정 대부분은 능력 없는 감정평가사 때문이 아니고 ‘도덕적, 윤리적 자질이 떨어지는 감정평가사’ 때문이다. 감정평가는 서비스인데 서비스의 원칙인 ‘의뢰인 만족’의 목표를 설정해서는 안 되는 특수성이 있다. 고가 보상을 요구하는 소유자를 만족시켜야 할까? 헐값 보상으로 예산을 절감하려는 국가에 동조해야 할까? 딱한 생계의 현장을 보고 소송평가액을 조정해야 할까? 그 어느 것도 안 될 일이지 않는가.

수수료 경쟁은 덤핑 수임을 증가시킬 것이다. 의뢰인에 경도됐던 것과 유사하게 ‘도덕적, 윤리적 자질이 떨어지는 감정평가’가 득세할 것이다. 일단 돈을 벌고 보자는 세태라면, 일한 만큼 또는 평가액에 대한 위험부담을 질 만큼의 괜찮은 평가서가 나올 수 있을까. 업계가 더 쇠락하고 신뢰성을 잃어버리면, 감정평가가 담당했던 공익적 기여는 무엇으로 보완할 것인가.

감정평가수수료 기준은 감정평가업계의 수입을 지탱하는 기둥이 아니고, 이 업계가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을 받쳐주는 버팀목이다. 규제 철폐 기조 속에 상당 기간 ‘예외’로 남았던 분명한 이유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다급해져 서둘러 나온 항변이 아니다. 요즘, 업계상황이 불투명해 갈수록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많다. 규제 철폐의 바람에 휩싸여 보수기준이 사라지게 되는 날, 감정평가업계는 ‘신뢰’와 ‘공정’이라는 단어를 날려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평가의 본질을 꼭 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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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사 2018-01-24 12:22:05
어떠한 의견을 내려고 해도
나 자신의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는 매도를 이겨낼 수가 없어 입 뻥긋 하기가 어렵던 중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해주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ㅇㅇㅇ 2016-11-11 10:57:58
맞는 말씀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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