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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53)
박준연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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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8  12: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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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클라이언트의 감정과 변호사의 역할

주말에는 간만에 먼 출장을 오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내려 미국 입국 수속을 거치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최근 여권 기간이 만료되어 갱신을 했는데 서류상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다. 여권 갱신을 설명해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얼굴을 들었다.

“미안미안, 상사한테서 이메일이 와서 확인 좀 했어.”
“아 그러니? 입국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했지 뭐야.”
“아니 전혀 상관없고, 이메일 체크만 했어. 미국엔 무슨 일로 왔어?”
“회사 회의가 있어서.”
“무슨 일을 하는데?”
“변호사야.”
“그럼 많이 바쁘겠네?”
“바쁘기도 하고, 근심걱정이 많은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는 게 일이기도 하고 그래.”
“그래? 그거 나랑 비슷하네. (줄서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수속에 시간이 걸리면 다들 나한테 화내고 그러거든.”
“네 잘못도 아닌데 그건 너무했다.”

나는 내성적이라고 공언하는 성격이지만, 또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을 즐긴다. 도쿄에선 흔치 않지만 뉴욕에선 처음 보는 사람과 짧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가끔 있었다.

마침 긴 비행시간동안 이런저런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했는데, 미국 로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슈츠(Suits)', 그것도 변호사들 사이에선 비현실적이라고 특히 악명 높은 첫 시즌의 에피소드를 비행기에서 시청했다. 짐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드라마 한 대목이 겹치면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극중에서 로펌 파트너 변호사인 하비 스펙터는 1년차 변호사인 마이크 로스가 공익변론(pro bono) 안건의 클라이언트에게 감정이입을 하자 이렇게 못 박는다. “우리 일은 클라이언트에게 동정하는 게 아냐. 클라이언트의 감정을 극한까지 자극해서 그게 어떻게 되나 관찰하는 거지. 의사가 환부를 자극해서 관찰하듯이.”

업무의 성격에 따라, 또 접근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형사처벌 여부를 좌우하는 정부 조사나 거액의 배상을 좌우하는 민사 소송은 클라이언트에게 큰 스트레스이지만, 클라이언트의 스트레스에 대해 모든 변호사들이 일관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에게 동정을 하고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변호사의 역할이 아니므로 이런 부분을 건조하게 대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변호사도 많다.

다른 한편, 많은 선배 직원들은 클라이언트, 정확하게 말하면 클라이언트 회사의 임직원들이 정부 조사나 소송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그러한 감정을 최대한 이해하고 또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하비 스펙터의 대사처럼 이런 접근 방식이 반드시 변호사의 업무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실관계 조사는 정부조사나 민사 소송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사실관계 조사에서는 서류 검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클라이언트 회사의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관계를 청취하는 것이다. 이때 처음에는 긴장상태에서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는 부분을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짧은 시간이지만 변호사에 대한 신뢰도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몇 시간동안 질문을 계속해도 진전되지 않던 사실관계 조사가 급속하게 진전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클라이언트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배려도 변호사의 업무라는 주장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신뢰를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네 처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고 또 이해한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기업 내부조사 안건 인터뷰를 하루 꼬박 걸려 마친 후 클라이언트 기업 직원이 선배 변호사에게 “처음엔 내가 믿고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드라마 대사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배울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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