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4) - 과정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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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4) - 과정을 즐기자
  • 신종범
  • 승인 2016.10.28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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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프로야구팀은 이제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가을야구를 하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 가을야구에 초청 받은 팀은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내년 시즌의 두둑한 보상을 보장 받고 신나게 가을 그라운드를 누빈다. 반면, 그렇지 못한 팀은 팬들의 원성을 들으며 내년에도 뛸 수 있을 것인지 불안감을 간직한채 썰렁한 연습장을 쓸쓸히 돌아야만 한다. 팬들도 갈린다. 가을야구를 하는 팀의 팬은 마치 자신들이 경기를 뛰는 것처럼 선수들과 함께 기쁨과 탄식을 나누지만 그렇지 못한 팀의 팬은 그저 남의 잔치의 구경꾼일 뿐이다. 몇년 동안은 구경꾼으로 무덤덤하게 남의 잔치를 지켜 보아야만 했다. 작년에는 응원하는 팀이 승률 5할을 간신히 왔다 갔다 하며 5위를 턱걸이 하는 듯 했지만 끝내 떨어지고 말았다. 5위 자리에 간들간들 하는 모습에 얼마나 속이 터지던지... 결국, 같은 팀을 응원하던 우리 딸은 올 해 팀을 바꿨다. 그리고 그 팀은 올해 아주 여유롭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팀을 바꿀 순 없었다. 머리는 바꾸라고 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원년 어린이회원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마음을 줘 버린 팀을 버릴 순 없었다. 우리 팀은 올 해 한껏 힘을 냈다. 여전히 정규시즌 내내 5할 승률과 5위 자리를 위해 허덕였지만 마침내 5위를 턱걸이했다. 우리 팀은 타이거즈다.

올해 타이거즈는 순위를 치고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쉽사리 처지지도 않았다. 그 어느해 보다도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갔기에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틈틈이 야구를 보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필자가 TV로 생중계를 보거나 직접 경기장에 가는 날은 꼭 타이거즈가 지는 것이다. 이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재빨리 생중계를 틀면 믿었던 마무리 투수는 역전타를 허용하고, 곧 따라잡을 절체절명의 기회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여지없이 병살타를 치고 만다. 그런 일이 몇번 반복되자 ‘내가 보면 지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생중계를 보거나 경기장을 찾는 일이 두려워졌다. 특히, 정규리그 막판과 포스트시즌에 가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니 생중계는 보지 못하고,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애써 모른채 있다가 이긴 경기만을 다시보기로 보곤 했다. 다시보기로 이긴 경기를 보는 것은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경기는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결과를 알고 나서 보니 전혀 긴장감이나 짜릿함이 없었다. 한방 홈런으로 순식간에 역전을 시키는 통쾌함도 1점차 승부에서 상대방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짜릿함도 느끼지 못했다. 반면 베어스를 좋아하는 딸은 TV로 중계를 볼 때도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고 응원 막대를 두드리며 생중계를 보기를 원했다. 베어스 타자가 홈런을 치고, 베어스 투수가 상대 타자를 아웃 시키는 순간 또는 그 반대의 순간에도 아이는 환호 또는 탄식과 함께 응원 막대를 두드리며 방안을 방방 뛰었다. 그런 아이를 말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는 야구의 재미를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경기를 보았지만 결과를 알고 본 필자와 과정을 지켜본 아이 중 누가 야구의 묘미를 잘 알까?

시간이 날 때면 가끔씩 그동안 처리한 사건 기록을 보곤 한다. 야구 경기를 볼 때처럼 승소한 사건 기록은 찾아 보게 되지만, 패소한 사건 기록은 잘 찾아 보지 않게 된다. 승소한 기록을 보면서는 뿌듯함도 느껴지고, 승소의 기운(?)도 받는 것 같지만, 패소한 사건 기록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도 않고 왠지 불길함 마저 느껴진다. 한번은 패소했던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살펴본 적이 있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 보니 결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패소한 사건들을 처리하면서는 그 과정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집중력도 떨어지고 흥미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사건을 의뢰받아 처리하다 보면 그 결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지루한 과정에 지치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처음에 의뢰 받았을 당시의 열정과 투지는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이 때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의뢰받은 사건은 그냥 맡겨진 하나의 일에 불과하고 만다. 기록을 꼼꼼히 여러 차례 살펴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오랫동안의 검색 끝에 사건에 적용할 만한 판례나 법리를 찾아을 때, 밤 새워 작성한 서면을 읽어보며 그 논리정연함에 스스로 만족하게 될 때, 증인신문과정에서 이전 진술과는 다른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 내었을 때는 역전 적시타를 친 것만 같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는 결론이 어떻든 미련은 없다. 알 수 없는 결과에 불안감을 갖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과정에 충실하며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것은 비단 야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과정을 즐기자’는 자세는 더욱 필요해 보인다.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쳐 나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다 보면 합격의 순간은 어느새 와 있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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