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산책 137 / 감정평가 결과 믿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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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산책 137 / 감정평가 결과 믿을 수 있는가
  • 이용훈
  • 승인 2016.10.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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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요 며칠 이렇게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을까. ‘황망함’ 또는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공기 중에 빽빽했다. 시간이 흘러도 이번 일이 주는 불쾌한 ‘잔상’에 한동안 시달릴 것이 뻔하다. 현 정부는 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계점을 한참 넘어서고 회복탄력성을 불능케 할 만큼 부끄러운 일, 곪았던 부분이 이렇게라도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 정부가 암세포가 전신을 뒤덮어 복수로 부풀어 오른 말기 암 환자의 몸이라는 것을 그렇게 지적했어도 권력자는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있기 전 시행에 들어간 ‘김영란법’도 큰 충격파였다. 법인카드로 밥 한 번 먹기가 부담스러워졌다는 목소리,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 돈 내고 밥 먹고 술 마시면 간단한 일인데, 관행의 뿌리는 견고했다. 그 비싼 술값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와야 했다면 안 갔을 접대장소, 애초에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좋지 않았냐고 지적하면, 늘 그래왔고 또 응당 그래야 하지 않느냐 답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 사회가 적응해야 할 문제다.

감정평가업계, 매일 쏟아내는 감정평가 결과물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경매 최초가격이 감정평가 결과물인데 이 숫자를 믿지 말라는 일명 경매전문가의 조언은, 감정평가시점과 경매입찰시점의 시간적 간극을 지적하는 말이다. 행정소송감정인으로 몇 년 소송평가 업무를 하고 있는 필자가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를 만나면, 옆 구역보다 이 구역의 낮은 보상가격을 주장하는 한 뭉치 자료를 받는 게 일상이다. 왜 꼭 저 쪽 목이 좁은 땅과 우리 쪽 맹지를 비교해 놓고 이렇게 부당할 정도로 낮게 평가받았다고 주장하는지 의아하다.

현금청산, 보상평가, 그리고 보상금 증감을 다투는 소송평가에서 재산권의 ‘적정한 가격’을 평가할 때 이해관계인의 주장은 서면으로 때로 집단행동으로 표출된다. 그래도 감정인의 양심, 소신에 따라 평가하고 납품하면 끝난다. 평가 중간 중간 조합, 정비업체, 시공사가 입에 맞는 가격을 요구하는 ‘종전자산 평가’는 가장 피곤한 일이다. ‘비례율’을 맞추기 위해 종전자산을 눌러 달라는 입김이 가장 세다. 누가 자기 재산이 헐값에 평가받는 것을 기뻐하겠는가. 감정평가업계도 ‘상대적 균형이 가장 중요하고 이 평가액이 꼭 시가는 아니다’는 해명을 내놓지만, 외압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해 달라는 닦달 때문에 손을 대게 되면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유자 추천에 의해 보상평가에 참여하는 감정평가사는 이해관계인의 ‘입김’을 외면하기 어렵다. 소유자 추천 감정평가사와 사업시행자 그리고 지자체가 추천하는 감정평가사 간 ‘평가액’을 높고 얼굴을 붉히는 이유가 ‘소신’ 때문이 아닌 건 분명하다. 소유자 추천 감정평가사는 어떻게든 감정평가액을 올리는 성과를 못 내면, 능력 없는 평가사로 ‘추천’을 다시 받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현 감정평가사협회장 당선의 일등공신인 ‘공영제’는 최소수입보장의 취지도 있지만,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감정평가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대변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있고 또 감정인 스스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구약성경 레위기 19장에 재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감정평가에서 ‘세력 있는 자’는 이해관계 또는 친분을 내세워 감정평가 결과에 입김을 불어넣으려는 자다. 이들로부터 벗어나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 사사로운 감정으로 형편을 봐주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천막치고 농성하는 자를 보고 와서 소송감정인이 그 사정이 안타까워 신경을 쓴다고 하면, 자산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자산’을 평가한 것이다.

최근 27회 감정평가사자격시험 합격자 발표 후, 한 과목의 과락비율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논술 시험에서 과락을 이렇게 대량 생산해 낸 것이 출제자와 채점자의 농간(?)이라는 격한 반응도 있다고 들었다. 채점자 입장은 또 다르다고 건너건너 들린다. 기본이 안 된 답안지가 너무 많아 그마저도 너그럽게 신경 써서 채점했다고 하니, 이렇게 인식이 다르다.

이해관계 청정 지역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후에 논리적으로 변명할 수 없는 감정평가 결과물을 내 보낸 감정평가사는 또 다른 감정평가사를 설득하기 어렵다. 최소한 동료를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으면 내보내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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