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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21세기 국가이익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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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21세기 국가이익과 대한민국
  • 신희섭
  • 승인 2016.10.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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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말을 갈아타기로 했다.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전략적 이동. 두테르테의 행보는 예견되어 있었다. 올해 9월 6일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필리핀 마약사범에 대한 재판없는 총살로 인권문제를 지적하자 그는 오바마대통령을 향해 “나는 미국의 애완견이 아니다(I am no American puppet)... 개자식, 내가 욕을 해주겠다(Son of bitch, I swear at you)"라고 욕을 했다. 화가 난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두테르테의 행동은 계산된 행동이다. 그는 영어로 한 번했고 같은 내용을 필리핀언어인 타갈로그어로 하였다. 자국민들이 영어를 쓰는 데도 다시 자국어로 욕을 함으로서 국민들에게 반미정서를 극대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민중주의 정치쇼에 오바마 대통령이 속절없이 당한 것이다.

이 행동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7월 12일에 발표된 남중국해에 대한 상설중재재판소의 결과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남중국해에서 구단선을 주장해온 중국이 중재판결에서 패소한 것을 이용해서, 그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국가들에게 외교적인 지지를 구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지지중심축인 자국민들에게도 활용하지 않았다. 재판승리에 대해 입단속을 시키면서 시간을 벌어왔다. 때가 되자, 그는 미국을 향해서 욕설을 퍼부으면서 중국을 끌어들였다.

두테르테는 동맹관계까지 언급하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에 대해 구애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과의 동맹은 유지할 수 있지만 합동군사훈련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명분은 역시 미국이 필리핀을 그동안 식민지처럼 여겼다고 제시했다. 한걸음 더 나가 테러를 해결하기 위한 소형공격정이 필요한데 이를 중국에서 구매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중국을 방문하기 전 홍콩TV매체인 봉황위성TV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필리핀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군사훈련을 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두테르테의 일련의 행동은 21세기형 새로운 국가이익의 추구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46년 7월 4일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은 이후 친미국가로 분류되어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첨병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필리핀의 국내정치제체제가 독재인지 민주주의인지 보다 필리핀이 가진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중시했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이전 필리핀의 지도자들과 달랐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새로 쓰고 있다.

그의 계산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서 기반한 듯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지속적인 해군기지를 운용하기 위한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어차피 미국은 필리핀에서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과의 형식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중국과 군사훈련까지를 공동으로 수행하며 경제적 지원을 받는 다면 필리핀에게는 일거양득이 된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주장하면서 태평양에서 인도양으로 나가야 하는 처지에 필리핀과의 군사적 유대관계를 만들면 남으로의 이동이 자유로워 질 것이다.

두테르테의 계산대로 중국은 필리핀과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자원을 쏟아 부을 것이다. 이것은 일대일로의 가속화에도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 민중주의를 사용하는 중국 지도자 시진핑 입장에서도 반미선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두테르테는 자신의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면서 미중간 사이를 오가기로 한 것이다. 두테르테는 절대 미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안보 공약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에게 필리핀의 이익이 어느 정도까지 저평가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이익추진은 단지 필리핀 사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과 러시아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2016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아베와 푸틴은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상호 친분을 자랑했다. 서로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해진 아베와 푸틴과 그동안 14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략이후 일본도 러시아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크림반도 제재와 별개로 러일관계를 풀어가겠다고 협의를 해두었고 이를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고려하고 있다. 향후 러시아와 일본의 경제협력규모도 커질 것이다. 러일관계 개선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서방의 러시아 포위를 뚫는 것이다. 또한 민중주의적 짜르인 푸틴의 외교성과로 과시할 만하다. 반면 일본입장에서는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분리해두는 중국견제의 한 가지 수단이다. 또한 대미종속외교를 벗어나는 것을 일본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베의 민중주의 카드이다.

1904년의 러일전쟁, 1945년 8월 소련이 대일전쟁, 냉전기간 미일동맹과 대립했던 기억까지를 떠올리면 현재 지도자간에 이름까지 부르는 러일관계 개선은 아연실색할 일이다. 최근 미일 밀월관계 상황에서는 더욱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러일관계가 개선된다고 해도 일본은 미국을 저버리면서 러시아로 접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안보보호가 주는 외교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은 중국본토의 대만독립반대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그 서막으로 지난 6월 3일 일본의 NHK 교향악단이 타이베이 국립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하였다. 이는 1972년 9월 일본과 국교 단절이후 처음 있는 행사이다. 차이잉원총통은 향후 대만과 일본의 경제협력을 강화해갈 것이다. 아베 역시 대만과의 관계 개선이 중국견제라는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만을 중국의 일원으로 본다면 19세기 말부터 이어져온 중국과 일본의 악연이 새로운 이해관계로 재편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새롭게 지정학이 부상하는 시대이다. 20세기 냉전 시대 지정학은 이념이 지리적 공간을 장악했다. ‘반공’이라는 시대화두를 가지고 미국이 지정학을 이용하면서 국제정치를 운용했다. 새로운 지정학 시대에는 지정적 공간과 그 정치적 의미가 이념보다 중요하게 되고 있다. 게다가 지정학이라는 경제적 요인마저 합세하면서 지리는 정치적 기준과 경제적 기준의 복합적 기준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앞선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지정학은 21세기 국가이익을 결정하는 중심축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게 신지정학시대의 조건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필리핀과 달리 지정학적 중요성이 그리 높지 않다. 게다가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가 되어가면서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하락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본정도로 중요하지 않기에 이슈를 분리하는 외교를 펴기 어렵다. 게다가 그럴 지도력과 기개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북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대처를 위한 핵잠수함 개발논의에서 보듯이 북한과의 통일문제는 커녕 북한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도 지난하다. THAAD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가 강요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21세기 식 국가이익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이 중차대한 시대적 흐름에서 대한민국의 지도력은 한 명의 승마선수와 그 엄마에게 도전을 받고 있다. 외우내환(外憂內患).

‘21세기의 국가이익’이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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