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3) -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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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3) - 부검
  • 신종범
  • 승인 2016.10.14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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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처음으로 부검을 경험한 때가 군법무관으로 임용된 해였다. 당시 보직이 사단 검찰부장을 겸하는 법무참모였다. 사단급에 사건이 많지 않아서 거의 대부분 사건은 밑에 있는 검찰관이 처리하였는데 이맘때 쯤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검찰관이 문을 두드렸다. 머뭇거리더니 부탁의 말을 한다. "참모님, 사망사건 부검을 지휘해야 하는데 결혼식이 얼마남지 않아서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부검을 지휘하게 되었다. 사건은 이미 보고를 받아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병사가 목을 메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유서가 발견되었고, 다른 외상 등이 없어 타살의 의심은 없었지만, 군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혹시 모를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 영장을 신청하였고, 영장은 발부되었다. 영장신청을 하기 전 유가족에게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부검은 군병원에서 진행되었다. 시신은 차디찬 철제 테이블 위에 놓였고, 부검 집도의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부검을 시작했다. 부검을 지휘해야 할 상황이라 긴장감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시신이 차례로 훼손되는 모습에 가슴은 무척이나 떨렸다. 부검 집도의는 마치 고깃덩어리를 대하듯 아무렇지 않게 머리부터 순서대로 부검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설명을 해주었다. 시신은 부검 과정에서 하나 하나 해체되어 나갔고, 조직 일부는 채취되어 정밀 감정을 위해 따로 보관되었다. 부검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신은 대충 봉합되었다. 군에서는 부검시 유가족 대표가 참석할 수 있는데 당시 숨진 병사의 아버지가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간곡히 만류하여 다른 사람이 참석했다. 만류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잘 하지 못하는 술을 한잔 하고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부검을 경험했다.

작년 11월 한 농민이 서울에 올라와 시위를 하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사건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근접 거리에서 직사 살수했고, 물대포에 맞고 농민이 쓰러졌음에도 직사 살수는 계속 되었다. 심지어 쓰러진 농민을 부축하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물대포는 발사되었다. 이 장면은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농민은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뇌출혈에 따른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300여일을 넘게 병원 내에서 투병하다 지난 9월 25일 사망했다.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입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시위진압과 관련한 경찰 책임자 등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고발이 없었더라도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수사는 시작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농민이 사망하자 경찰은 부검을 하겠다고 나섰다. 사인이 불분명하니 부검을 통해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부검은 필요하지 않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각종 자료를 붙여 영장을 재신청했고, 끝내 조건부 영장을 받아냈다. 조건부 영장에 대하여 법원은 조건에 따르지 않으면 집행할 수 없는 ‘일부 기각’ 영장이라고 밝혔지만, 검찰은 강제처분임을 내세워 강제집행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고 백남기씨에 대한 이야기다.

부검에 대한 기억이 생각나면서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을 하려고 하는 경찰이 참 잔인하고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인은 경찰에 쏜 물대포를 직사하여 맞고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것인데 바로 그 경찰이 시신을 해부해 보자고 덤비니 말이다. 고령의 노인이 길을 가다가 폭력배에 맞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장기간 있다가 사망하였는데 그 폭력배가 “고령의 노인이고 자신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부검을 하자”고 하면 유족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 노인을 부검할 것인가? 고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은 법리적으로도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수사기관이 하는 부검은 사망이 범죄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밝히기 위하여 행하여지는데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부검이 중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부검은 다른 강제처분과 달리 피해자에 대한 강제처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고인은 물대포에 맞은 직후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 중 사망하였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다른 원인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그 과정은 의료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의료기록만 보더라도 사망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법원은 상해 피해를 당하고 치료 과정에서 피해자의 과실로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나, 피해자가 원래 지병을 앓고 있었던 때에도 범죄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처음에는 기각하였던 것이고, 장시간 고민하다가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족과의 협의를 조건으로 ‘일부 기각’의 영장을 발부하여 준 것이다. 법원이 적시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영장은 강제집행 될 수 없다. 영장이 강제처분임을 내세워 형식적으로만 조건을 갖춘 것처럼 하여 고인을 부검함으로써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마저 저버려서는 안된다.

얼마전 신문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광고가 크게 실린 적이 있다. 잦은 검찰의 비리로 어느 때보다 그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한 분위기다. 그동안 경찰에게 독자적인 수사권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쪽에서는 경찰권 행사에 있어 아직은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하였다. 이제 그 시기가 되었는가? 고 백남기씨 사건의 발생과 처리과정을 보면 ‘아직은’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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