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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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6.09.27 15: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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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1. 싸우는 이유를 잊어버린 전투 – 영화 <고지전>

영화 <고지전>은 6.25전쟁 중후반에 고지를 두고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는 전투 형태인 고지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애록(AERO-K)고지는 6.25 전쟁 당시 치열한 공방지이었던 백마고지를 모델로 한 가상의 지명으로, 코리아(KOREA)의 철자를 거꾸로 한 AEROK에서 따온 것이다. 애록 고지는 전쟁으로 피폐화된 한반도를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6.25 전쟁 3년 동안 일어났던,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전투는 1951년 초까지만 이뤄졌다. 남은 2년 동안은 휴전 협정 과정에서 일어난 휴전선 근처에서의 국지전만 일어났다. 문제는 이 국지전에서 그 이전 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휴전협상에서 UN군은 군사 분계선을 현재의 군사대치선으로 잡자고 제안하였다. 문제는 당시 군사대치선이 전쟁 이전의 영토분계선이었던 38도선보다 북쪽이기 떄문에 공산군은 38도선의 원상 회복을 주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남북한 군대는 휴전 협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전선에서 더 많은 영토를 얻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수뇌부 측에서는 전쟁을 할 마음이 더 이상 없는데 전선에서는 끊임없이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 51년부터 53년까지의 전투는 부조리 그 자체였다.

영화 초반부, 포로가 된 강은표(신하균)와 김수혁(고수)을 풀어주면서 당시 지휘관인 현정윤(류승룡)은 “너네들이 전투에서 매번 지는 이유가 있다. 그게 뭔줄 아냐? 너희들은 싸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나긴 전투에 지친 강은표는 인민군 간부가 이야기하였던 “싸우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궁금하였고, 마침내 휴전 협정 효력이 발효되는 날 강은표는 지하 벙커에서 현정윤을 만나 그가 죽기 전에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러자 벙커에 숨겨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너무 오래돼서 싸우는 이유도 잊어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저서 󰡔극단의 시대󰡕에서 현대 전쟁의 양상을 ‘총력전’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오늘날 전쟁은 이제 군대의 대표인 국왕이, 또는 전쟁 영웅이 주도하지 않는다. 전쟁의 주체는 국가가 되어버렸으며, 이 상황에서 국민들은 장군이든 일개 병사든 상관없이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동원되는 장기말로 전락해버린다.

누군가는 국가 간의 전쟁에서 명분을 알고, 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 싸우는 이유를 잊어버린 현정윤처럼, 현대전은 일상에서 진행되는 노동처럼 자기 행위의 이유를 상기할 여유를 주지 않고 국민들을 기계 부품처럼 비정하게 다뤄버린다.
 

2. 6.25 전쟁이 만든 대한민국 – 영화 <국제시장>
 

 

 “농사철을 빼앗아, 부모를 도와 밭 갈고 김매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니, 부모는 벌벌 떨면서 굶주리고, 형제와 처자식은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전국시대의 맹자는 전쟁의 비참함을 역설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뿔뿔이 흩어지다’라는 의미의 이산(離散)은 전쟁의 아픔을 표현하는 말이다. 돌아가신 부모님, 일찍 죽은 자식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함께 하는데, 하물며 생사도 알 수 없이 헤어져버린 가족은 덜할까.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윤덕수(황정민)는 6.25 전쟁 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윤덕수의 인생은 어릴 적, 흥남철수 때 피난길 와중에서 자신의 실수로 여동생과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상황에서 시작한다. 선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피난민이었던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한다. 젊은 시절엔 파독 광부로도 생활하고, 가게를 인수한 후에는 대금을 치르기 위해 베트남 진출을 모색한다.

문제의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도 사실 윤덕수가 아내 오영자(김윤진)와 베트남 진출을 두고 싸우는 상황이었다. “덕수 씨 인생에 당신은 왜 없냐”고 다그치는 오영자의 한 마디는,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윤덕수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국제시장에는 현재도 평양식 갈비를 파는 가게가 맛집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부산에는 6.25때 피난온 분들의 삶이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부산에서는 ‘피란수도 부산’에 남아 있는 각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사업에 본격 나섰다. 휴전선 근방 비무장지대가 6.25 전쟁의 참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부산은 6.25 전쟁 당시 민중들의 삶의 흔적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다. 6.25 전쟁이 끝난 지 63년째에 이르러서야 그 흔적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제시장이라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윤덕수의 삶은 비단 윤덕수 개인의 삶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6.25 전쟁을 통해 전통적 사회 질서가 해체된 후, 가족들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민중들의 삶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8.15가 아니라 6.25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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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 2016-12-05 21:46:37
무도 설민석특강 최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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