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고성춘 변호사의 값진실패, 소중한발견(25)-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
고성춘  |  gosilec@lec.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9.27  15:32:5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수험생이라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본적이 있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공부를 이렇게 치열하게 해야 하나, 이 시험을 꼭 봐야만 하나, 달리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안 되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으로 고민해본 적이 잠깐이라도 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은 “다 너 잘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잘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공한다는 것일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돈이 많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일까? 그럼 돈도 없고 지위도 없으면 실패한 인생일까? 공부하기 싫은 자식입장에서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지만, 부모가 공부하라고 하는 참된 이유는 성공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공부를 통해서 얻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많다. 남을 속이는 일들이다. 그러나 공부는 남을 속일 필요가 없는 정직한 일이다. 열심히 하면 한대로, 안하면 안 한대로 정직하게 결과가 나온다. 자기와의 공정한 싸움이다. 솔직히 놀고 싶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유혹에 고민과 갈등도 하면서 설령 좌절이 있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다보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시련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정신과 방법 즉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학교도서관을 나와 친구와 함께 밤길을 걸어갔었다. 그는 기독교를 절실하게 믿는 신자였다. 그런데 그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저 밤하늘만 봐도 하느님 얼굴이 보인다.”고 하였다. 그때만 해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속으로 ‘웃기고 있네’ 하는 식으로 사돈 남 말하듯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였다. 그동안 군대도 다녀오고 나이도 30대가 되는 등, 신상(身上)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계속해서 실패를 했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어디 가서 취직도 못하고, 그런다 해서 공부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앞으로도 못나가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는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하는 답답한 인생이었다. 마치 필름이 돌아가지 않고 한곳에만 정지되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공부하고 있던 절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그곳에서 약 3달 정도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절을 가도 법당 같은 데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별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날 왠지 모르게 아침예불에 들어 가보고 싶었다. 이른 새벽 잔잔히 울려나오는 종소리와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고, 특히 비구니 스님인 무여 스님이 하는 아침 종송(鍾頌) 소리가 너무 좋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이 부분을 할 때 스님의 목소리가 가슴속으로 절절히 들어와서 그동안 맺혀있던 응어리들을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새벽분위기의 경건함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절을 하고 싶어졌다. 절을 하면서 처음에는 ‘부처님, 잘되게 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그것도 자꾸 하다보니까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컸구나’ 라는 참회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절을 계속하고 싶어서 시간상으로는 거의 2시간 가까이 했는데 절을 전혀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가 하면, 절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봐도 무언가 나에게 암시를 주기 위해 오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들로 보였다. 누가 가르쳐 준 일도 없고 누구에게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친구가 말한 ‘밤하늘을 봐도 하느님이 보인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공부를 오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전부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잘되어 보려는 욕망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나만을 생각하고, 남에게 매몰차게 대하기나 하고, 경쟁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모습이 비추어졌다.

고성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최근인기기사
법률저널 인기검색어
댓글 많은 기사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법률저널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2001~2013 LEC.co.kr. All rights reserved.
제호: 법률저널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상연  |  발행인: (주)법률저널 이향준  |  편집인: 이상연  |  등록번호: 서울, 아03999  |  발행일: 1998년 5월 11일  |  등록일: 2015년 11월 26일
주소 : 서울시 관악구 복은4길 50 법률저널 (우)151-856  |  영문주소 : 50, Bogeun 4-gil, Gwanak-gu, Seoul  |  Tel : 02-874-1144  |  Fax : 02-876-4312  |  E-mail :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