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07)-역변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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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07)-역변의 세월
  • 차근욱
  • 승인 2016.09.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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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대학교 3학년일 때 즈음, 우연히 고교시절 가까웠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골목 모퉁이를 돌다가 어디선가 보았던 친숙한 얼굴을 느닷없이 마주한 것이다. 고교시절에 정말 가깝기도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순하디 순한, 착하디 착한 친구였기에 반갑기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밥이라도 먹자며 의기투합하여 국밥집으로 들어갔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교졸업 이후 겪었던 일들에 대해 국밥을 먹으며 이야기 했다. 그런데 묘하게 쎄~한 것이, 이 친구의 태도가 뭔가 안절부절 했다는 것이다. 뭔가 이야기에 집중하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그저 그냥 저냥 건성으로 대답을 하는 것만 같아서 왠지 유체이탈을 한 껍질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찌되었든, 정말 착한 친구와 다시 조우한 나는 오랜만에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신이 났다. 그리고 난 호기롭게 밥값을 지불한 뒤, 슬슬 각자의 집으로 가자고 말하려던 참에 친구가 어색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돈 얼마나 있어?”

돈?

난 조금 적잖이 놀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학교 3학년이 돈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 것이며, 방금 국밥 두 그릇 값을 내고 났으니 얼마 남지도 않았을 돈을 왜 굳이 물어보는 것일까. 게다가 이 친구는 내 기억 속에서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굳은 일, 싫은 일을 도맡아 하던 친구였기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혹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뭐, 그래도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으니 답을 해야지, 싶어 “가만있자.. 지금 한... 천...”이라고 입을 떼었던 그 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친구의 눈이 여름 정오, 거울에 반사된 햇볕처럼 반짝였다.

“삼백...원 쯤 있나?”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렇다. 나의 지갑에는 밥값을 지불하고 정말 천 삼 백원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친구의 얼굴은 실망에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난... 또....” 친구는 한탄하듯 말했다.

“천이라길래, 천 만원 정도 있는 줄 알았잖아.”

둘이는 그럴 리가, 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뭔가, 한참 잘못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이 천 만원이 있을리도 만무했지만, 이 친구가 돈에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요즘 작은 사업을 하거든. 그게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사업이야.” 친구는 조금 쑥스러운 듯, 하지만 익숙한 듯 말을 이어갔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구나. 다단계 판매 유혹에 빠져서 방황한다는 경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법 시간에 배웠던 다단계 사업구조와 더불어서 피해사례가 떠올랐다. 친구는 나에게 애를 써서 자신의 사업과 이 사업이 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난 그저 그 이야기를 흘려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문득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연락이 아주 오랫동안 끊겼던 친구가 다시 연락을 해 올 때에는 예전의 그 친구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선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내 기억 속에 어느 누구보다 순수한 친구로 남아있던 친구였었고,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내 주머니 사정에만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했다.

이미 평가절하한 마당에 그 친구의 이야기를 곁에서 더 듣고 있기가 민망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친구와의 대화를 정리하고 집을 향해 돌아섰다. 왠지 화가 났다. 변해버린 친구에 대해서, 나를 다단계 포섭 대상으로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인해서.

살다보면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간직했던 누군가를 시간이라는 간극 뒤에서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반가움이 가득하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격랑으로 인해 이제는 내가 이는 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주하게 된 변화에 가끔은 놀랄 때도 있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다.

혹시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오스칼’을 기억하시는지. 바로 이 ‘오스칼’의 실제 모델이 있다. 만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참으로 진정한 미남자여서 잘생긴 것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던 유일무이한 꽃미남 미소년이다. 그야말로 세계 3대 미남 중 최고의 미모로 인정받은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누구인가 하면, 아름다운 남자라는 타이틀로 한 시대를 풍미할 ‘뻔’ 했던 스웨덴의 모델인 ‘비요른 안드레센’이다. 그는 15살에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출연하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하지만 시대를 풍미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영화인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시거나, 연예인으로서 화려한 인생을 살기를 원치 않으셨거든.

1955년생이신 이 분이 리즈시절에 얼마나 잘생기셨느냐하면, 미안하지만 준기형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이나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는다(준기형, 미안해). 나야, 남자 잘 생긴 것에 공기속 나노입자만큼도 관심이 없지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분은 음악학도가 되고 싶어 하셨기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몇 작품을 남기지도 않고 연예계를 떠나 피아니스트로의 인생을 선택하셨다는 것과, 나이가 든 모습이 리즈시절의 아름다움과는 조금 거리가 생겨, 많은 여성분들이 실망했다는 평을 내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에는 음악 교사로서 나이가 드신 뒤의 모습도 중후함의 아우라가 충만하셔서 충분히 멋있으신 분인데, 뭐가 그렇게 역변이라는 건지(분위기만 좋두만! 여자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니까. 정말.).

살다보면 자신의 기대와 다른 옛 추억의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는 때도 있다. 어려서 그 친구를 만났던 일은 내게 조금 원망으로 남아 있었던 것과 같이. 왜 그렇게 변해버렸느냐며.

하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단죄한단 말인가.

기억 속의 내 친구도 다단계에 빠지고 싶어서 빠진 것이 아닐 것이고, 조금은 실망스럽게 변해버린 옛 추억 속의 누군가도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그리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살다보니, 살아야 하다 보니 그런 일도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그 친구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을 때, 너무도 쉽게 그 친구를 나쁜 친구라고 단정해 냉정히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두고 두고 미안했다.

물론, 나야 돈도 없고 다단계에 낚여서 파닥거리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어린 나이에 다단계에 빠져서 원래의 맑고 깨끗했던 품성까지 잃어야 했던 친구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럴만한 일이 있었겠지. 적어도 난 친구의 어깨라도 다독여 주며 헤어졌어야 했었다. 힘든 세상살이에서, 친구라는 온기를 전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난 너무나도 어렸고 그만큼 그저 속 좁기만 했던 것이다.

외로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친구는.

나의 속 좁은 작별로 인해서.

음악학도의 길을 걷고 싶어 음악에 인생을 바쳤고 음악선생님으로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온 분께, 너무나 변해버려 실망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힘껏 살아갈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철이 없을 때야 자신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향해 쉽게 비난하고 등을 돌리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리 간단하던가. 돌아보면 그런 오만이야말로 얼마나 부끄럽던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조금은 너그러운 눈으로 사람과 세월을 볼 줄 아는 아량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있던가. 문득, 가을의 밤길을 걸으며 옛 친구의 일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세계 3대 미남이 누구냐구? 후후후, 내 알려주지. 세계의 3대 미남은 바로, ‘비요른 안드레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차근욱’.

죄송합니다. 마지막은 ‘알랭드롱’입니다. 돌 던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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