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1)-수사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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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1)-수사작품
  • 신종범
  • 승인 2016.09.09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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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범죄가 발생하면 고소, 고발이나 수사기관의 인지 등을 통하여 수사가 개시되고 수사기관은 수사를 통하여 피의자를 특정하고 증거를 수집한 후 기소를 함으로써 형사재판이 시작된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중심으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는지에 따라 유, 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정하게 된다. 수사기관에서 수사한 기록은 빠짐없이 수사기록으로 편철되었다가 대부분이 법원에 제출되어 증거로 사용되게 된다. 때문에 수사기록이 어떻게 작성되었는지에 따라 피고인의 유, 무죄 그리고 양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사기록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한다면 그것을 증거로 하여 판단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에 근거한 판단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수사기록이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의도적으로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작품일뿐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는 1987년 민중항쟁 이후로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척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기본권이 제약받고, 정치권력의 부패가 여전했던 시기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위가 자주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최루탄과 곤봉으로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곤 하였다. 당시 시위 도중에 연행된 학생들이 많았는데, 경찰은 연행된 학생들 중 돌과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을 찾아내 재판에 넘기곤 하였다. 당시 함께 시위에 참석했던 A와 B는 같은 장소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조사를 받은 A는 기소되었지만, B는 훈방으로 풀려났다. 돌이나 화염병을 던졌냐는 경찰에 물음에 B는 끝까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A도 처음에는 절대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A를 조사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내리치면서 화를 내더니 나중에는 A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타이르듯 말한다. “학생, 우리가 사진 찍은 것도 다 있어. 학생이 돌과 화염병 수십개 던진 거 다 알거든, 내가 몇 개만 던진 것으로 해줄테니까 그렇게 하자,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결국 A는 수 개의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기소되었다. A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였고, 다른 직접적인 증거들이 없어 재판에서 무죄를 받기는 하였지만, 수사단계에서의 진술 때문에 큰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A를 수사한 경찰은 수사기록을 만든 것이 아니라 A를 범죄자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때로는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형량을 낮춰주기 위한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甲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회사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 수사 도중 빼돌린 회사돈 일부를 사용하여 도박을 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甲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통해 얼마전 검사장을 끝으로 퇴직한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한다. 변호인은 선임계를 제출하지도 않고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청에 전화로 변론(?)을 한다. 강도 높게 진행되던 수사는 강도가 약해지고 장기간 예상되었던 수사는 속도를 내어 진행된다. 곧 甲은 도박 사실은 빠지고 횡령액과 포탈세액은 상당액이 누락된채 기소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면죄부를 주거나 형량을 낮추는 작품에는 수사기관만이 아니라 전관변호사라는 공동작가가 참여하게 된다.

민주화가 진척되고 형사절차에서의 피의자,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가면서 범죄자를 만드는 수사작품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그와 같은 작품은 존재한다.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사작품은 어떤가? 예전에도 드러나지 않은 많은 작품들이 있었겠지만 요즘 공개되는 작품들을 보면 여전히 줄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막장의 모습까지 띠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모는 모습, 권력과 돈에 의하여 수사가 무마되는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 현실에서 목도하게 되면 참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 현직 검사장, 현직 부장판사가 연이어 등장하는 영화와 같은 법조비리 이야기를 현실에서 접하고 있고, 오늘도 뉴스 지면은 잘 나가는 현직 부장검사와 그의 스폰서 친구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필자는 ‘모래시계’ 강우석 검사 이후에 원칙에 충실하고 강직한 검사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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