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상호주의(reciprocity)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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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상호주의(reciprocity)의 양면성
  • 신희섭
  • 승인 2016.09.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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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12월 24일에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벨기에의 이프로지역에서는 영국 원정군과 독일군이 참호전을 펼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양측의 지친 병사들은 참호에서 있었다. 전투가 지속되던 와중에 독일군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100미터 거리의 참호 맞은 편에 있던 영국군인들은 노래소리에 감동을 받았고 그 중 한 영국 병사가 앵콜을 요청했다. 게다가 영국군 부대에 있던 스코틀랜드인이 백파이프로 캐롤에 화답을 한다. 총성이 멈추지 않았지만 감명을 받은 독일군의 한 병사가 나와 ‘사격을 하지 말아달라’고 외치면서 촛불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이 행동은 그 장소에서 싸우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그 자리에서 휴전을 하게 만든다. 독일군 장교가 한 사람 나와서 영국 측에 장교 한 사람이 나와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렇게 만난 양측의 대표는 휴전을 약속한 것이다. 오랫동안 전투가 지속되었고 생사가 오고가는 참호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늘 하루는 휴전을 하자는 협상이 성공한 것이다.

전쟁터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이프로지역의 휴전에 대한 소식은 인근에도 알려진다. 정치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군지휘부와 달리 언제 전쟁이 끝날지 모르는 일반 사병들과 하급장교들은 이프로지역 휴전 소식을 접해듣고 자신의 지역에서도 휴전을 약속하였다. 이렇게 소문이 퍼져나가 휴전을 한 이들이 10만 명에 달했다. 휴전에 합의한 영국군과 독일군은 서로 위스키와 담배를 나누기도 하고 카드게임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영국군과 독일군은 12월 25일 축구경기를 하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참호로 들어가 서로에게 총격을 가하게 되었지만 크리스마스의 이브에 이들은 위대한 휴전을 이룬 것이다.

1차 대전에서 적대국간의 협력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양측은 포격을 하는 시간을 정하고 포격을 하거나, 정해진 방향으로 사격을 하여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일반 병사들에게 적군 몇 사람을 더 죽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렇게 속절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상대방 병사에게도 작동했던 것이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하라’는 상호주의가 작동하여 이기적 인간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전쟁터에서도 인간은 협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호주의 혹은 호혜주의(reciprocity)’는 로버트 액셀로드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상호주의는 아주 단순하게 정의될 수 있다. 상대방이 협력을 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협력을 하고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자신도 배신을 하는 원칙을 가지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일관되게 사용하면 행위자들은 협력의 유인과 배신에 대한 처벌의 비용을 계산하게 될 것이고, 협력이 배신하는 것 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협력을 한다. 앞서 본 1차 대전의 사례들처럼.

일상에서 우리는 상호주의를 흔하게 접한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상호주의를 사용한다. 먼저 밖으로 나오고 그 뒤에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협력으로 사람들은 대중교통 이용시 덜 불편해진다. 광역버스를 타는 곳에서 버스 노선에 따라 관행적으로 줄을 서는 것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는 원칙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막히는 도로의 출구에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제지하는 것은 상호주의를 깬 배신자에 대한 처벌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차가 나고 들어오는 좁은 통로에서는 입주민 누구도 차가 마주하여 막혔을 때 자동차 경적을 누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적을 누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단지 짜증만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인들은 이 좁은 통로에 들어와서는 반대방향에서 차가 들어오면 경적을 누른다. 그래서 경적을 누르는 차를 보면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저차가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통로도 협력의 일상화를 보여준다.

국제정치학에서 상호주의를 이론화한 로버트 액셀로드는 국가위의 상위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라는 조건에서 단지 국가들은 상호주의라는 일관된 원칙에 따라 행동만 해도 국가간의 협력은 얼마든지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생물학에서의 세포간 협력까지를 사례로 끌어들였다.

협력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상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대등해야 한다. 행위자가 대등하지 않고 일방적인 경우는 권력관계가 된다. 대표적으로 일방적인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북한의 공포정치다. 김정은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다. 2015년 4월에는 졸았다는 이유로 군 서열 2위 현영철을 고사포로 공개처형했다. 최근에는 김용진 내각총리를 자세불량이라는 이유로 총살시켰다. 천암함도발과 연평도포격을 주도한 군부실세인 김영철의 경우는 시골농장으로 가는 혁명화처벌을 받기도 했다. 당 간부들은 이처럼 공개처형을 직접 목격하고 혁명화처벌을 경험한 경우 김정은에 대한 강력한 공포를 느끼게 되고 충성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된다. 김정은에 대해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협상수단으로서 협력방안과 처벌 방안이 없다. 그저 어떤 경우에도 협력을 강요당한다. 만약 이 관계를 못 참겠다면? 그때는 이 관계에서 이탈(exit)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얼마 전 태영호 영국공사가 망명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과연 상호주의는 꼭 좋은 결과만을 만들까? 그렇지는 않다. 배타적인 관계에서 약탈적으로 상호주의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배타적으로 연계된 이들은 서로 혜택을 본다. 그 혜택에 대한 피해를 다른 이들이 보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배타적인 특정 집단사이에서의 상호주의가 그렇다. 예를 들어 전관예우는 은퇴를 한 전관들과 현재 법조계가 공모 결탁한 사례이다.

한국 사회 법조계의 결탁관계는 몇 사람들에 의해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사장은 안전장치로 현직 부장판사에 자동차를 팔고 그 판매대금을 다시 돌려주는 방법으로 결탁관계를 만들었다. 이런 약탈적인 결탁관계에는 홍만표 변호사도 연계되어 있다. 현직 검사장 중 비리로 사임을 한 첫 번째 인물이 된 진경준 검사장의 경우도 약탈적인 결탁적 상호주의를 보여준다. 친구인 김정주 넥센대표로부터 비상장주를 특혜매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동안의 검사로서의 역사를 날렸다. 문화체육부장관 내정자가 된 조윤선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남편도 이슈가 되었다. 조후보자 남편은 부인이 국회정무위원으로 있던 18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피감기관인 공정관리위원회와 관련된 사건을 26건이나 수임한 것이다.

상호주의는 약탈적인 연계이건 일반적인 연계이건 확실히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폐쇄적인 조직의 경우 상호주의의 매력은 더욱 크다. 다른 이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우월감 때문이다. 그럼 폐쇄적인 조직에서의 약탈적인 연계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배타성과 폐쇄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사회의 결탁적인 관계들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전된 사회에서 ‘투명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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