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04)-대다모 여러분, 안녕하세요.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104)-대다모 여러분, 안녕하세요.
  • 차근욱
  • 승인 2016.08.23 1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공단기 강사

나는 대다모 회원이다. 대다모가 무엇인고 하니, ‘대머리 다 모여라’의 줄임말이다. 인터넷 카페 이름이라면 그렇구나, 하실라나. 그렇다면 나는 대머리인가? 흠, 대다모 동지분들께는 좀 송구스런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는...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 전체 인구 25%가 탈모인이라는 통계를 볼 때, 좀 불안하긴 하다.

대다모에 가입한 계기는 갑자기 머리털이 우수수 빠졌던 경험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머리숱 많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기억했기에 처음 머리털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경험은 좀 두려운 일이었다. 혹시 죽을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정신적으로 죽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대범한 척을 해도, 사람이란게 원래 좀 그렇다. 제가 죽을 것 같으면 부들부들 떨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머리털이 뽑혀 나갔는데 얼마나 우수수 떨어졌느냐 하면, 군대갈 때 머리깎는 장면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세상에나 무서워라.

탈모는 흔히들 유전적 요인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대머리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전무후무한 탈모사태를 맞이하여 특별 조사팀을 나 혼자 꾸려 철저한 가계조사를 실시하였다. 친가와 외가를 모두 포함하여 얼마나 되시는 조상님들께서 탈모인으로서 지난 격변의 시대를 풍미하셨는지.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오늘의 탈모사태는 적어도 조상님들 탓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성성하신 머릿결로, 수많은 할머니들께 ‘저런 남자랑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드시는 미남자이시고, 어머니께서는 지나가는 아저씨들마저 ‘젊었을 때 참 미인이셨겠네.’라는 혼잣말을 자아내게 하시는 모발풍성 현역 미녀이시다. 그리고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삼단같은 머릿결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헤쳐오셨던 쾌남 쾌녀셨다. 결국 나만 그런거다. 나만...

분명히 주워 온 자식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외모도 그렇거니와 왜 이런 현상까지 벌여졌을까를 심각히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결국은 스트레스인 것이다. 올해 연 초에 나는 정신적인 암흑기를 보냈다. 특히 생각만큼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아 그야말로 초죽음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잠도 잘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원고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글 작업이라는 것은 누군가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서 묵묵히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쓰며 나아가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고독’ 그 자체다. 그러니 마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피만 바짝 바짝 타들어 갔다.

녹화도 마찬가지이고 원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에 쫓기기 시작하면 마음만 더 급해져서 NG도 더 많이 나고 진척도 더 늦다. 원고의 경우에는 정작 내용에 대한 아이디어 보다는 ‘빨리 써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과정은 늪이나 개미지옥 같아서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도 마음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침몰해갈 뿐이다. 질식할 듯한 숨막힘 속에서.

올해 초 취업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사회인들의 경우에도 요즘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스트레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 꿈꾸던 직장생활이야, 자신의 업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가면서 칭찬을 듣고 인정받는 프로패셔널한 생활이었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무능하지만 목소리만 큰 상사는 늘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콤스렉스 덩어리인 선배는 자신의 일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결국 프로다운 모습이나 자신의 업무로 인정을 받기 보다는 상사나 선배의 그날 기분에 따라 마음 편치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짜증만 부리게 되고 결국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만 그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다들 그렇다.

연 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의 경우라면 딱 이맘 때 쯤, 뭔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감정과 더불어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자신의 인생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음을, 자신의 존재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생각에 속이 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상사의 억지 훈계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블라블라블라블라,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 되도 않는 한심한 소리.

최근 20~30대의 탈모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는 어쩌면 이런 우리네 일상이 만들어 낸 자화상 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탈모 샴푸에 탈모 음식에 탈모 치료를 찾지만, 결국 오늘날의 탈모 문제는 우리네 마음에서 빚어진 참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자는 것도 탈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마음이 편하다면 어느 누가 몸에 나쁜 자극적인 음식을 찾을 것이며, 어느 누가 수면부족에 시달리겠는가. 그저 다 우리 사는 모양세가 마음 다치기 딱 좋으니 문제이지.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인생은 당해봐야 아는 것이고 피눈물 흘리며 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이는 어른이 되기도 어렵다. 우리가 초딩이다, 중2병이다 말하는 증상들을 돌아보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세상 경험이 없다보니 유아독존이고 세상만사 만만해 보인다는 것을. 치이고 깨지고 다칠 때야 죽을 듯 아프고 괴롭지만, 그런 과정이 굳은 살을 만들기 마련이다. 철없을 때야 나에게 친절한 사람, 다정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굴 때도 있었지만, 세상 경험 하면서 깎이고 다듬어진 다음에야 말 한마디 다정하게 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감사하던가. 그리고 보면 세상사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기 마련이고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기 마련이니까.

김수현 작가님의 드라마가 80억 적자로 조기종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야 TV도 안보고 드라마는 정말 끔찍하게 싫어하는 인간이지만, 김수현 작가님이 유명하다는 정도는 안다. 그리고 적자에 조기종영이라는 사실이 김수현 작가님에겐 이변이라는 사실도. 일간에선 이를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개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3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고. 판타지로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도 전할 수 없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로 도망치느니 탈모의 헬현실 속으로 뛰어 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괴로운 시절을 거치면서 굳은 살이 박히고 나름의 요령이 생기면 그 때서야 이제 제법 의젓한 사회인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고비가 조금 지나고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니, 우수수 빠지던 머리털도 이제는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결국은 잠 못자고 마음 고생한 탓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심했다. 그렇지 않나. 유전이라면 내가 노력할 여지가 없으니 방법이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노력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니 다행이랄 밖에.

직장생활이 모래알 씹는 맛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도, 자신이 대단치 않은 해변가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실망을 알아 가는 것도, 모두 커가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고 속깊은 눈을 가진 언니 오빠가 된다. 견디는 힘, 이기는 힘도 배우면 배울수록 커지는 법이니까. 가끔은 웃어 넘길줄도 아는 법을 배워가야지.

혹시 앞으로도 마음고생으로 또 탈모가 시작되면 어떻하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뭐 아주 심해지면 빡빡 밀고 시원하게 살테다. 남의 이목 신경쓰며 전전긍긍하고 사느니 유쾌하게 빡빡머리 문어친구가 되어주마!

아! 그런데 나중에 온 몸에 용문신 하기로 했는데, 거기에 머리까지 빡빡이면 싸우나에서 받아 주려나? 흠, 까짓것 안 받아 주면 일본에 온천이라도 가지 뭐. 일본에야, 몸에 용문신하고 머리 민 사람이 설마 나만 있을라구!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