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9)-강요된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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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9)-강요된 화해
  • 신종범
  • 승인 2016.08.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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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지인들과 가족 모임을 할 때면 아이들끼리 잘 놀다가도 최소한 한번 이상은 꼭 다툼이 발생한다. 올해처럼 무더웠던 어느 해 여름날 지인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어른들이 둘러 앉아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한 쪽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노는 쪽에서 울음 소리가 들렸다. 가장 나이 어린 아이가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경기에 질 것 같으니까 나이 많은 아이가 어린 아이의 방망이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 치겠다며 나선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차례이니 당연히 자기가 하겠다고 버텼으나 나이 많은 아이는 힘으로 간단히 방망이를 빼앗았다. 나이 어린 아이는 울음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곧 어른들이 달려 왔다. 모두 친한 지인들이다 보니 사태를 빨리 수습하여 이 난처한 상황을 돌려 놓아야 했다. 나이 많은 아이의 부모는 왜 동생 차례를 강제로 빼앗냐며 아이를 혼냈다. 어린 아이의 부모도 형에게 좀 양보하지 그랬냐며 아이를 혼냈다. 부모들은 이내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빨리 서로 화해하라고 재촉한다. 이 때 어린 아이가 “저 형이 잘못했는데 왜 사과도 받지 않고 화해하라고 해?” 라며 더 큰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게 운다.

‘5. 18. 광주민중항쟁’이 정부에 의해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 잡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5. 18.은 민중항쟁이 아닌 ‘광주사태’로 교육 받았고, 당시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을 언론에서는 폭도라고 불렀다. 그 후 1987년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1988년에서야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자리 매김 되었고, 1995년에 이르러 ‘5.18. 특별법’이 제정되어 1997년에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5.18. 특별법’을 제정할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5.18.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은 5. 18.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이제 화해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5.18. 민중항쟁’에 참여했던 한 인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화해는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자가 이를 용서함으로써 가능합니다. 5.18. 항쟁의 가해자는 사과를 하지 않는데 피해자들에게 먼저 화해에 나서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정부 주도로 ‘화해와 치유재단’이 출범하였다. 재단은 지난 해 12월 한일 양국이 체결한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10억엔(한화 약 1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해 조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재단은 국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채 출범했다. 재단 출범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외침에 출범식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호위 속에 자리를 급하게 떠나던 재단 이사장은 독한 최루액을 뒤집어 써야만 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 또한 재단 출범에 강하게 반발했다. 재단 출범의 계기가 된 한일 합의는 정작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채 이루어졌고, 합의문은 일본의 사죄 보다는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내세울 수 없다는 것(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음)에 방점이 찍힌 듯 했다. 합의 후 일본 총리는 전화 한 통화로 사죄를 하였다고 하고, 일본 언론과 정치인들은 우리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10억엔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껏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정한 사과를 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가해자로서 진정으로 사죄의 마음이 있다면 피해자분들의 상징인 ‘소녀상’의 철거를 그토록 강하게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화해와 치유재단’. 과거를 딛고 미래를 내다보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덜어 주겠다는 재단의 취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심각한 인권 유린의 범죄행위이다. 가해자는 일본 정부, 피해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가 없고, 피해자인 할머니들께서 사과를 듣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화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피해자들이 사과를 받지도 못해 아직도 그 응어리가 남아 있는데 어떻게 ‘치유’가 된다는 말인가? 정부든 그 누가 되었든 불편한(?) 과거를 잊고자 피해자분들에게 ‘강요된 화해’를 요구할 수는 없다. ‘강요된 화해’는 피해자들께 또 한번의 상처를 주는 일이다. ‘화해와 치유재단’은 현재의 상황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께서는 정부의 재단 설립에 반대해 시민 모금으로 운영되는 ‘정의기억재단’을 출범시키셨다고 한다. ‘강요된 화해’를 거부하고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하려는 할머님들께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후손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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