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주선 국회부의장의 법조계와 청년세대 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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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주선 국회부의장의 법조계와 청년세대 향한 이야기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6.08.05 09:50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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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법조인 출신 의원들에 묻다 ①>

“법조인력 양성은 인격·인성 함양 주력해야”
“사시는 보완재로서 역할 할 것, 병존 가능”
“검찰개혁과 청년일자리 위해 발벗고 뛸 것”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20대 국회 국민의 당 박주선 부의장이 본지 인터뷰를 통해 법조계 전반 및 청년세대를 향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검사가 되어 화려한 활약을 펼쳤으나 한 순간에 찾아온 좌절, 그리고 순탄치만은 않았던 의정생활을 겪는 동안 적지 않은 눈물을 흘렸을 그가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겠다”며 긴 이야기를 전했다.

오뚜기, 불사조 등의 별명이 따라붙을 만큼 그가 지나온 삶은 파란만장하다.

그런 만큼 그의 소신은 더욱 심지가 깊게 느껴졌고 여유로운 웃음 뒤의 분명한 생각은 더욱 빛났던 것 같다.

다음은 박주선 국회부의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법조계 전반적으로 국민의 원성을 사는 소식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어떻게 보시는가.

많이 안타깝다. 국가기강을 확립하고 범죄를 단죄해 국민들의 삶을 보호, 보장해야 하는 법조직역은 남다른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역이다. 이런 고위층 법조인들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이제 이들을 ‘범법집단’으로까지 인식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법의 현 주소가 이렇다는 데에 과거 법조직역에 오래 재직했던 입장으로서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고 타성에 젖어 있는 측면이 있다. 나는 이번 20대 국회에서 이런 검찰개혁에 보다 적극적으로 일을 할 생각이다.
 

▲ 국회 부의장실에서 박주선 국회부의장 / 사진 조병희 기자

▶ 법조인력의 바람직한 양성 방안에 대한 문제도 고려돼야 할 것 같다. 사법시험과 로스쿨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가.

사법시험과 로스쿨, 이것 참 만만찮은 문제다. 법조인력의 바람직한 양성은 법조인에 걸맞는 인성과 인격을 갖추게 할 획기적인 방안이 강구되는 것이 먼저고 그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직한 성품으로 정의를 구현하리라는 사명감을 가진 자들을 양산해 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법률가로 양성하겠다는 로스쿨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법조인으로서 일 하는데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모아서 법조직역으로 흡수시켜 버리는 것에는 솔직한 심정으로 우려가 있다. 나라 전체를 생각했을 때 지금 법조계는 사양화됐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로스쿨 진학을 위해 들인 막대한 비용과 준비, 이렇게 해서 법조인을 하겠다고 나와봐야 투여했던 것이 과도했다고까지 이야기 할 정도로 법조시장이 지금 그렇다. 이런 것이 인력 낭비지 무엇이겠는가. 나는 김대중 정부 때 민정수석 역할을 했었다. 당시 ‘민정수석’을 폐지하겠다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기 때문에 명칭이 ‘법무비서관’으로 바뀌었는데 역할은 민정수석이었다. 그 때 대통령 직속으로 사법제도개혁위원회가 출범을 했고 로스쿨 논의도 있었다. 그 때 나는 시기상조라고 반대를 했던 입장이다. 로스쿨이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냐 그것보다는 로스쿨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한 제도가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서민 입장에서 등록금이 얼마다, 수학하는 데 얼마가 든다, 이런 비용 문제는 큰 진입 장벽이다. 우리 사회가 실질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사법시험과의 병존이 맞다고 본다. 양립할 경우 로스쿨의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주축이 되는 제도는 로스쿨이고 사법시험은 보완의 역할로 가면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내 개인 의견이고 우리 당의 당론으로 모아진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논의가 앞으로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우수한 성적으로 법조인이 되기까지 가정환경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이야기가 어찌 보면 우리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사실 내가 선뜻 꺼내지 않는 부분인데, 공인으로서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숨기거나 은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종종 이야기한다. 나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공부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사법시험을 수석했기 때문에 더 주변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던 것 같다. 자란 곳이 시골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현상들을 많이 봤다. 지역 토착 세력들의 횡포와 불의를 수없이 보고 겪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억울한 약자들을 보호하는 검사가 되고자 했다.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강인한 검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정직하고 성실히 공부했다. 강단이 없으면 사람이 정직하기 힘들고 성실하기도 힘든데 강단있게 열심히 했다. 지금도 우리 집 가훈은 “정직과 성실”이다.

▶ 검사 재직 시절 활약상이 대단했다. 검사가 된 과정부터 하신 사건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우리 때는 사시합격자가 연수원 나오고서 법원, 검찰로 다 들어갔다. 나도 법원, 검찰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고민도 잠시 했으나 검사가 오랜 꿈이었고 적성이나 목표도 검찰 쪽에 뚜렷히 있었기 때문에 검찰로 갔다. 나는 검사 생활의 5분의 4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근무했다. 나더러 명검사니 특수통이니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8,90년대 대서특필되는 굵직한 사건들은 다 내가 수사했다. 해군 참모총장 인사비리 사건, 전두환 친인척 관계된 저질연탄 사건, 서울시 교육감 선거부정 사건, 현직장관 부인 구속시킨 안경사협회 사건, 딱지 어음 사기 사건, 204개 건설사 수사해서 처벌시킨 대형건설회사 담합사건 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직도 지금 법사위원장 맡은 권성동 의원은 날 보면 “부장님” 하고 부른다. 특수 2부 때 같이 근무를 했었는데 나는 그 호칭이 참 좋다. 수사를 할 때는 항상 ‘피의자가 승복하고 납득하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사가 정의 구현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수사받는 피의자가 인정을 해야 올바른 실체적 진실이 파헤쳐지고 정의가 구현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사받는 피의자 입장을 역지사지 하라고 강조했고 나도 늘 그렇게 했다. 선후배나 동료로부터 검찰총장 0순위라는 말을 들으면서 검사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다할 수 있던 것은 그런 내 신념에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생각한다.
 

▲ 사진 조병희 기자

▶ 그런데 돌연 정계에 입문하셨다. 사연은.

97년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 대선후보였던 김대중 비자금 사건이라고 있었다. 국정감사장에서 민자당이 폭로를 해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나는 그 때 이것이 순전한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검찰이 휘말려선 안 되고 수사 시점을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검찰총장에게 강력하게 주장하고 건의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수사가 유보됐는데 그 때문인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하고서 나를 법무비서관으로 부른 것이다. 나는 청와대에 가려는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벼르고 있던 김대중 정부에서 검찰을 향한 칼날을 어떻게 휘두를지 두려움이 있었던 검찰에서는 내가 가주길 바랐다. 검찰이 신뢰하는 사람이 가면 검찰도 검찰개혁의 칼끝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검찰이 밀어내고 청와대는 끌어당기고 하니 도리가 없었다. 1년만 하고 돌아와야지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과분한 신임과 총애를 주셨다. “나와 역사를 함께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붙잡는데 검찰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옷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다.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는데 나는 내사했던 경위와 과정을 대통령께 보고하고 그 결과를 검찰총장에게 보냈다. 이것이 사회에 유출된 것이다.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야당의 정치공세와 여론에 굴복한 검찰에 의해 구속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넌센스다. 내사를 종결했으면 피내사자에게 통지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사안인 것을 구속까지 시킨 것이다. 당연히 무죄가 됐다. 그러나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법무비서관직을 사직했고 큰 상처를 받고 날개가 접혀 있었다. 근데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권하는 말이 “젊은 나이에 주저앉을 것 없다. 나라를 위하고 사회를 위해 일하려는 열망을 여기서 꺾지 말고 정계에 입문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16대 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이 되고 정계에 입문을 했다. 정계에 입문하고도 나는 표적 수사의 대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이 된 직후 ‘열린우리당’이 창당돼 야권이 분열됐는데 나는 대통령을 당선시킨 정당이 나뉘어져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권력에 밉보였던 모양이다. 두 번 구속 됐는데 표적수사였으니까 두 번 다 결과는 무죄였다. 그 때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받은 사람이다. 2014년에는 영국 기네스북 한국 위원회에서 인증서를 주더라. ‘최다 구속, 최다 무죄를 선고 받은 사람’이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이 기록이 다시는 깨지지 않기를 염원한다. 이것은 법치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직결되는 일이다. 무죄가 나올 사안으로 구속시켜버리는 일이 민주 사법국가에서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민주 법치국가의 탈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가능한 것이다. 4번 구속돼 쓰러지나 했더니 4번 다 무죄 받고 살아났다고 나를 ‘오뚜기’, ‘불사조’ 그렇게 부른다. 나는 검찰개혁의 계기가 된 장본인이다.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진로가 바뀌신 것인데, 국회의원으로서 이전 법조인 재직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회 역시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법조직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물 국회다, 필요가 없다’ 하는 식의 가차없는 비난을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의원 개개인을 보면 밤낮 가리지 않고 지역구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땀나게 뛰는 분들이 참 많다. 하지만 국회가 합의제다 보니 그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법안 하나를 내더라도 의원 10명 이상을 모아야 하고 법안을 내도 상정 자체가 안 돼버리니. 지난 19대 국회 때도 수많은 사시존치법안이 넘어가질 못하고 법사위에 발이 묶이지 않았는가. 한심한 행태다. 가부간에 표결이 빨리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20대 국회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국회선진화법을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일하고 싶어도 어려움이 있는 구조인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20대 국회는 소모적 논쟁으로 여야 대치하며 당리당략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국회, 일하는 국회가 되도록 부의장으로서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 20대 국회에서 청년세대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실 계획인지. 이들을 향한 격려의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나는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겠다’는 정치 신념을 가지고 정계에 입문했는데, 요즘 우리 청년 세대의 눈물을 닦아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청년 고용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다. 얼마 전에 내 공약이었던 1호 법안을 발의했는데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과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다. 청년고용의무 비율을 상향하고 지방인재채용을 의무화하는 등 국가가 청년고용에 더욱 발벗고 나서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국가가 청년세대를 잘 뒷받침해줘야 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청년 개개인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돌파해 나가야 할 부분도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기를 맞고 알파고 시대라는 등 그에 따라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청년들이 기존에 있던 일자리가 나오기만을 바라면 안 되는 것이 나기는커녕 없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자리를 내가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때다. 얼마 전에 ‘창업국가’라는 책을 읽었다.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700만명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중 22%에 해당하는 사람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고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미국을 제외한 중 40%에 해당하는 상장기업을 가질 수 있었는가. 책은 이스라엘의 부유와 부강은 ‘어려움과 불편’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어렵고 불편한 환경을 더 나은 삶을 위해 신이 자기들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놓여진 환경을 이겨내고 타개하는 것이 그들의 국민성이 됐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그처럼 뛰어난 나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청년들에게 그러한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또 인생 선배로서 얼마든지 청년들이 자기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 박주선(국민의 당, 광주 동구남구을)

 제20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제16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실 법무비서관
 제16, 18, 19, 20대 국회의원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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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쭈선 2016-08-13 10:40:19
사법시험은 로스쿨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존치되어야 할 제도입니다. 하루빨리 통과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와 밑에 사시충이 로스쿨형한테 2016-08-08 18:46:16
맞짱신청함ㅋㅋㅋㅋ
나같으면 사법고시 1차 2차시험점수내기같은걸 하겠는데
저새끼들 둘다 주먹다짐ㅋㅋㅋㅋ
꿀잼 구경하러갑니다ㅠㅜ성님들

zzz 2016-08-08 12:23:25
로스쿨 합격 스토리가 임팩트가 없다뇨 로스쿨 합격스토리는 최소 50년에 걸친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스토리일텐데. 혹시 할아버지나 할머니대까지 올라가면 3세대에 걸친 스토리가 나올텐데 행시나 사시합격 스토리보다 임팩트가 다르죠

2016-08-06 15:31:54
흠 밑에 댓글처럼 사시나 행시합격 스토리는 임팩트기 크지 그시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읽어볼 마음 들정도로.. 근데 로스쿨합격스토리는 읽어보는 사람이나 있나? ㄴㅋㅋㅋㅋㅋ

. 2016-08-06 12:54:34
로스쿨이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냐 그것보다는 로스쿨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한 제도가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서민 입장에서 등록금이 얼마다, 수학하는 데 얼마가 든다, 이런 비용 문제는 큰 진입 장벽이다. 우리 사회가 실질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사법시험과의 병존이 맞다고 본다. 양립할 경우 로스쿨의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주축이 되는 제도는 로스쿨이고 사법시험은 보완의 역할로 가면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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