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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자기 지배' 민주주의의 3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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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자기 지배' 민주주의의 3라운드
  • 신희섭
  • 승인 2016.07.29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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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한 듯 보이지만 한 편으로 복잡하다는 점에서 잠시 쉬었던 민주주의의 논의를 다시 시작한 것은 질문자의 궁금증 때문이다. “지난 번에 우리는 민주주의에는 ‘바람직함’과 ‘실현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작동한다는 점과 ‘바람직함’이라는 기준이 민주주의의 역사에 중요했다는 점에서 논의를 멈추었습니다. 그 주장은 그럴 듯 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람직함이란 정당성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인간의 도덕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바람직함’이 작동한다고 믿기 시작하면 다른 과정을 무시하면서도 바람직함에 매달리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람직함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비판적 인식을 무디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바람직한가의 규범문제는 실제 그것은 가능한가의 문제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지배’를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규범에 기대어 ‘실현 가능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한국에서 진보진영을 비판할 때 보수진영의 논리로써 대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규범적 이해와 달리 현실 민주주의를 작동하는 방안이 약하다는 것도 이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지배’를 강조하는 민주주의가 규범을 넘어서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있습니까?”

답변자는 질문자의 답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민주주의를 ‘자기 지배’로 이해하는 것이 단지 관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만약 자기지배적 민주주의가 관념만에 의존했다면 지난 시간동안 민주주의 논의를 이끌어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논의만으로 인간들이 긴 시간 논쟁과 투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지 않는 인간을 만들려는 노력들은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등의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보수적인 민주주의 구성원리에 저항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론적 논의는 또한 제도적인 보완도 이어져왔습니다. 소외된 이들에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평등을 만들어 주기 위한 교육과 함께 보편적인 선거권과 평등선거를 부여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작은 단위에서 여전히 실시되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역시 인민들이 스스로 정치에 나서서 공동체의 일을 결정하게 만들려는 시도들입니다. 추첨과 같은 제도를 활용해서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적인 선거제도를 통한 대표선발을 피하는 시도도 있습니다. 시민들이 배심원이 되어 사법적 판단을 포함한 공동체의 공적인 문제에 대한 개입과 공공선을 만들어 보려는 것도 민주주의에 공동체적인 의미 즉 인민이 집단적으로 자기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마치 ‘당위 vs. 실체’논쟁처럼 단순화하는 것은 ‘당위’를 쳐내기 위한 전략이며 현실을 오도하게 합니다.”

질문자는 이 답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민주주의를 ‘바람직함과 당위’라는 기준과 ‘실현가능성’이라는 기준으로 구분하고 현실에서는 조금도 가능하지 않으니 당위는 의미없다고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은 물질세계로 이루어진 ‘현실’과 함께 이것을 이해하는 ‘관념’의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을 바라볼 때 관념이 현실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실체와 관념이라는 두 개의 세계에 끼어있는 존재죠. 1987년에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중산층이 나선 한국의 사례는 관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궁금한 것은 바람직함과 당위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바람직함은 당위의 문제로 가치 판단의 문제인데 이것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 것인지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인간들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당위와 도덕의 기준이 다른데 이 다른 기준을 사회적인 제도구축의 기준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얼마 전 터키에서 군인들이 현 대통령의 정치적 부패를 문제 삼아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살리겠다고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많은 터키 시민들은 쿠테타라는 방식을 거부했고 쿠테타 세력에 저항을 하여 6시간 만에 쿠테타를 좌절시켰습니다. 대통령인 에르도안의 행적으로 볼 때 군인들의 저항에는 도덕적인 명분이 있었습니다. 종교적 민중주의를 민주주의로 오해한 이들을 환몽하게 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고 종교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세속의 문제로 정치를 운영하게 하자는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분은 정당했는지 모르지만 그 방식은 합법적인 방식이 아니었고 시민들은 이 방식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 있는 국가에서 법질서의 합법성을 따르는 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할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은 비합법적인 것이 되어 버릴 것이고 합법성의 틀 안에서는 체제 변화를 시도 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인 터키에서 군인들의 행동은 도덕적인지 여부는 어떤 입장에 서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아랍에서 일부다처제를 둔다거나 여성교육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보편적인 인권의 기준에서는 도덕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람직함이라는 기준이 어떤 이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한다면 개인이 아닌 사회가 바람직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기준들 간의 충돌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자기 지배’를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가치 다원성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으며 다원적인 현대 사회의 운영방식에 적합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즉 바람직하다는 점에 대해 결국은 의견이 다르면 합의를 해야 할 것이고 다양한 이들간 도덕적 기준 차이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무엇이 자기지배인지를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결국 바람직한지 여부를 다양한 가치 기준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어떤 기준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가의 다수결주의로 결정하게 되겠죠. 그러면 ‘자기 지배’는 더 많은 이들의 자기 지배이지 모든 이의 자기 지배는 아니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고려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관계입니다. 만약 민주주의를 자기 지배로 이해하면 자기 지배가 관철된 ‘결과’중심으로 민주주의는 평가될 것입니다. 일정한 수준의 결과를 강조하는 경우 그 결과를 달성해야 올바른 민주주의가 됩니다. 올바른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 성과가 강조될 것이고 이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수의 인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가진 도덕적 기준으로 결과 즉 성과를 만들어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이 대목에서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화팀의 김성근감독을 생각해 봅시다. 김성근감독은 성인인 프로야구선수들을 아이들 다루듯이 훈련을 시키고 선수운용을 게임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다룹니다. 만년하위 팀인 한화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프로야구선수들의 자율성을 무시하죠. 이런 성과위주의 전략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3가지로 복잡해진 질문에 대해 답변자는 답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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