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람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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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람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6.07.29 14:0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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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한번씩 시침, 분침이 멈춰 버리는 시계가 불만이다. 시침·분침이 없는 전자시계라면 가끔씩 다른 시각을 가리킨 채 미동도 않는 시계바늘에 대한 답답함을 말끔히 해소시켜 줄 것 같았다.

일순간은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법 하다. 수명 다한 건전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시계바늘에 모든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시계도 건전지 기타 전기저장장치를 쓰는 이상 반드시 언젠가는 멈춘다. 시계바늘 시계나 전자시계나 근본은 같기 때문이다. 시계를 멈추게 하는 건전지가 문제다.

언젠가 나향욱 사건을 두고 고시 제도의 폐해를 다루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어려운 시험인 고시가 그것을 통과한 사람들로 하여금 특권 의식을 갖게 하고 뭇 사람들을 자기 발아래 차이는 못난 사람들, 심각하게는 개 돼지 쯤으로 인식하게 만든단 것이다. ‘나향욱과 같은 인간상은 고시가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사람이 문제가 아닌 제도가 문제라고 결론짓는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뿌리깊은 유교 의식을 바탕으로 한 학문 숭상의 색채가 짙은 민족이었다. 고시 합격자가 합격에 대해 스스로 갖는 건전한 정도의 성취감을 넘어서 품게 되는 그릇된 우월감은 태반이 그런 우리 사회가 안겨주는 것이라 본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라고 다그치고 부추기는 부모, 공부 잘 한다고 좋아하며 따라주는 친구들, 심지어 고시 합격한 사람이라는 한 마디면 일면식도 없던 지나가던 사람까지 친한 척을 한다. 그렇게 매몰차게 냉대하던 짝사랑 대상이 고시 합격하면 제 발로 찾아오더란 사례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우리 국민 의식 전반에 공부 잘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동경같은 것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고시가 없으면 이런 현상이 사라질까. 공부 못하는 사람에 비해 자기를 우월하게 여기고 끼리끼리 뭉쳐서 특권의식을 견고히 하는, 그런 현상들이 사라지겠냐는 말이다.

보다 가까운 예로, 사법시험 대신 도입한 로스쿨에서는 동일한 현상이 안 생길까. 로스쿨 일원화가 됐을 때, 과연 정말 로스쿨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로스쿨 나온 사람끼리 어떤 공통분모로든 무리지으며 구분된 특권 영역을 만드는 일들이 사라질까. 최소한 사법시험 시절에 비해 줄어들기라도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고시제도와 상관없이 공부만 중시하는 사회의식은 일찍부터 많이 지탄받아왔고 자정작용이 이루어져왔다. 그래서 지금은 비교적 많이 나아졌다고 본다. 공부 잘 하는 것에 아이의 가치와 인생이 달린 양 세뇌하는 극성 부모들도 요즘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고 친구들로부터의 인기도 공부 잘 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공부 잘 하면 더 인기 없어지는 분위기도 종종 보인다. 누가 고시 합격했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알도록 휘황찬란한 플랜카드를 걸어 다는 일 역시 부쩍 줄었다.

나향욱이 고시가 만든 인간상이라면 고시와 관계 없는 영역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답을 고르는 형식의 시험이 아닌 예술이나 요리, 문학 등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남들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시, 무시하는 현상들은 나타난다.

또 고시가 아직 있는데도, 우스꽝스런 특권의식으로 사람 위에 군림하려던 인간 유형들은 국민 의식 전반이 바뀌어감에 따라 이전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

사람이 문제지 시험 제도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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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인거야 2016-07-30 00:14:21
아래 글쓴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나향욱씨나 진경준씨의 문제를 엉뚱하게 고시 출신의 문제로 모는 건 방향이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기득권층의 사상적 돌연변이로 보아야 하고 인간 윤리의식의 타락이라고 봐야 하죠.이런 종류의 인간성 타락 문제는 로스쿨 제도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제도로 고착화시킬 겁니다.

지나가다가 2016-07-29 23:22:57
과연 공부가 문제 일까. 저는 아닌것 같네요. 요새 공부로 인한 특권의식이 줄어든건 그만큼 개천에서 용되기가 힘들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친하게 못지내게 하는 부모들. 학교에서도 부모님 직업이나 돈으로 자랑하거나 무리끼리 나뉘어 지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공부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의 아이들로요. 나향욱도 고시로 인한특권의식보다 지금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게 크다고 보내요. 자신의 자식과 구의역 사고사를 당한 청년의 시작점이 다르다라고 말한것만 봐도 그러네요

ㅇㅇ 2016-07-29 15:31:49
근데 로스쿨은 제도도 문제고 사람도 문제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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