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춘 변호사의 값진실패, 소중한 발견(17)-슬럼프에 빠지는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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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 변호사의 값진실패, 소중한 발견(17)-슬럼프에 빠지는 이유(3)
  • 고성춘
  • 승인 2016.07.26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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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경우이고 한 선배의 경우는 자력(自力)으로 잘 되지 않다보니 타력(他力)으로라도 누군가 자기를 구속시켜 주기를 바랬다. 그러면서 군대를 다시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산다는 자체가 큰 짐으로 느껴지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 듯이 몰려 올 때는 이것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병중에서도 무상병(無常病)이 무섭다. 우울증도 이 병의 증상 중의 하나이다.

인생이 무상하다해서 살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말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아도 결코 텅 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기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압의 변화에 의해서 태풍도 만들어지고, 폭우도 내리고, 번개와 천둥이 치듯이 이 세상에는 묘한 힘이 숨겨져 있다.

그것을 이름 붙인다면 순수에너지일 것이다. 그것은 일정한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듯이 이 파장에 우리가 주파수를 맞추게 되면 시공의 개념이 모두 없어지면서 모든 세계, 모든 사람, 모든 만물에 다 통하게 된다. 이게 진짜 만국공통어이다. 영어도 중요하지만 이런 언어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감동적인 사연을 듣게 되면 눈물이 나오는 것도 다 이런 파장을 느끼기 때문이다. 기도라는 것도 그 주파수에 나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가 순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를 한다든지, 참선을 한다든지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다.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가 모두되고 모두가 하나되며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일체이고 일체가 하나되며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한티끌 가운데에 대우주 잉태하고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대우주 티끌마다 낱낱이 또한 같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다”

공자의 말씀처럼 설령 남으로부터 패배자로 취급되어진다 하더라도 화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즉 냉정하고 왜곡된 시각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수행의 단계가 한층 더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상사는 것이 외관이 중요하다 보니까 돈이나 지위,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 벌써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오죽했으면 정승집 개가 초상나도 문상을 간다고 할까. 그런 것이 없으면 서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잘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나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중요하다하지만 본능을 뛰어넘을 정도가 되려면 자신의 유전자를 몇 번은 바꿔야 할 정도로 강한 정진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니 대부분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하느님, 부처님 말씀이 옳다고 100%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 마음이 움직여서 행동으로 나오기까지는 0.01%의 틈이라도 있으면 갈등을 하게된다. 그 0.01%의 빈틈이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 바로 그 0.01%가 잘되고 싶은 마음이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되고 싶은 마음에 돈, 지위 등을 추구하는데, 그게 『진짜의 나』가 아니라 『가짜의 나』를 한평생 만들어 온 과정이었다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누가 나를 무시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기분 나쁘고 마음 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감정은 순간이고 흔적은 영원하다. 그게 쌓이면 골이 깊어지고 남는 것은 회한뿐이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히려 고통과 번민을 배워가는 것이다.

수험생은 단지 시험만 보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행을 이겨냄으로써 자신의 업력(業力)이나 원죄(原罪)를 소멸시키는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그런 경우만큼 마음공부 시켜주는 좋은 기회도 없다.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제목이 암시하듯이 생활 속에 도(道)가 있고 누구나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수행자는 성당, 교회, 절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마라톤도 39km 이상을 뛰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얼굴로만 보면 초반레이스를 펼치는 사람이 훨씬 더 여유롭게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반면에 전자는 골인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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