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9)-루저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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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99)-루저가 뭐 어때서
  • 차근욱
  • 승인 2016.07.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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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떤 꼬마 친구의 신나는 노래소리를 들었다. “LOSER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JUST A LOSER...” 으흠... 흥부자로 추정되는 그날의 가수는 “루저”라는 말을 이해하기엔 좀 이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꼬마 친구였는데, 당사자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여튼간에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내 등 뒤를 쏜살같이 뛰어갔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문득 그 꼬마 친구의 노래를 듣고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하버드나 예일에서 학부나 대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데다가 집안이 세계 10대 기업 소유주도에도 해당하지 않으니, 인터넷에서 흔히 마주하는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그야말로 “루저”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폭풍우를 헤치고 나아가다보면 스스로 초라해질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할 때도 있고. 긍정의 힘이 무조건 최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이라면, 이를 무심히 털어 넘길 줄 아는 대범함도 필요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사실 루저 아닌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그렇게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온통 콤플렉스 덩어리임을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TV시청도 인터넷 서핑도 그다지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어쩌다 자료를 검색하다 파도를 잘못타서 요즘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는 신조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관종’, ‘자살각’, ‘ㅇㄱㄹㅇ’, ‘ㅂㅂㅂㄱ’, ‘휴거’ 등등. 가끔 보면 이런 신조어 트랜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항상 새로운 것이 재미있어 그런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뒤처지는 것이 불안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스스로의 자아가 확고한 이유에서는 아니다. 특히, 최근의 신조어 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경우는 ‘휴거’였다.

크리스찬이신 분들께는 그리 낮선 단어가 아니겠지만, 신조어로서의 ‘휴거’는 크리스찬 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휴거’가 아니다. 여기서의 ‘휴거’는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조금 넉넉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이 폄하해 부르는 말이다. 이 말을 재미로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연히 그 말에 크게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다. 재미로 ‘휴거’라는 말을 쓰는 아이들의 입장에서야 누군가 상처받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까지 ‘에이, 짜증나’라고 반응 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하는 법이니 짜증이 나고 말 일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사유체계’이자 ‘인격의 향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이라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의 신조어를 남발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리 썩 아름다운 인격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강하고 세련된 사람은 친절하다. 자아가 안정되어 있으니 주변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이다. 호연지기를 그냥 ‘씩씩한 패기’정도로 알고 계신 경우들이 많지만 호연지기란 말을 만들어 내신 맹자 선생님에 의하면 호연지기(浩然之氣)란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뜻한다. 이와 관련된 맹자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不動心(부동심)에 대한 긴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어떤 점에 특히 뛰어나십니까?” 하고 묻자 맹자는,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손추는 다시, “감히 무엇을 가리켜 호연지기라고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하고 물었다. 맹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해서 그것을 올바로 길러 상하게 하는 일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게 된다. 그 기운 됨이 의와 도를 함께 짝하게 되어 있다. 의와 도가 없으면 그 기운은 그대로 시들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의를 쌓고 쌓아 생겨나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의를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생생활에 조금이라도 양심에 개운치 못한 것이 있으면 그 기운은 곧 시들고 만다.” (孟子(맹자) 公孫丑上(공손추상) 중 발췌)

맹자 선생님께서 호연지기란 딱 이런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신 적은 없지만 호연지기란 ‘의(義)와 도(道)가 충천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주체인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스펙을 지니고 있는가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평가받아야 할 것은 그 사람의 정신이자 인격이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는, 인생 전체에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좋은 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은 고교시절에 적어도 나름 성실했다는 의미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남들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평가될 수는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모교가 비록 내세울만한 학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망할 일만은 아니다. 공부야 자신이 하는 것이니 학교 탓만을 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기에 조금 늦게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가이다. 노력이 생각보다 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단한 노력의 세월이 길었다면 그만큼의 기회 또한 주어지기 마련이다. 행운은 준비하는 이에게만 찾아온다. 삶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의 쉬운 말장난에 낙담하고 포기할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어떤 가치를 가슴에 품어, 어떤 인간이 되는가가 인생을 규정한다. 의(義)와 도(道)의 도덕적 기상이 충만한 호연지기를 안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주적 인간이다. 스스로 자아조차 정립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무가치하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가슴에 공허를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부족하고 공허한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간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따스한 마음과 각자의 배려로 용기를 얻는다. 삶이란 그렇게 부대끼고 배워가며 만들어 가기 마련이다.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 자기 잘난 맛에 모진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자기 스스로의 허영에 맞지 않아 내 모습이 창피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내 삶의 일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 부족함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부족함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세상살이가 늘 같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세상은 변하고 나도 변한다. 인생무상이라 슬프기도 하지만, 인생무상이라 다행이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함조차 모르면서 타인에게 지적만을 하는 삶이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다.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고 남들은 다 행복한 것만 같은데 나만 불행한 듯만 싶어 한없이 스스로가 초라하고 서글퍼지는 날이라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자. ‘루저’면 어떤가. 이제부터 호연지기를 품고 멋있는 사람이 되면 그만이지. 학벌이 전부가 아니다. 재산도 전부가 아니다. 진짜 근사한 인생이란 하루하루 배우고 변화하는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 누가 아는가. 내가 정말 인생 역전을 이루어 낼지. 세상에 진짜 못난 사람은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루저면 좀 어때서, 그게 내 인생인걸 이라며 자신을 대범하게 포용하는 것으로 호연지기를 시작하면 된다. 굳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 상처받을 필요 없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인생의, 내가 내 길을 우직하게 갈 수 있다면 족하다.

‘루저’ 따위, 세상에 없다. 조금씩 시간이 다르고 역할이 다를 뿐이다. 모두 같은 기준에서만 생각을 하는 작태가 못난 거다. 끝없이 노력하는 한, 어느 누구도 루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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