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찾아서-"법은 천재가 아닌 어른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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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찾아서-"법은 천재가 아닌 어른의 영역이다"
  • 법률저널
  • 승인 2004.05.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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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타인의 장점을 수용한 최고의 이성적 조합"

 

안경환 교수
서울대 법대 학장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울려 지내다보면 상호간에 갈등이 빚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갈등에 누구라도 명쾌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은 "법학은 이런 갈등관계속에서 시대상황에 맞게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적절한 해결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모든 학문을 동원할 수밖에 없기에 법학은 이성적이며 종합적인 학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발상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천재들의 역할이 있는가하면 각각의 장점을 수용해 종합적인 사고력을 통해 사회 전체의 구성원리와 질서유지를 이뤄내는 것이 법학의 역할이며 그러기에 법은 천재보다 어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우리 일상 생활에서 '법'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삶을 사는 도덕적 인간을 보고 우리가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지칭하지만 실제 어떤 사람이 일을 당하게 되면 법의 보호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법은 우리가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쳐진 소중한 울타리이며 보호망입니다.


◇ '법과문학', '법과영화' 등의 저서를 통해 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듯 문학과 영화를 매개로 법을 정의 혹은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의 법 제도와 법학의 가장 큰 취약점이 법과 대중과의 거리감이 너무 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법과 지성과의 교류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제가 '법과문학'과 '법과영화'를 쓴 것을 이상하게 느끼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법과문학'은 지성과의 교류를 위해서 썼고 최근 들어 영상세대가 증가하며 영화가 대중과의 소통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법과영화'를 쓰게 됐습니다.

법학은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을 보면 분과학문에 치중하다보니 총체적 학문의 발전은 도외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총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하는 문제에 있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해결점을 제시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지성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힌다는 것은 법의 모습인 사회총체성을 통해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 초학자들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법체계를 이해하는 데 좋을런지

법은 어른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이란 종합적인 사고력을 갖춘 사람을 일컫습니다. 즉 종합적인 지적 배경이 있어야만 법을 이해하고 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학문들, 즉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지적 기초작업을 먼저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초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법학을 익히기 되면 다소 경직되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문제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문제죠. 법학을 먼저 공부하다보면 다른 기초학문을 익힐 여유가 없게 되고 동시에 하다보면 시험 공부가 중심이 돼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돼버리죠. 그래서 먼저 기초학문을 익히고 난 후 법학을 전공하라는 말이 꽤나 이상적으로 들리게 돼죠. 그래서 최근 로스쿨 도입이 어느때보다도 활발하게 논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영미법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유신 시대에 독일 공법을 공부하다가 삶의 구체성을 찾지 못해 법 공부가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에 대해 말하지만 당시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고 점점 법에 대한 허무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잠시 법에서 벗어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 삶의 구체화된 모습을 경험하기도 했죠. 그러나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결을 보게 되면 피임약 규제나 낙태 문제 등 매우 구체적인 사례가 다 헌법 문제로 다뤄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헌법 공부를 하며 구체적인 경험을 쌓고 법과 현실의 문제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시 미국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렇게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영미법을 전공하게 된 이유 또한 영미법이 담고 있는 핵심인 '법의 생활화' 혹은 '일상화'가 제가 찾던 구체적 현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대학에는 해석법학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굳이 저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고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영미법 등 법의 생활화와 관련된 연구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 국내의 법률문화를 진단해주신다면.

모두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법과 대중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법학을 지성의 학문으로 보지 않는 상황입니다.

사법시험제도를 통해 법조인이 양성되다보니 대학교육이 무너지고 사법 시험 위주로만 학문 발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대에서는 사법시험 합격을 목표로 두지 않고 사회에서 필요한 균형감있는 전문가와 지도자를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기에 뭐라 할 수 없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졸업후 10~20년이 지나 법률가의 무대가 넓어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키우는게 목적입니다.

앞으로 점점 법률가의 국제무대 진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초학문과 법학이 결합된 종합적인 사고력의 법률가가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어학 실력은 기본이고요.

지금 국제사회를 보면 알겠지만 국제무대는 법률가가 이끌어가며 각종 제도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 '법'과 '법률가'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보시는지.

법률가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의 사업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며 제공되는 서비스 수준에 맞는 대가를 받아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법학은 사람들간의 갈등 관계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하기에 항상 긴장하고 연구하고 고민해야합니다. 갈등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식과 사고를 동원해야 합니다. 법률가는 이성적인 균형감을 갖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다 수용해서 그 중의 최고의 조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각각의 법률가들이 이렇듯 종합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전문화된 서비스에 나서게 되면 사회전체의 균형에도 이바지하고 법적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사시 1000명 시대가 되어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게 쉽지 않다는데.

법률가의 양적 보급이 확대되다보면 이전에 비해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건 당연한 것입니다. 양질의 서비스와 저렴한 서비스는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시 선발인원을 늘린 것은 최소한의 서비스를 받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법률가의 수가 늘어나면서 상호간에 경쟁이 유발되고 수요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법률가를 쓰면 되는 것입니다.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도 될만한 법률가를 찾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법률가들은 이제는 민형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 진출을 모색해야 하고 변호사라는 것이 일종의 자격증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로스쿨 도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미국도 처음에는 실무를 통해 훈련을 하고 변호사로서의 자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도록 바꿀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대학에서 법학공부를 해서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오히려 대학공부를 통해 이성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게 되고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해 드러난 현상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대한 논리적 이해를 하는 등 법률가로서의 종합적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근본적으로 국내 로스쿨 도입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우선 과감한 재정적 투자가 있어야 하고 대학에서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로스쿨을 나오면 변호사가 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렇듯 로스쿨을 통한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저는 개인적으로 제도 변화가 실패할 것으로 봅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다보면 양질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게 어렵게 됩니다.


◇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법을 집행하다보면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게 되는데 당연히 자신이 변호해야할 입장을 성실히 하되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균형있는 사고를 해야 합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법을 공부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법의 역량이 넘치도록 탐구정신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김병철기자 bckim99@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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