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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억지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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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억지의 실패
  • 신희섭
  • 승인 2016.07.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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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계절학기 강의중이다. 이번에 계절학기 강의로 20세기 외교사를 강의하게 되었다. 20세기가 시작한 1914년 1차 세계 대전발발에서부터 20세기가 끝이 나는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다루는 강의이다. ‘짧은 20세기’를 다루는 과정인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맡은 과목이라 흥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

그저 20세기가 이렇게 지났구나 하고 책을 볼 때와 달리 학생들에게 20세기의 외교를 소개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전달해야 하니 관련된 자료를 보는 것도 달라졌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특히 강의를 위해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보려고 노력하게 되니 20세기의 외교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학기의 반을 1차 대전의 발발 원인과 2차 대전 해석에 쓰고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미치는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두 가지 사건이 외교를 이해하고 전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은 “불필요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1차 대전은 전쟁이 길어졌을 것을 예상했다면 어느 나라도 쉽게 전쟁을 결정하지 못했을 전쟁이고, 지도자들의 의지를 뛰어 넘는 구조적인 요소들이 작동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안보딜레마와 같은 구조적인 요인들이 전쟁의 원인으로 많이 지적되어 왔다. 반면에 2차 대전은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는데 현상변경을 꾀한 히틀러의 도발을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이 제때에 막지 못하면서 전쟁이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이 두 개의 전쟁은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이의 흥미를 끈다. 그 중에서도 2차 대전의 과정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왜 “억지(deterence)에 실패했는가?”하는 점에서 2차 대전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억지’란 공포심을 통해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포기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설득을 하거나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공포를 느끼게 하여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목적을 가진 행위자가 그 목적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한다. 게다가 그 두려움은 억지자의 행동에 의할 수도 있지만 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라는 계산과 심리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억지는 합리성, 능력, 신뢰성과 의지, 의사소통이라는 요인들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공포심을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능력과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와 그 의지에 대한 신뢰성이다.

이 관점에서 2차 대전을 보면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억지 실패가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존 키건(John Keegan)이라는 학자는 2차 대전의 원인보다는 2차 대전이 발생하게 된 조건과 허용요인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2차 대전을 가져온 특정 사건 보다 그 사건이 발생할 수 있게 방조한 이유들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억지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독일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원인(cause)을 탐구하기 보다는 왜 독일을 제지하지 못했을까하는 허용조건(permissive condition)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관점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킨 국가와 지도자인 독일과 히틀러보다 영국과 프랑스에 책임을 더 많이 돌리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전쟁을 가져온 것은 히틀러이다. 다만 히틀러를 막을 수 있을 때 못 막은 것에 대한 책임이 영국의 채임벌린과 프랑스의 수상인 까미유 쇼탕이나 이본 델보와 달라디에 같은 지도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억지 실패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점은 1936년 히틀러가 라인란트에 소규모의 병력을 진주하게 했을 때이다. 독일과 프랑스와 벨기에가 마주하고 있는 라인란트를 비무장으로 하고 이 지역에서 상호 불가침을 약속한 것이 1925년 체결된 로카르노 조약이다. 이 조약은 독일의 스트레제만이 제의하여 체결한 것으로 독일 서부의 안정을 가져왔다. 그런데 히틀러가 1936년 3월 군대를 보내 라인란트를 점령한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 1935년 재무장발표이후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독일의 라인란트에 대한 진군은 히틀러의 전략적인 술책이었다. ‘행동하고 주시하기.’ 일단 일을 만들고 나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를 보고 다음에 다시 도발 여부를 결정하는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었다. 만약 프랑스가 강경하게 나온다면 뒤로 물러나고 강경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군대 주둔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이 당시 프랑스의 플랑댕(Pierre-Etienne Flandin)외상이나 사로(Albert Sarraut)총리는 단호한 대응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단호한 대응을 했다면 독일은 물러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프랑스는 76개의 육군사단이 있었고 벨기에는 21개 육군사단이 있었다. 반면에 독일은 32개의 사단에 불과했다. 육군에서만 프랑스와 벨기에가 독일 육군의 3배에 달했다. 독일이 해군을 가지겠다고 공표한지 1년 뒤에 일이기 때문에 해군력에서는 압도적으로 서유럽이 우세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습 걱정을 했지만 독일 공군은 취약한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제 막 무장을 시작한 독일의 군대가 어느 정도 훈련을 받았고 어느 정도 전쟁을 치룰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겠는가?

실제로 이후 기록에 보면 히틀러는 이 시기를 가장 위험천만하게 보았다. 그는 라인란트 진군이후 48시간이 가장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당시에 프랑스가 라인란트로 진격해왔다면, 우리는 철군해야만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우리의 군사력으로는 경미한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뮌헨사태가 일어난 1938년의 독일 군부가 준비가 덜된 이유로 전쟁을 거부했던 것이나 만약 히틀러가 전쟁을 강요한다면 히틀러를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다는 점을 볼 때 1936년 독일 군대는 전쟁을 치룰 수 없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군과 영국과 프랑스의 묵인은 히틀러에게 이후 강력한 행동은 영국과 프랑스를 뒤로 물러나게 할 것이라는 점을 학습하게 하였다. 히틀러는 프랑스가 영국없이는 공격을 못 할 것이라는 점을 배웠고 영국은 독일의 오스트리아와 체코에 대한 공격에 대응 못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게다가 라인란트 점령으로 독일은 루르지역과 라인란트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지역은 독일 석탄의 80%를 보유한 곳으로 이 지역확보는 히틀러가 유럽지배를 위한 4개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1940년 총공격계획은 이로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는 확실히 영국의 지원이 없이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은 유화정책을 통해 독일을 달래는 것에 올인했다. 1차 대전과 같은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겠다는 사고의 강렬함이 전쟁자체를 가져올 수 있는 용기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유화정책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영국은 독일이 팽창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 다는 두려움은 영국과 프랑스의 국력이 더 강함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하였다. 게다가 전쟁보다는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여론을 따르기만 하는 지도자들은 표가 떨어질지 모르는 강경정책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 당시 지식인들조차 유화정책을 가장 뛰어난 평화방책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2차 대전의 역사에서 용기가 뒤따르지 않는 정책이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억지가 필요할 때 강력한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것 역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지도자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국민들의 의지 역시 중요하다는 것도 명확하다. 이것이 1990년대 들어와서 북한 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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