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춘 변호사의 값진실패, 소중한 발견(14)-나에게 맞는 공부장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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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 변호사의 값진실패, 소중한 발견(14)-나에게 맞는 공부장소(2)
  • 고성춘
  • 승인 2016.07.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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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고시기간 동안 유일하게 절에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100일이 약간 못되는 기간이었지만 그때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머리가 시원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새벽 4시에 칼같이 일어나서 밤 10시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하다보니 10시 정각만 되면 일분일초도 틀리지 않은 채 잠이 한순간에 몰려왔고 그 자리에서 뒤로 누우면 다음날 새벽이었다.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만난 혜각 스님과 무여 스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지나자 의욕과는 달리 왠지 힘이 들면서 공부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먹는 것이 부실해서 그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고마성(道高摩盛)이라고 도가 높으면 그만큼 마(摩)도 심하다 했는데, 도는 높지 못하면서 마(摩)만 심하다보니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이 예민해졌고, 그러다보니 처음에 그렇게 맛있었던 절밥이 먹기가 싫어졌다. 결국 절을 나오게 되었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는 점을 알았더라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곳이 나에게 딱 맞는 공부장소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해 2차 시험에도 또 떨어지고 말았다.

◆ 집

객지생활에 지친 이유도 있었지만 집을 등지고 객지로 떠돌아다닌 결과 합격은 되지 않은 채 오히려 몸과 마음만 지쳤다는 생각이 들자 그 다음날로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로 합격하던 해까지 약 2년 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서 하루 종일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율곡 선생도 말씀하기를 집에서 혼자 공부하지 말라고 하였다. 혼자 있으면 나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사람들을 피하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때라서 도서관보다는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랜 객지생활에서 벗어나 집이 주는 포근함 때문에 얼마동안은 집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파트인 집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다보니 방음벽이 있어도 자동차소리가 보통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철물점에 가서 크고 두꺼운 것으로 스티로폼 한 장을 사와서 창문을 막았다. 그리고 소리를 들어봤다. 그런데도 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한 장을 더 붙였다. 그리고 들리나 안 들리나 귀를 쫑긋하고 들어 봤다. 그래도 들렸다.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신경의 예민함은 절정에 이를 정도로 날카로웠다. 결국 집 주변 대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면서 사람 만나는 것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자 창문사이로 그렇게 크게 들리던 차 소리가 안 들렸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집에서 절반, 도서관에서 절반 이렇게 공부하였고 결국 합격하였다. 이와 같이 마음이 안정되면 공부장소도 안정된다. 그렇게 되면 장소가 주는 힘을 받을 수 있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사람이거나, 실패를 여러 번 하였거나 혹은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결국 사람을 피하거나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공부장소가 문제된다. 이는 신경이 그만큼 쇠약해졌다는 증거이다. 이럴 때는 기분전환을 수시로 해주면서 오히려 사람들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수험기간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항상 문제되는 일이다.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람이 싫어서 뉴질랜드까지 갔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사람들로부터 비위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디를 가도 다 싫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할 사람 한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따라서 사람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쉽게 비위 상하는 버릇을 고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그런 생각만 들어도 마음이 점차 안정되고, 쉽게 공부장소를 옮기는 일은 없게 된다.

영혼이 시달리면 탈출구를 엉뚱한데서 찾는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한데도 행복을 찾아 사람 따라 장소 따라 이리저리 다니는 것은 바보짓이다. 찾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을 스스로 허상을 또 하나 만들어 자기만족을 하려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룰 수 없는 길이기에 허상이 깨지는 아픔과 공허함이 나를 엄습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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