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6)-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96)-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 차근욱
  • 승인 2016.06.28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얼마 전에 아침운동을 마치고 시장을 지나던 참에 굉장한 광경을 보았다. 매우 건장한 20대 초반의 젊은 엄마였는데,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아이를 앞에 안고 어깨에는 노란 어린이집 가방을 걸쳐 멘 채 스쿠터를 몰고 가는 모습. 입을 굳게 다물고 단호해 보이는 자세로 질주하고 있었는데,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격언이 새삼 떠올랐다. 음, 그 순간에 느낀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멋지다!’ 정도가 되려나. 정말 왠지 세상의 어떤 풍파도 의연히 이겨낼 듯한 어머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무력감에 빠지거나 지쳐서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시장을 걷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남대문 시장이라도 가겠지만, 시간이 없다면 가까운 동네 시장이라도 그냥 걷는다. 걷다가 뭔가 군것질을 해도 좋고 불량식품에 눈독을 들여 보기도 한다. 뭐, 아주 가끔이니까.

시장에서 가끔 만나는 분들을 보면 늘 배울 점이 많다. 새삼 겸손해 지기도 하고. 지금 생각나는 치킨집 사장님만 해도 세 분이다. 한 후라이드 치킨 집은 부부가 같이 치킨 집을 운영하시는데, 우연히도 내게 장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생계를 위해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 싶어, 전세금을 빼서 가게를 차리고 당분간 그 좁은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을 하셨다고. 제법 고생스러웠지만 후회하지 않고 계신다는 이야기였다. 멋진 이야기다. 후회하지 않는다니! 어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쉽던가. 예전에 트럭에서 과일 행상을 하시는 부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참 고된 하루를 보내시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고단한 일상을 서로 의지하고 서로 챙겨가며 웃음으로 만들어 가시는 모습이 참 경건해 보일 정도였다. 삶을 개척하는 의지란 언제나 이처럼 숭고하다.

그 다음 사장님은 젊은 총각 치킨집 사장님. 옛날 통닭이라는 컨셉의 가게인데 통닭을 그야말로 반으로 갈라 통으로 튀겨서 판다. 치킨을 보면 닭 한 마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선 듯 다리나 날개를 잡아 뜯기가 참 미안한 비쥬얼이기도 하지만, 그런 통닭을 참 유쾌하게도 팔고 계신다. 이 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시는데, 대학에 가서 전공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게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장을 본 탓에 주렁 주렁 작은 봉다리를 여러 개 들고 있을라 치면 큰 비닐을 하나 건내주며 여기에 넣어가라는 배려까지 베풀줄 아는 넉넉함이 나이에 맞지 않을 만큼 깊다. 시원 시원하면서 나름의 싹싹함까지 갖춘 분이니 앞으로 성공하시겠지.

그리고 세 번째 사장님은 아주머니시다. 그야말로 시장에서 허름한 치킨 집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 분이 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에 찌들었다거나 피곤에 지쳐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시고 항상 환한 미소로 반겨주신다. 비싸지 않은 값의 치킨을 정말 정성껏 튀겨 주시는데, 언 듯 봐도 쉽지 않을 듯한 생활이지만 밝고 힘차게 장사를 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새삼 많은 감동을 받곤 한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함께 조금 늦게 시장통 선술집에서 술을 한 잔 했는데, 그 때 가게에 ‘아이스께끼’ 장사를 하시는 분이 들어왔다. 어느 정도 살집이 있으면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아이스께기 사세요!’를 힘차게 외쳤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귀찮아 하는 사람도 있고 주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싱글벙글. 그 아이스께기 사장님은 결국 10개도 넘는 아이스께끼를 팔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이런 저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아마 생각보다는 몇배나 힘들테지.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 중에 시장에서 생선을 파시는 분이 계셨었다. 리어카에서 생선을 파셨는데, 시장에서 생선 칼을 들고 싸우시는 모습을 봤다는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무서운 마음도 들었었지만, 그 친구와 함께 그 어머니를 찾아뵐 때면 그렇게 정겹게 대해 주실 수가 없었다.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하루는 어쩌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건 승부이다. 그러니 처절하다. 어려서야 생선 칼을 들고 싸움을 하셨다는 그 무용담 아닌 무용담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조금 큰 지금에 와서야 충분히 그 속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생선 칼을 들고 좀 싸우면 어떤가. 예쁘고 좋은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않던가. 우리네 어머님들이란 늘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주셨었는걸. 그 처절함 속에도 굴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웃는 얼굴로 힘차게 살아가시는 분들의 모습을 뵐 때면 새삼 많은 것을 느낀다. 물론 나 같은 사람 보다야 훨씬 알부자이시기도 할테니 존경스러운 마음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살다보면 막막할 때가 있다. 자신이 해 온 일들이,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물론 반대로 너무나 지루하고 하찮게만 느껴져 비참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다. 그럴 때면 시장에서 만났던 분들의 모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린다. 목에 핏줄을 세우고 절대로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목청 높이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내가 과연 무언가 할 수 있을지 두려워질 때, 나도 내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이 온 것을 보니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 새해 첫 날의 다짐을 나는 과연 얼마나 행동으로 옮겼던가를 생각하니 반성이 되었다. 늘 시간에 쫓긴다고는 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그것은 마음의 게으름 때문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오늘부터는 다시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운동을 끝내고 하루에 딱 30분씩만 시간을 내어서 꾸준하고 우직하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매일하는 힘이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니까.

약한 마음이 들면 시장에 간다. 그 곳에는 늘 스승이 있다. 천사도 보살도 알라도 모두 시장에 있다. 그래서 나는 시장의 질박함이 그 어떤 세련됨보다 얼얼하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그토록 참으로 빛나는 일인가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