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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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5)
  • 신종범
  • 승인 2016.06.17 13: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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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전화변론

임용되어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 이야기다. 현직에 있을 때 사석에서는 ‘형’,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선배가 퇴직을 하고 필자가 맡은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적이 있었다. 여느 사건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더욱이 그 선배는 현직에 있을 때 사건처리를 매우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처리하였던 사람이었다. 사건 처리에 대한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던 무렵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느 때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지만 평소에 통화하던 때와는 다른 서먹함이 느껴졌다. 통화를 끝내면서 “잘 좀 부탁한다”라는 선배의 말에 대답을 흐렸다. 전화를 받고 난 후부터 사건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이 마치 선배를 판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사건에 대한 결정은 다른 사건과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했다.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선배를 만났을 때 서운했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였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선배에게 내가 더 서운함을 느꼈다. 선배와의 사이는 멀어져 있었다. 선배는 나중에 개업해보면 자신의 심정을 알 것이라고 했다.

몇 년 후 공직에서 나와 변호사 개업을 했다. 지인의 소개로 형사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담당 판사가 누구인데 아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잘 아는 후배였다. 물론 평소에도 안부 전화를 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사건을 수임하고 다른 사건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 들었다. “후배에게 전화해 볼까?”, “한 통 정도는 괜찮겠지?”,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 변호사이니 아는 판사에게 전화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닐까?” 몇 번을 전화기를 들었지만 끝내 후배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기록을 더 열심히 검토하고 의견서를 좀 더 충실히 작성했다. 변론도 더 신경써서 했던 것 같다. 결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고가 있고 나서 며칠 후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와 같이 거리낌 없이 통화할 수 있었다. 대화 마지막에 후배가 말했다. 사건 때문에 전화 안해줘서 고마웠다고... 예전과 똑같이 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변론은 기일에 법정에서 말로써 하도록 되어 있는데, 기일도 아니고 법정도 아닌 곳에서 말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론을 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전화로 판사나 검사에게 변론한다고 해서 ‘전화변론’, 수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론한다고 해서 ‘몰래변론’이라고 부른다. 화장품 회사 사장의 도박 사건 등 수임과 관련하여 전직 부장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러한 ‘전화변론’, ‘몰래변론’이라는 특별한 변론기술(?)을 내세워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며칠전에는 부산에서만 10년 넘게 판사로 근무했던 변호사가 감형을 위해 판사에게 로비를 하겠다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로비를 변론기일에 할 수는 없으니 역시 ‘전화변론’, ‘몰래변론’이었을 것이다. ‘전화변론’, ‘몰래변론’은 별다른 노력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꽤 유혹적이다. 거기다 받은 대가도 노출되지 않으니 세금 부담에서도 자유롭다. 의뢰인들도 ‘전화변론’, ‘몰래변론’을 할 수 있는 변호사를 유능한 변호사로 생각하고, 사람들은 ‘전화변론’, ‘몰래변론’이 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이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전화로, 몰래 변론을 받은 판, 검사가 그에 따른 판단을 해 주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전관예우가 바탕이 된 전화변론, 몰래변론은 우리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데 요즘 몇 건의 사건으로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변론은 법정에서 하는 진술을 의미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전화변론’, ‘몰래변론’은 변론이 아니라 ‘로비’이고 ‘청탁’일 뿐이다. 갑작스런 모 대기업 수사로 여론에서 잠시 비껴나 있지만 최근 몇 가지의 사건을 계기로 전관예우를 비롯한 법조비리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사법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제도적 개선과 함께 재야건 재조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자정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후배들에게 몰래 전화하여 사건 청탁이나 하는 부끄러운 전관이 아니라 퇴직 후에도 존경을 받는 당당한 전관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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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16-06-19 03:25:06
정말재밋네요 변호사님
처음부터 정독하려고요

ㅇㅇ 2016-06-18 00:16:47
같은 연수원 나왔다고 선후배 할까요? 그보다는 같은 대학선후배인경우 이런일이 많겠죠? 같은 로스쿨이면 더 많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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