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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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4)
  • 박준연
  • 승인 2016.06.03 11: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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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출세의 계단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출세의 돌계단”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돌계단이 있다. 중간에 쉬지 않고 계단을 다 오르면 출세를 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여기에는 배경이 되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젊은 무사가 높은 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말을 타고 이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매화 가지를 꺾어 바치고 결국 출세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언덕 위에는 매화 나무가 있다. 가끔 산책삼아 이 계단을 오르곤 한다. 어떻게 말을 타고 올랐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이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얼마만큼 올랐는지는 언덕 위 근처까지 가지 않고서는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다 오른 후 언덕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볼 때 비로소 내가 이 많은 계단을 올랐구나 싶은 실감이 든다.

언덕을 내려가는 계단은 따로 있다. 이 계단은 한 단 한 단 높이가 올라가는 계단보다 훨씬 높아서 성큼성큼 내려가면 올라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리 내려가게 된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산책을 하면서도 이 계단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끔 글로벌 특강-테드(TED) 강연을 본다. 재미가 없거나 생각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중간에 멈출 때가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눈물을 찔끔 흘리거나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라는 책은 제목만 들었지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씨의 2009년 2월 강연은 TED 강연 중에서도 참 좋아하는 강연이다. 그녀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후에 발표할 작품들이 그 작품처럼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뇌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는 이어서, 창작의 과정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야기한다. 끈질기게 창작에 매달린다고 해서 빛나는 영감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깨달음은 이렇다. 빛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무용수라면 무용을, 시인이라면 시 쓰기를 계속하지 않고서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할 수가 없다. 그 순간이 찾아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할 일을 하고 보는 것이다. 길버트씨는 그 과정을 “출석 도장을 찍는다(show up)”고 표현한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하지 않지만 금요일 밤, 기안한 서류를 고치면서 과정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의 전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매 순간에서 보람을 느끼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없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 처리할 일, 꼭 처리해야 하는 일, 오늘은 아니라도 며칠 이내에 해야 하는 일 등등을 생각하면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없지 않다. 여러 안건으로 바빠지면 주말이 언제오나 기다리지만 일이 바쁠 땐 주말이라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노력이나 개인의 의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개인 차원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성실함이나 노력은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하지만 성실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는다. 재능과 운, 그 외의 다른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요인들 중 개인이 통제가능한 부분은 매일 쉬지 않고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이다.

쓰다보니 독자들보다는 결국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같다. 한결같이, 지치지 않고 출석 도장을 찍는 게 쉽지 않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때가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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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지만 2019-03-12 18:20:04
좋은 글입니다.!! 객관적인 성공의 기본 요소들..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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