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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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4)
  • 신종범
  • 승인 2016.06.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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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대작(代作)과 저작권

지방에 있는 법원에 재판을 다녀올 때면 즐겨듣게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일명 “지라시”라는 프로그램이다. 두 진행자가 재미있게 전해주는 사연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재판을 하며 긴장했던 마음을 풀곤 한다. 조영남씨는 그 방송에서 ‘아버님’이라고 불리우는데 엉뚱하면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때로는 핵심을 찌르는 말로 청취자들을 사로잡곤 한다. 그는 라디오 뿐만 아니라 TV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세시봉’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미술에도 자질이 있어 전시회까지 열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예술적 재능이 참 남다르다 싶었다. 그런데, 그가 그렸다는 그림이 그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은 조영남씨가 2009년부터 8년간 300여점의 그림을 무명화가에게 주문해 사들인뒤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팔았다는 혐의(사기 등)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조영남씨에게 그림을 판 A는 “1점당 10만원 안팎의 대가를 받고 그림을 그려 주면 조씨가 조금 손을 본 뒤 자신의 서명을 하고, 수백만 ~ 수천만원에 그림을 판매했다”며 자신이 그 그림의 90%를 그렸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영남씨는 “A에게 콘셉트(아이디어)를 주고 이를 그리게 한 것”이라며 이는 여러 유명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수를 쓰면서 작업한 것이고 이는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조영남씨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림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그림의 소유권은 조영남씨에게 있다. 그러면, 그 그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저작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저작권을 둘러싼 여러 가지 법률 문제의 해결 주체가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조영남씨로부터 그림을 구입한 사람이 그 그림을 디지털파일로 만들어(복제)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려면(공중송신)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조영남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림을 그린 A에게 받아야 하는가? 저작물인 그림에 대한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사망한 후 70년간 존속하는데 조영남씨를 기준으로 해야하는가 그림을 직접 그린 A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라고,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즉,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창작한 사람이 저작자가 된다. 또한,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나 형식의 이행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제2항).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 저작자로서 원시 저작권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작물을 만드는데 여러 사람이 관여한 경우 누가 저작자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 저작자를 결정함에 하나의 기준이 되는 저작권법의 대원칙이 있다. ‘저작권은 표현을 보호하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는 않는다’(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라는 것이다. 아이디어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게 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어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라 저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나 힌트를 제공한 사람은 저작자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진촬영, 건축, 연구용역을 의뢰한 경우에 저작자는 촬영자, 건축가, 연구자이지 의뢰자는 저작자가 될 수 없다.

한편,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권의 성립에 아무런 절차나 형식을 요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저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에 저작자로서의 실명 등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표시된 자를 저작자로 추정하고 있다(제8조). 여기서 ‘대작(代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유명인이나 저명인사가 저작물의 저작자로 표시된 경우에 누가 저작자인지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금번 조영남씨 사건의 경우도 그림의 저작자로 조영남씨가 표시되었기에 저작권법에 따라 그가 저작자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추정은 추정일뿐 이제 실제 그 그림의 창작적 표현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저작자를 결정하여야 한다. 만약, 조영남씨가 주요 콘셉트를 지시하고 그 표현에 있어서도 구체적으로 지시, 감독하였다면 조영남씨가 저작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A의 주장대로 대부분을 A가 작업하고 나중에 미세한 부분만 조영남씨가 보충한 것이라면 A가 단독으로 저작자가 되거나 최소한 공동저작자로서의 귄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조영남씨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서울에 있는 조영남씨가 속초에 있는 A의 작업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었을지, 주로 매니저를 통하여 의뢰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A가 보조적 역할만 하였는지 의문이다. 조영남씨가 저작자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사기죄와는 별도로 저작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에 해당하여 형사처벌될 것인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조영남씨는 이번 일을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술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얼마나 많은 ‘대작(代作)’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작(代作)’은 인정 받아야할 관행이 아니라 무명 작가들의 창의성을 훔치는 위법한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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