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知者와 智者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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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知者와 智者의 차이
  • 오시영
  • 승인 2016.05.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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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음습한 곡학아세(曲學阿世)가 판을 치고 있다. 지자(知者)가 자지(自智)하지 아니하면 지조(志操)가 조지(調志)되어 곡학아세가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다. 다시 말해 지식인이 스스로 지혜로워지지 아니하면 자신의 지조를 마음대로 조작하여 거짓을 진실이라 우기게 되어 세상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하는 곡학아세,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맹자도 명심보감(천명편)에서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 하여 하늘의 순리를 따르는 자는 흥하지만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고 갈파하였다. 지자(知者)와 지자(智者)의 차이점은, 전자는 단지 지식을 아는 자일뿐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지식이 지혜를 앞설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는 주로 知者들이다. 知者는 많이 배운 것을 내세우며 자신이 많이 안다며 교만해져 세상을 얕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음모를 서슴지 않는 자로, 결과적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그 지자는 시간을 영원히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智者는 지혜롭기에 아는 지식에 시간을 더하여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현실에서 현명한 생각과 행동을 함으로써 시간 앞에서, 세월 앞에서,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역사 속 수많은 폭군들, 독재자들의 삶과 지혜로운 현인의 삶이 극명한 비교가 되는 까닭이다. 현재에 살아 역사에 죽는 이와 현재에 죽어 역사에 사는 이의 차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잘 먹고 잘 살기는 智者보다 知者가 더 낫기에 많은 이들이 知者의 삶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곡학아세의 삶을, 역천자망의 세상을 살아가고들 있다.

19대 국회가 “소관 현안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청문회 개최”를 보장한 개정국회법을 의결, 정부로 이송하자 박근혜 정부가 이를 “국회의 지나친 행정부 견제”라는 이유로 헌법에 어긋난다며 거부권 행사를 위한 근거 마련에 들어갔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17대 국회였던 2005년 7월 야당이던 당시 “국회 상임위원회 및 소위원회 재적 의원의 4분의 1 이상만 찬성하면 정부ㆍ공공기관의 정책집행에 대한 감독청문회 개최” 및 “특정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청문회도 상임위 의결과 국회의장의 승인만 얻으면 개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국회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조사청문회에 나온 증인이 증언을 거부할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증언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조항까지 넣는 아주 강력한 개정안을 제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 법안은 17대 국회 임기 종료 시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여 자동폐기되었다. 회기불계속의 대원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국회법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소관 현안 조사’와 관련된 청문회 개최”를 허용한 것일 뿐으로 위 새누리당(2005년 당시는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정당은 결사체로 이름을 바꾸더라도 그 동일성이 유지되는바, 이는 마치 개인이 이름을 바꾸더라도 사람은 동일한 것과 같다)이 제안한 개정안에 비하면 아주 완화된 내용일 뿐이라 하겠다. 미국 등을 비롯한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의회가 언제든지 관련 소관 사항에 대한 상시청문회를 개최하고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나 정부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위 개정 국회법이 발효되면 국회의원들의 권한 남용으로 인해 초기에는 약간의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를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옛말에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봐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상시청문회가 보장되면 국회의원들이 너, 나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20대 국회 초기에는 상시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고 실재 그렇게 하겠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관리 등에 바빠서라도 상시청문회에 시큰둥해질 수도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진정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청문회가 개최되는 합리성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 국회속기록에 의하면 당시 위 개정국회법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개정 논의가 이루어질 때 국회의원들 일부가 반대한 발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야 가릴 것 없이 반대한 이유가 상시청문회를 개최하게 되면 국회의원 자신들의 업무량이 폭주하게 되어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즉 위 상시청문회를 통해 “정부를 혹독하게 괴롭히자.”는 취지의 발언이나 염려는 거의 없고, 상시청문회로 인해 국회의원 자신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어 자신들만 죽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부자 몸조심 같은 발언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상시청문회를 통해 정부를 괴롭혀보자는 생각을 여야가 한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들 일감만 많아져 별로 좋지 않은데 뭐 할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별 거부감 없이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헌법학자들은 위와 같은 상시청문회는 국회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게 되어 정부의 행정업무를 마비시키게 되어 위헌성이 높다며 헌법정신까지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법제처에 위헌성 근거를 제공하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국회법은 국회 내부의 업무처리지침, 다시 말해 어떻게 법안을 제출하고 논의하여 의결하는지, 내부징계절차를 어떻게 하는지 등 국회의 자율권, 즉 내부절차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법안이다. 따라서 위 상시상임위원회 개최도 국회가 상임위 소관 사항에 대하여 어떻게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입법에 반영할 것인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위한 자료 수집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관한 국회 자율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헌법 제64조 제4항은 국회의 국회의원 자격심사 및 징계와 제명 등을 법원에 제소할 수 없도록, 즉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국회 자율권에 관한 문제라 행정부나 사법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 회기불계속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즉 19대 국회에 제출된 의안 중 결의되지 않은 의안은 모두 자동적으로 폐기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대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선거에서 낙선되어 20대 국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게 되면 19대 의안 공동발의자들에 변동이 있게 되어 의안발의의 동일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안이 결의되어 정부로 이송되게 되면 정부에서는 이를 이송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여 국회에 재의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하고, 재의안에 대해 국회의원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가중된 의결정족수 결의가 있게 되면 그 법안은 확정되게 되어 있다. 만일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거부권이나 공포절차를 밟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대신하여 법률공포권을 행사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헌법학교수출신인 정종섭 새누리당 국회의원당선인은 새누리당이 제안했던 강화된 2005년국회법개정안에 대한 국회공청회에 출석하여 “24시간 모든 위원회에서 입법ㆍ인사ㆍ국정통제와 관련한 조사위원회와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저술한 헌법교과서에도 같은 취지의 헌법적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2005년 개정국회법안보다 훨씬 약화된 현행 상시상임위원회 개최를 내용으로 한 개정국회법에 대하여 자신의 종전 주장과 달리 반대의견을 개진하며 위헌성이 높다고 한 입으로 서로 다른 두 말을 하면서 정부의 위헌론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과도한 견제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사실상 많은 헌법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자(앞서 2005년의 자신들의 업보가 거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자), 그렇다면 “회기불계속의 원칙을 편법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꼼수”까지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19대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을 거부하면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의안이 자동폐기되므로 20대 국회에서 이를 재의결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론을 개발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수결의 “의결”이라는 법률용어의 초보도 모르는 황당한 궤변일 뿐이다. 의결이란 단체에서 과반수와 같은 의결정족수에 의해 어떠한 내용이 결정되면 이 결정된 것은 100% 의견으로 취급되는 효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실재 내부에서는 51대 49로 결의되었더라도 대외적으로는 100대 0로 결의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마치 51.6%의 득표율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100% 국민의 대통령으로 인정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19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개정안”은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100%인 국회의 의결”로 대외적 효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이때의 국회는 19대 국회이든 20대 국회이든 상관없이 국회의 동질성이 유지된다고 하겠다. 마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어도 여전히 같은 당이듯, 19대 국회이든 20대 국회이든 동일하다는 이치인 것이다.

회기불계속원칙은 국회의원 개개인에 관한 것이어서 의결되지 않은 법안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것이 옳지만, 일단 의결된 법률은 국회의원 개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 국회의 것이 되었으므로 19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로 자동승계되는 영속성과 동일성을 갖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7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을 18대 국회 개원 이후 공포한 적이 있고, 18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을 19대 국회에서 공포하여 그 실효성, 즉 영속성과 동일성을 인정하였다. 같은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이 선례로 행한 두 번의 이전 국회 결의 법률을 공포한 전례까지 부인하려는 이 곡학아세의 음습한 역천의 시도는 결국 분쟁만을 확대재생산하여 세상을 어지럽힐 뿐인 백해무익한 것이라 하겠다. 다수당일 때 주장하던 논리가 소수당이 되면 뒤집히는 이 곡학아세야말로 “정치 자체를 불신케 하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시치미 떼면 그만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과학문명은 말을 흘러가게 놓아주지 않는다. 마치 흙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퇴적층을 이루듯, 돌을 쌓고 또 쌓아 높은 탑을 이루듯 말이 쌓이는 시대가 되었다. 쌓인 말이 모여 사람의 아이덴디티를 결정한다. 知者와 智者의 차이를 결정한다. 知者의 힘이 무소불위이던 세상이 智者의 선한 미소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세상의 변화를 읽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고쳐졌으면 한다. 세상 살면서 한 입으로 두 말 아니 세 말 하며 살 수야 있지만, 아니 사는 것을 뭐라 탓할 것조차 없지만, 그런 삶은 그냥 개인적으로 치부하며 사는 것으로 만족하며 국가를 책임지겠다며, 국가를 경영하겠다며 나서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향도가 깃발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사정없이 휘둘러대면 뒤따라야 하는 민초들만 고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知者로 살아감도 좋은 일이겠지만, 이왕이면 智者로 살아갔으면 싶다. 역천자망의 길이 아니라 순천자흥의 길을 살았으면 한다. 다수당일 때 주장했으면 소수당일 때도 이를 인정하고, 만일 잘못되었다고 후회한다면 다수당이 되었을 때 다시 고치고, 이렇게 하는 것이 멋진 대장부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가 등문공편(?文工篇)에서 밝혔던 천하의 넓은 자리에 거하여, 천하의 가장 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하는 대장부 같은 정치인들이 이 땅에 넘쳐나기를 바란다. 모두 자기 정치를 하라, 남의 눈치나 보며 곡학아세하지 말고. 맹자님, 2,30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을 불러내어 괴롭혀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워낙 인간들이 안 달라지니 어찌 합니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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