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29 / 감정평가 3법 하위법령 쟁점사항(정보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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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29 / 감정평가 3법 하위법령 쟁점사항(정보체계)
  • 이용훈
  • 승인 2016.05.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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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훈 감정평가사
 

현대 사회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정보=돈’의 공식이 성립한다. 사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수 천 년 간 성립해 온 진리인지도 모른다. 정보를 직접 돈 주고 거래할 수 있다. 파는 쪽은 정보 취합을 위해 들였던 비용을 보전 받고, 사는 쪽은 정보 유용의 대가를 지급한다. 강 어느 쪽에서 민물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알았으면, 몇 날 공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 귀한 정보, 기득권이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로 남길 몇몇은 희망하지 않았을까. 음파탐지기를 활용할 수 없었던 그 옛날, 어군(魚群) 이동경로 역시 풍어(豊漁)를 꿈꾸는 어민이 가장 탐내는 정보다. 그 한 마디 듣기 위해 술 한 말 사든 전자제품 하나 선물하든지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代)를 잇는 가업은 오늘날 정보사회의 시각에서는 ‘정보’의 형태로 유산물림이 되는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이세돌의 패색이 짙자 대결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실질적으로 인간 1명 대 컴퓨터 수 백 대의 대결이라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도 있었다. 물론, 수 백 대를 연결한 컴퓨터를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1대’로 주장하면 단식경기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컴퓨터에 입력한 그 수많은 기보를 인간 머릿속에 넣을 수 없는 한계를 내세워 정보비대칭성을 주장할 수 있다. 정보접근권한을 제한한 적은 없지만 어느 누가 물리적인 시간상 그 많은 기보를 다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정보비대칭성은 사람과 기계 간 본질적 차이의 산물일 뿐이다.

정보를 많이 가진 자가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 정보의 질이 중요하다. 도박판, 삥 둘러앉은 도박자의 면면보다 들고 있는 패가 핵심 정보다. 그래서 사기도박단은 투시안경과 표식 있는 패를 사용한다. 도박자의 요 몇 년간 승률, 현재 심리상태, 재산 규모, 성격 다 중요하겠지만, 필승카드가 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인터넷 도박에 빠진 사람은 서둘러 정신 차리는 게 좋다. 뷰어(viewer)프로그램을 혼자 사용하면서 상대 패 다 보는 전능자와 게임해봐야 주머니 털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보를 얻기 위해 시중은행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다. 선박대출을 취급하는 모 은행은 회원 가입비가 몇 백만 원이 넘는 유료 선박 중개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박 대출에 수 십 억 원에서 수 백 억 원을 쏟아 붓는데, 최소한 유사 선박 매매가격이나 매물 동향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게 정보비용이다. 한두 번 귀띔해줄 수 있지만 매 번 정보를 무상 제공할 수는 없다. 무료 정보 제공은 주로 공익 목적에 한정된다. 민간 영역에서는 남의 발품 값을 무료 정보로 경시해서는 안 된다.  

시중은행이 예대금리 스프레드로 돈을 벌고 있는 이상, 부동산 담보대출을 위해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는 담보평가 수수료는 대출부대비용에 속한다. 몇 년 전 대법원 판결만 없었다면 지금도 은행 측에서는 이 부대비용을 채무자에게 전가했을 것이다. 이후 시중은행은 자체적으로 담보가액 산정 인력을 두고 있다. 계약직 감정평가사를 충원해서, 시세 파악이 용이한 것, 담보물건이 안정적인 것, 물건가액에 비해 대출액 비중이 낮은 것 등 외부감정평가를 생략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체 평가를 하고 있다. 비용절감 차원이다. 은행의 수익성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 은행 측에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자구책이라고 호소할 수 있다.

외부 감정평가서에 근거해서 대출이 이뤄지고 나면, 그 보고서 하나 때문에 수 십 만 원에서 수 천만 원 지불한 것을 아까워 할 수 있다. 이런 부대비용을 실질적으로 대출 금리에 가산하고 있는데 과연 은행이 생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담보평가서 재활용을 도모하려는 시도, 탓할 수 없다. 그 보고서에 실린 가격자료, 어떤 토지가 대출받을 때 얼마 정도에 평가됐고 그 주변 토지의 최근 거래가격은 어떤 지가 다시 쓸 만한 데이터다. 특정 시중은행은 대출이 실행되고 나면 보고서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수록 자체 담보가액 산정 비율은 높아지고 외부 감정평가를 위해 지출하는 수수료 부담은 줄어든다. 솔직히 금감원에서 대출건전성을 위해 은행의 이런 행태를 제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9월 1일 시행되는『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제 9조는 감정평가 정보체계의 구축·운용 등에 관한 내용이다. 1항에서 국토교통부장관은 국가등이 의뢰하는 감정평가와 관련된 정보 및 자료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감정평가 정보체계를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2항에 따르면「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정평가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감정평가를 의뢰받은 감정평가업자는 감정평가 결과를 감정평가 정보체계에 등록해야 한다. 4항은 정보 및 자료의 종류, 감정평가 정보체계의 구축·운영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을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현재 하위 법령에 대한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등록된 감정평가 데이터를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이 정보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대행자는 한국감정원이다. 『한국감정원법』제 1조에서 밝힌 설립목적(부동산의 가격 공시 및 통계·정보 관리 업무와 부동산 시장 정책 지원 등을 위한 조사·관리 업무를 수행해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질서유지에 이바지함)을 보거나, 업무범위를 규정한 제 12조 2항(부동산의 거래·가격·임대 등 시장동향과 관련 통계의 조사·관리 업무) 또는 제 12조 3항(부동산투자회사 업무검사 지원, 감정평가 타당성조사 등 부동산 시장 적정성에 대한 조사·관리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비춰보면, 보상등 감정평가 결과는 정보체계에 등록되고 이 정보를 한국감정원이 관리하게 된다.

어느 규정으로 보나 금융기관과 감정평가법인 간 담보대출을 매개로 생산한 담보평가서는 원칙적으로 등록 대상이 아니다. 민간영역에 속한 결과물을 국가에 제출할 이유도 없고 그 데이터를 공공이 들여다보는 것도 불필요하다. 은행 측에서 총 담보대출이 얼마인지, 연체비율이 얼마인지 제출하게 할 수 있다. 평가법인도 담보평가 총액과 수수료 총액 정도는 노출할 수 있다. 그런데, 개개의 필지가 대출받을 때 얼마에 평가됐는지 공공이 알 필요가 있을까. 부동산 거래 내역은 과세를 위해서도 예외 없이 신고 돼야 할 사항이지만, 담보가액은 철저히 채무자의 개인 정보이면서, 채무자의 동의를 얻어 외부감정평가를 의뢰하고 수수료를 지불한 금융기관의 유료 정보다.

지난 5월 17일 감정평가협회 출범 이후 최초의 옥외집회가 세종 청사 앞에서 열렸다. 천 명 이상이 참여한 당시 집회에서 제기된 우려 사항 중 하나가, 정보체계의 운영과 관리의 목적과 무관하게 보이는 담보평가 등 사적 영역의 정보가 의무적인 등록 대상으로 하위 법령에 삽입된다는 점이었다. 우려라면 괜찮겠지만, 이 정보체계를 관리할 한국감정원이 최근 금융기관에 탁상감정시스템과 담보대출 사후 심사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고 영업하고 다닌다는 소식이 시중에 퍼진 상태다.

민간의 정보를 공공의 수입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이 발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익향유와 비용부담의 주체가 이렇게 달라지면 수익비용대응원칙의 상식은 짓밟힌다. 창조경제와 민간 자율을 그렇게 외치던 정부가 공공의 이런 행태를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정책과 시장동향 파악을 위한 공공목적에 한해서만 공공이 감정평가 결과물을 활용해야 한다. 부실평가와 허위감정의 일부 사례를 빌미로 공공이 민간 데이터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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