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1)-As time goes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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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91)-As time goes by
  • 차근욱
  • 승인 2016.05.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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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As time goes by 는 ‘Herman Hupjeld’가 쓴 곡으로 스탠다드한 Jazz곡이다. 이 노래는1942년에 개봉된 카사블랑카의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Sam 역으로 나온 Dooley Wilson의 연주와 노래도 좋았지만, 영화 자체의 분위기와 노래가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하얀 집이란 의미의 스페인어였다. 원작은 머레이 버넷의 소설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라는 소설이었는데 영화는 원작과 사뭇 달라졌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 모로코에 있는 카사블랑카는 항구도시가 갖는 몽환적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마이애미처럼.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은 비자를 구해 리스본행 비행기를 탈 목적으로 이 카사블랑카로 모여든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가고자.

카사블랑카의 ‘카페 아메리카’라는 Pub을 운영하고 있는 ‘릭’은 조금 냉소적인 인물로, 에티오피아와 스페인의 내전에 참전한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잊지 못할 가슴 아픈 기억이 있는데, 바로 사랑했던 사람인 ‘일자’와의 이별이다. 그 시절, 릭은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할 날이 다가오자 일자와 함께 파리를 떠나기로 한다. 두 사람은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떠나기로 한 날 비를 맞으며 일자를 기다리던 릭에게 전해 진 것은 샘이 전해 준 일자의 메모뿐이었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어요
이유는 묻지 말고 내 사랑을 믿어줘요
신의 은총이 있기를…

그렇게 이별의 아픔을 지닌 채, 릭은 이곳 카사블랑카에서 텅 비어버린 채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릭의 Pub에 불법 비자업자인 우가티가 찾아와 ‘나중에 와서 찾아가겠어’라며 서명만 하면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통행증 2장을 릭에게 맡긴다. 하지만 우가티는 독일 관리를 살해하고 통행증을 뺏은 혐의로 그날 밤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다음날,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빅터와 그의 아내 일자는 우가티를 만날 목적으로 릭의 Pub을 찾는데 Pub에 온 일자는 피아노를 치고 있던 옛 친구 샘을 알아보고, As time goes by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노래는 파리에 있을 때 샘이 릭과 일자에게 자주 들려주던 곡이었다. 하지만 이별의 상처가 너무 컸던 릭은 일자를 떠올리는 것이 괴로워 As time goes by만은 연주하지 말아달라고 샘에게 부탁했었다.

일자의 부탁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샘을 보고 릭이 다가온 순간, 릭은 복잡한 심경으로 일자와 마주하게 된다. 그날 밤, 릭은 홀로 쓸쓸히 술을 마시며 옛 추억에 잠긴다. 그런 릭에게 늦은 밤, 일자가 찾아온다. 파리에서의 일을 해명하고자.

그녀는 사실 파리에서 릭을 만날 때부터 이미 빅터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남편이 수용소에서 죽은 줄만 알았기에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그러나 릭과 함께 파리를 떠나려 할 때 즈음,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끝내 릭과 떠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별의 상처가 너무 컸던 릭은 빈정거릴 뿐이다.

일자의 남편인 빅터는 릭이 통행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에게 통행증을 달라고 부탁 하지만 릭은 거절한다. 그 날 밤 일자는 다시 릭을 찾아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어요’하고 말한다.

다음 날 공항에서 릭은 통행증을 주며 일자에게 빅터와 함께 비행기를 타라고 말한다. 릭과 함께 할 생각이었기에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일자에게 릭은 말한다.

“당신은 빅터의 일부이고 그를 지탱하는 힘이야. 빅터 혼자 떠나보내면 당신은 틀림없이 후회할 거야. 당장은 아니겠지만 아마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럼, 우리 관계는요?”

“파리의 추억으로 남겠지.”

결국 릭을 남기고 일자와 빅터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것은 1957년이었지만 카사블랑카는 1942년에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제작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때라 촬영은 세트장 안에서만 진행되었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마이클 커티즈 감독은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그리고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그야말로 공정한 결과였다. 이 카사블랑카는 후에 디지털 기술로 색을 입혀 재개봉되기도 했었지만, 역시 흑백으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 가끔은 흑백으로 봐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문장으로 접해야 더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카사블랑카에서 유명해 진 것은 ‘As time goes by’ 와 더불어 ‘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대사였는데, 직역하면 ‘당신이 비치는 군요’ 정도가 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당신 눈동자에 건배!‘로 번역되었다. 정말 탁월한 번역의 표본이랄까. 이런 번역이 바로 내공이겠지. 인생에든 실력에든.

사실, 카사블랑카는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촬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내내 ‘일자’역을 맡았던 잉그리트 버그만은 영화의 결말을 알려줘야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냐며 작가에게 결말을 물어보곤 했었다는데, 결과는 작가도 정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릭의 사랑을 이루어 주어야 할지, 외면해야 할지. 그런데 결국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대로 결론이 났다. 세상은 늘 그렇게 우리의 순정을 외면하곤 하니까.

새드엔딩이지만 그 결과 험프리 보거트는 절제된 사랑의 표상으로 남게 되었다.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었기에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보내주었던 남자.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나는 8번이나 이 영화를 보았다.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남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것이 문제였던 것인지 나는 상대방에게 폐가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말없이 떠나 주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꼭 이성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얼마 전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에 이어지는 전기 줄의 풍경을 한없이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전기줄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 풍경을 질리지도 않고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시간에 대해서 강박이 있지 않았나, 하고.

뭔가 시간을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 시간이 지났다면 뭐가 되었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생각. 그런데 스쳐가는 기차의 창밖을 보다 보니 요즘은 내가 조금 바뀐 것은 아닌가 싶었다. ‘성과’보다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 게다. 후회 없이 산다는 것은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이런 소소한 깨달음들이 내가 성장하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늦된 사람이고 아둔하고 부족하긴 하지만, 확실히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언제 봄이 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폭염의 계절이 되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남는다. 결국 그 말이 맞다. A Kiss is still a kiss. A sigh is still just a sigh. 슬프지만, 결국 인생이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시간이 흐를 때. 아.. 아.. 샘, 제발 그 노래만은 연주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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