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벌써 전보된 지 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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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벌써 전보된 지 두 달
  • 설민수
  • 승인 2016.05.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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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에서의 일상은 매해 2월말 인사를 기점으로 바뀐다. 나 역시 늘 그랬고 2016년은 다른 때보다 변화가 더 큰 편이다. 10년 만에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전보되었으며 2011년 부산동부지원으로 옮길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서울을 벗어난 지 5년 만에 다시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는 주말에 서울에 들를 일도 있었지만 주로 자동차를 이용해 외곽도로를 다녔기 때문에 서울 내부의 풍경은 왠지 아직도 낯선 편이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나, 사람들로 발 디딜 곳이 없이 들어찬 출퇴근 지하철. 모두가 조금씩은 아직은 낯설다.

물론 익숙한 것도 있다. 10년 전에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사분쟁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민사 가압류 사건을 주로 결정하는 신청단독 업무를 했었는데 올 해에도 동일한 업무를 한다. 방도 그 때의 바로 옆방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다루는 사건의 단위는 달라졌다. 그 때는 5,000만 원 이하의 사건만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1억 원을 초과하는 모든 가압류 결정 사건을 담당한다. 그만큼 사건도 어려워졌고 예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분쟁도 많은 편이고 법률적으로 난해한 신청사건도 많다.
 

 

신청단독의 일상이 늘 그렇듯이 하루 중 일과는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는 가운데 벌써 전보된 이후 두 달이 지나갔다. 매일의 하루는 새로 접수된 사건을 보고 보정명령을 작성하거나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는 결정이나 담보제공명령을 전자결재하거나 이의사건 결정문을 작성하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일상 속에 있으면 가끔은 바깥세상과 유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원래 판사의 일이란 이미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세상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업무를 하지만 신속성과 밀행성을 원칙으로 하는 신청단독의 경우 분쟁당사자를 직접 대하는 경우가 드물어 그만큼 더 떨어진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바깥세상과 가장 많이 떨어져 업무를 하는 것 같아도 나 역시 세상의 변화를 피하기는 어렵다. 상당수 접수되는 유류분이나 상속분쟁 가압류 사건에서 노령화되는 사회와 함께 급속하게 파편화되는 가족제도의 일면을 보게 된다. 또 지속적으로 접수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설회사를 상대로 한 가압류 신청과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재벌계열사를 상대로 한 가압류 신청을 보면서 한국 경제가 정말 힘든 쪽으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스마트 폰으로 대부분의 대화나 거래가 이루어지는 세태를 반영하듯이 소명을 위해 제출되는 자료의 상당수가 스마트 폰 화면을 캡쳐한 경우일 때가 많아졌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말 유리된 화석처럼 굳어지지 않으려면 다른 직업과 달리 사회에 대한 접촉면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직종인 판사란 직업을 가진 나 스스로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너무 빨리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좋은 변명거리가 있지만 제3자의 눈에는 어디나 근거 없는 변명으로 비칠 것이다.

그래서 신청단독을 맡고 있는 올 한 해 동안에 좀 더 노력하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선은 주말에라도 낯설어진 서울부터 한 번씩 둘러보고 이 낯설음부터 해소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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