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백무산 시인의 “낙화”와 황석영 작가의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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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백무산 시인의 “낙화”와 황석영 작가의 “님을 위한 행진곡”
  • 법률저널
  • 승인 2016.05.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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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지금 이 세상은 “정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계속 돌고 또 돌아야 한다. 만일 혼자 정지한다면 그는 곧 죽음이다. 세상이 미쳤다고 세상을 손가락질 해서도 안 된다. 같이 미쳐 돌아가지 않으면, 혼자 맨 정신으로 남아 있으면 그는 이미 죽은 거다. 같이 미쳐 돌아가야 한다. 인간이 만든 흐름의 영속성에 함께 올라타야 한다. 모든 흐름은 호랑이 등짝이다. 떨어지면 잡혀 먹힐 뿐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다. 

길지만 백무산 시인의 시 “낙화”를 본다. “전력 사정이 나쁜 나라에 갔다가/ 수시로 정전이 되어 시간이 뚝뚝 끊기는 밤을 지내고/ 다들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것을 낙화라고 말하고 싶었네// 언제나 그대로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닷새만 줄창 비가 와도 이변이라면서/ 열흘 넘게 붉은 꽃은 변고라면서/ 잠시라도 돌아가지 않으면 사고가 되고/ 잠깐이라도 꺼지면 재앙이 되는// 환풍기 멈춘 밀실처럼 연료 끊어진 엔진처럼/ 한순간만 꺼져도 똥물은 역류하고/ 하나씩 달고 사는 인공호흡기가 멈춘 듯이/ 심박기가 멈춘 듯이// 멈추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삼백육십오일 철야를 해야 하는 꽃들도 환장으로 피어 있다/ 꽃이 피든 지든 다 같은 시간이다/ 물이 흐르든 멈추든 그 물이 그 물이다/ 분수는 역류하지만 같은 물이다// 지속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들/ 핵발전 시대 이후 혁명은 꿈도 꿀 수 없다/ 우리 몸에 낙화의 시간이 지워졌다/ 별이 뜨는 낙화의 시간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지의 감각이다” (전문, “폐허를 인양하다”에 수록, 창비, 2015)
 

 

백무산 시인은 말한다 “우리 몸에 낙화의 시간이 지워졌다.”고,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지의 감각”이라고. 많은 이들이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땅도 한 번 쳐다보고,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하는 여유를 갖고 싶은데 잠시라도 멈춰서면 세상은 그 정지현상을 보고 사고났다고 하는 것에 시인은 환장하겠는 거다. 마치 잘 길들여진 똥개처럼 짖으라면 짖고, 앉으라면 앉고, 공을 던진 후 물고 오라면 물고 와야 하는 세상에서 혼자 입 다물고 앉아있고 싶고 멀리 던져진 공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싶어 질 때도 있는데, 왜 그것을 정지라고 하고 사고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그래서 “정지는 사고 난 거야!”라고 세뇌되어 “정지의 감각”을 아예 잃어버린 채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세상이 시인으로서는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다고. 엊그제 5ㆍ18민주화운동기념일 36주년이 지났다. 그날을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36년 전 그 날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다. 내란을 주도한 전두환의 지휘 체계 하에서 반란군들이 민간인을 학살한 날, 대한민국 영토를 지키라고 입대한 군인들이 내란군들이 되어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한 날 피해당한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36년 전 그 날에 모든 감각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죽음으로 피 흘려 지킨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36년 전 그 날에 멈추어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36년을 굴러 온 환풍기와 정화조의 프로펠러는 멈춰 선 그들에게, 정지한 그들에게 엄청난 먼지를 끼얹고 똥물을 끼얹을 뿐이다. 전두환은 내란수괴죄로 사형이 선고됨으로써 광주항쟁에 동원된 군인들은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내란군임이 사법부에 의해 심판되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동원되어 명령에 따랐던 선량한 군인들은 그들 역시 피해자일 뿐이다. 가슴 아픈 피해자일 뿐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이번 5ㆍ18기념식장에서 “합창”으로 불려졌다. “제창”으로 불러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장은 국가보훈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사일 며칠 전에 열렸던 3당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회동에서 정식으로 “제창”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좋은 결과가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국가보훈처는 합창으로만 할 뿐 제창은 할 수 없다면서 그 근거를 “국론분열예방”을 내세웠다.

필자는 합창이든 제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부의 “국론분열 때문에 제창은 할 수 없다”는 논리의 해괴함이 기가 막힐 뿐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음악 교과서에는 애국가를 비롯하여 3ㆍ1절기념노래, 제헌절기념노래, 광복절기념노래, 개천절기념노래가 수록되어 있었고, 모든 학생들이 그 노래를 다 배워 악보 없이 부를 줄 알았다. 국가 4대기념일이라고 정부는 엄청 홍보하였고, 학생들은 기념식장에서 한 목소리로 위 기념노래를 제창하며 그 날의 의미를 벅차게 되새기고는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합창단이 와서 그 기념 노래를 대신 부르기 시작했고, 행사참가자들은 그 노래를 듣는 피동태로 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에도 어떤 때는 합창으로 하다가 어떤 때는 제창으로 하다가 하였지만, 그것은 어떤 원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행사주최측의 생각에 따라 합창순서를 넣기도 하였다가 아니면 제창 형식으로 부르게 하기도 했다가 한 것이 아닌가 싶다(합창으로 하려면 별도의 합창단을 동원해야 했으므로 주로 학생합창단이나 시립합창단 등이 동원되었고, 그러한 동원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편리하게 제창으로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배운 노래인지라, 많은 참석자들은 합창곡이 울려 퍼질 때에도 기념곡을 따라 부르는 제창을 하고는 하였다.  

문제는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황당한 이중적 잣대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라는 시를 황석영 작가가 개작하여 작곡가 김종률이 지은 노래이다. 1980년 5월 광주도청을 내란군으로부터 사수하다가 사살된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노래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단체에서 위 노래에서 말하는 “님”이 북한 김일성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석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르는 제창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가 극심하고, 이러한 반대가 국론분열이기 때문에 위 노래를 제창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저 이유로 제창을 못 하고 합창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국가보훈처장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형사처벌”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김일성을 추종하는 반국가노래”를 공공연히 국가공식기념일행사장에서 “합창으로 울려퍼지게”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일 “님을 위한 행진곡”이 김일성을 그리워하는 노래라고 한다면 제창은 물론이고 합창도 허용해서는 안 되며, 입도 벙끗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이 노래를 아예 금지곡으로 지정하여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면 모두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의 확장이 가능하게 된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로 되어 있다. 가사 중 “님”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단지 제목이 “님을 위한 행진곡”일 뿐이다. 작사자는 말한다, 여기의 님은 핍박받은 민주주의이자, 민주화투쟁을 하다 먼저 산화한 동지이기도 하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이기도 하다고. 아이러니한 것은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에서도 금지곡이라는 사실이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노래를 1994년초 (김일성)대학에 온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방문단 환영할 때 부르라며 정치 강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배워준 노래로 자신이 최초로 배운 한국노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그 이전인 “1991년에 나온 북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 배경음악으로 가사 뺀 연주곡만 나왔지만 대학에서 배울 때 같은 노래인 줄 몰랐다.”라고 증언하면서 “이 노래를 북한에서 부르면 잡혀가 정치범”이 되는 금지곡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성하 기자의 말이 맞다면 북한에서 “남한에서 김일성을 노래하는 곡이라고 우려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오히려 북한에서 두려워하여 금지시킨 곡”이라는 셈이 된다. 이런 황당한 결과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지 민주주의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쿠데타에 대한 민주시민의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동지애를 굳건히 하기 위해 나온 곡일 뿐 북한을 찬양하기 위한 노래가 결코 아니다(만일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곡이라면 북한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반동분자라며 정치범으로 처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한 기념식장에서 정부가 의뢰한 합창단으로 하여금 부르게 하는 자기모순의 행동을 국가보훈처가 앞장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기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르기를 허용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정부로서는 “제창을 허용하고 합창을 불허”해야 하는 것이 논리에 맞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국론분열을 가져올 나쁜 노래이므로 정부가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종북주의자(?)”들이 이에 반하여 5ㆍ18기념식장에서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불러대니 “종북주의자인 너희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다.”라는 비판을 정부측에서 가할 수 있는 꼬투리라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종북주의적인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정부가 합창단으로 하여금 부르도록 특정 합창단에게 섭외하여 초청하여 공식 행사장에 서도록 주선”한 꼴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가 스스로 종북주의자가 되어 북한 김일성을 이롭게 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위 노래의 합창 고집이 이렇게 모순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의 오류에 갇혀 있는 국가보훈처장의 논리모순이 안타깝고, 이런 모순된 행동을 옳다고 지지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단견이 안타까운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가 지적하는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정식으로 건의하여 바로 잡도록 해야 하는데도, 만일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간신이 되는 것이고, 모르고서 안 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무능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공직자들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굴러가겠느냐는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낙화에서 말한다. 꽃의 낙화는 필요한 것이라고, 인간 삶의 연속성에서 정지는 필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36년 전 5ㆍ18 광주에 정지해 있을 것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어찌 보면 가볍게 흘려보낼 한강물 같은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하나쯤 흘려보내지 못하고 억지로 가두어 정지시키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위정자들이 한심하고, 민주주의의 자유로움을 역행하면서 입으로는 수도 없이 “자유, 자유”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옹졸함이 안타까운 것이다. 만일 위 노래가 종북추종노래라면라면 국가금지곡으로 지정하라. 그리고 국가공식기념식장에서 종북노래를 공식적으로 합창으로 울려 퍼지게 허용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반국가행위자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형사처벌해야 한다. 

오직 이 땅에 정의를 밝히기 위해 애써온 법률저널이 창간 18주년을 맞이하였다. 법률문화가 척박한 이 땅에 오직 정의로운 법이 정착할 수 있도록 애써온 편집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필자 역시 그 긴 역사 중 14년 동안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필자의 이름을 걸고 ‘세상의 창’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쉽게도 19대 국회에서 사법시험폐지를 폐지하는 입법에 성공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아직 기회가 있으므로 20대 국회에서 사법시험이 존치되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법학교수회를 중심으로 사법정의가 실현되는, 국가정의가 실현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법률저널도 이에 적극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창립 18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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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고 재학생 2016-05-20 22:08:46
현직 고등학생입니다. 법률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영역이 아닌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회를 통한 민심이 원하는 법의 제정이 활발하지 않아서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보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법률에서, 그 이름을 달고 과감히 보수를 질책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분이 계셔서 몇달간 눈여겨 보았습니다. 전혀 생각치 못한 부분에서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그것을 법률적으로 해석하고, 또 비유를 통해 와닿게 하는 글을 보면서 언제나 감탄을 하고 갑니다. 언제나 유익한 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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