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새누리당의 혁신위원장사퇴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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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새누리당의 혁신위원장사퇴에 대해 묻는다.
  • 신희섭
  • 승인 2016.05.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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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4.13총선이후 새누리당내 내홍이 심각하다. 4.13총선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새누리당은 총선패배에 대한 자기반성과 혁신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5월 17일, 새로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새누당 전국위원회는 친박계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친박계의 조직적 저항에 맞서 혁신위원장을 사퇴했다. 뼈를 깎겠다던 혁신은 이틀 만에 사망했다. 사퇴문에서 김위원장은 새누리당내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조문을 낭독했다. 
   
같은 당의 정두언의원은 새누리당이 정당이 아닌 패거리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동네양아치들도 아무 명분없이 이렇게는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럼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유력자들인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표면적 원인은 선거참패에 대한 책임추궁과 그 이후 이어질 권력의 상실이 문제다. 그런데 친박계의 이런 집단행동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나쁘게 만들 것인데 왜 이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후폭풍을 가져올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왜 여전히 ‘친박’이라는 타이틀 속에 안주하는 것일까? 
 
이것을 정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인-대리인’의 문제와 ‘내부자-외부자모델’과 ‘집단사고모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내부자-외부자모델’은 어떤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조직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분하기 위해 내부자의 결속은 강해지고 외부자에 대한 차별은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내적 충성의 강화와 외적차별의 동시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파벌화의 기본 동력을 설명할 수 있다. 
 
내부자-외부자 모델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내부자들인 친박계가 이번 총선에서 공천파동을 보여 정치적 패배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내부 파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라는 각오로 패배원인을 물타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친이, 친박이 나뉘고, 2008년 총선과정에서 그 어려움을 이겨 냈고, 친박연대라는 정당까지 만들었던 이들에게 ‘과거로의 회귀’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파벌은 뭉칠수록 자신들의 잘못과 한계를 서로 덮어준다. 서로 위로하면서 서로에게 에너지를 준다. 이 과정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논리와 같다. 집단사고의 의식은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여기 모인 우리는 친해. 우리는 잘못하지 않아. 우리는 도덕적으로 똘똘 뭉쳤어. 설사 잘못되더라도 우리끼리는 분열되면 안 돼. 우리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적대적 세력에게 명확하게 한 목소리를 내야해. 자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하겠어. 
   
파벌화되어 상호 친하다고 생각한 소규모의 조직들은 이런 집단적 합리성과 동조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뭉쳐야 산다는 의식은 위기 시에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뭉쳐야 산다는 신념이 얼마나 강력해지겠는가! 친박이 모시는 대통령도 이제 4년차이니 임기도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의회에서는 제 2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니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좌불안석일 테고. 
 
그런데 왜 이들은 박근혜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였을까? 물론 자신들의 리더라고 생각하니 그럴 것이다. 2007년에야 다음 선거에 대통령으로 나갈 것을 예상했으니 그렇다고 하고 2012년 대선에서야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자신들에게 권력이 돌아올 것이니 그렇다고 하고 왜 지금도 친박, 진박을 따질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은 연임도 안되는데.
 
이 부분은 친박계가 자신들의 주인을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고 박근혜대통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성이 이들 친박의원들이 박근혜대통령을 주인으로 모시게 한다.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면서 영남에서의 상징성과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후광을 고려하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도 영남은 남을 것이고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역사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계속 표를 줄 유권자들을 감안하면 충성의 대상은 명확해진다. 전체 유권자가 표를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지역유권자들이 표를 주니 정확히 이들 주인들의 의사를 반영하면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날아올 비판이야 우리들끼리의 집단의식 속 도덕이란 방패로 막아내면 된다. 게다가 몇 달 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시간만 잘 다독이면 된다. 
 
정치학적 분석이야 그리 특별하거나 어려울 것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정두언의원이 말한대로 이들의 행태가 과연 양아치와 비교할 수 있는가이다. 매번 무슨 일만 생기면 불러서 비교를 하는 양아치들 입장에서 이 비교가 맘에 들까?
 
양아치는 동냥과 아치(사람)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빌어먹는 사람이다. 건달과 다르다. 건달이 인도에서 무위도식하며 음악과 향만 맡으며 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인 간다르바를 어원으로 하는 점에서 다르다. 조선시대에 들어온 이 인도어가 한량과 같은 의미로 ‘건달’로 사용된 것이다. 반면에 깡패는 폭력단 ‘갱’(gang)과 패거리가 합쳐진 것이다. 이보다 더 정확한 의미로 조직폭력배가 있다. 조직을 꾸리고 폭력을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무리다.
   
이들을 비교해보자. 양아치는 거대 조직화를 하지 않는다. 혼자도 쪽팔린데 다른 사람들과 여럿이 같이 다니면 더 쪽 팔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존재임을 아는 이들은 너무 많이 뭉치지 않는다. 같이 다니는 상대방도 양아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양아치들은 피해를 주지만 공공선을 체계적으로 붕괴시킬 만큼 거대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불쾌하게 만들 뿐이다.   
   
한량의 의미로 건달은 “외로운 늑대”형이다. 조직화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향만 먹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고독하지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돈키호테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깡패는 그저 돈 냄새를 맡으면 폭력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이 조직화를 하면 조직폭력배가 된다. 범죄조직이 되는 이들은 사회에 큰 피해를 가져온다. 그러니 조직을 이루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이들과 비교하려면 빌어먹는 양아치나 향만 먹는 건달과 비교하면 안 된다. 깡패나 조폭과 비교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임을 위한’ 파벌싸움은 조직적이며 국가 공동체 공공선에 해를 가져다준다. 수틀리면 회의에는 안가도 된다며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운 이런 행동에 대해 양아치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관대하다. 민주주의의 대표원칙인 주인과의 관계를 왜곡하고 파벌 내에 안주하는 것은 빌어먹는 것도 아니며 향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너무 멀리서 어렵게 찾지 말자. 정치학원론 민주주의 첫 번째 페이지.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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