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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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26)
  • 문덕윤
  • 승인 2016.05.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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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2016 언어논리 적중문항

제가 올해 언어논리에서 2문제를 적중했습니다. 이런 건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보여드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적중문제와 제 모의고사 문제를 나란히 싣겠습니다.
 

 

[2016 언어논리 문 24] 다음 글에서 알 수 없는 것은?

희생제의란 신 혹은 초자연적 존재에게 제물을 바침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례를 의미한다. 이 제의에서는 제물이 가장 주요한 구성요소인데, 이때 제물은 제사를 올리는 인간들과 제사를 받는 대상 사이의 유대 관계를 맺게 해주어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희생제의의 제물, 즉 희생제물의 대명사로 우리는 ‘희생양’을 떠올린다. 이는 희생제물이 대개 동물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하지만, 희생제물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인간 집단은 안위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되면, 이를 극복하고 사회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처녀나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다. 이러한 사실은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설화에서 인간들은 신이나 괴수에게 처녀나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희생제의는 원시사회의 산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져 왔다. 이에 희생제의의 기원이나 형식을 밝히기 위한 종교현상학적 연구들이 시도되어 왔다. 그리고 인류학적 연구에서는 희생제의에 나타난 인간과 문화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 있어 왔다. 인류학적 관점의 대표적인 학자인 지라르는<폭력과 성스러움>, <희생양> 등을 통해 인간 사회의 특징, 사회 갈등과 그 해소 등의 문제를 ‘희생제의’와 ‘희생양’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들 간의 갈등은 공동체 내에서 무차별적이면서도 심각한 갈등 양상으로 치닫게 되고 극도의 사회적 긴장 관계를 유발한다. 이때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 갈등을 희생양에게 전이시켜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안정을 되찾고자 하였다는 것이 지라르 논의의 핵심이다.

희생제의에서 희생제물로서 처녀나 어린아이가 선택되는 경우가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처녀와 어린아이에게는 인간 사회의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속성이 깃들지 않았다는 관념이 오래 전부터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라르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희생제물로 선택된 이유를, 사회를 주도하는 주체인 성인 남성들이 스스로 일으킨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역할 차원에서자신들과 대척점에 있는 타자인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였다.

① 종교현상학적 연구는 인간 사회의 특성과 사회 갈등 형성 및 해소를 희생제의와 희생양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② 지라르에 따르면,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 갈등을 희생양에게 전이시킴으로써 사회 안정을 이루고자 하였다.

③ 희생제물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의 안정을 회복하고자 한 의례 행위는 동양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④ 지라르에 따르면, 희생제물인 처녀나 어린아이들은 성인 남성들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다.

⑤ 인신공희 설화에서 희생제물인 어린아이들은 인간들과 신 혹은 괴수 간에 소통을 매개한다.

올해 PSAT 언어논리 24번입니다. 희생제의에서 희생양의 역할에 대한 지라르의 연구를 다루었습니다. 제 모의고사 문제와 소재 및 지문의 논리 구성이 일치합니다. 24번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지라르의 연구는 종교현상학적 연구가 아니라 인류학적 연구입니다. 따라서 “종교현상학적 연구”를 “지라르”로 바꿔 써야 옳은 문장이 됩니다.

[24번 적중문항] 다음 중 위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문덕윤 언어논리 심화강의 제3회 수업자료(제1회 실전테스트) 8번)

사대부와 남성 문장가들은 이토록 여성들의 소설 읽기를 그 존재부터 부정했다. 현실적인 이유는 가산을 탕진하고 가사를 소홀히 한다는 점이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들이 글을 아는 대중, 즉 문중으로 자라나는 걸 두려워하는 무의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소설이 기존의 사회질서를 조금씩이라도 일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탈적 사유가 상식처럼 자리 잡으면 일탈 후 빈자리는 영구적인 것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생각의 표현이다. 조선이 숭상한 글은 추상적으로는 이기론의 정합성으로, 실용적으로는 현실 구제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조선의 문풍과 당쟁은 사실 짝패의 반작용으로도 조명할 수 있다. 짝패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용어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것들이 비슷한 대상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서로 다를 때 그 방법론을 두고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지라르는 짝패의 갈등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영원한 상호 폭력의 악순환에 빠진다고 했다. 주자학을 대성시킨 송시열이나 이황이든, 자유 문인을 표방한 이덕무나 경세가적 실천을 중시한 정약용이든 모두 유학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조선 사대부들의 공통된 목표는 현세적 삶을 윤리적으로 완벽한 제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직선적인 사유, 지극히 남성적인 과시와 절제의 이중주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지라르의 시선에서 볼 때 일종의 짝패였다.

그러나 글은 여성들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사로잡았다. 여성의 글읽기는 외설과 투기라는 이름으로 억압받는 삶의 욕망을 해소하는 유희와 위로였다. 윤리적인 채찍질로서의 사유가 아니라 감싸고 타협하는 사유의 탄생이었다. 이는 사대부들이 생각하는 삶의 유학적 완성에 흠집을 내는 지체 요소로 인식되었고 결코 짝패 유학자들의 동료가 될 수 없었다. 지라르는 짝패의 갈등이 극단화될 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 유학의 두 가지 경향이 상호 공격의 지능화를 심화시키며 짝패의 악순환을 향해 달릴 때 여성들의 소설 읽기는 그 대립의 불모성을 가려줄 희생양으로 선택되고 탄핵되었다. 가장 유연한 사상을 가진 학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조차 여성들의 독서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했다.

“패관잡서는 인재 가운데 가장 큰 재앙입니다.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트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냅니다. 자제가 이를 일삼으면 경사 공부를 울타리 밑의 쓰레기로 여기고, 재상이 이를 일삼으면 묘당의 일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며, 부녀자가 이를 일삼으면 길쌈하는 일을 끝내 폐지하게 되니, 천지간에 어느 재해가 이보다 더 심하겠습니까?

-정약용 <문체책(文體冊)> 中

정약용은 패설을 읽는 행위를 두고 재앙이자 재해라고 표현했다.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낸다는 표현 안에는 사대부의 배타적 독점욕이 숨어 있었다. 마녀사냥의 욕망, 이것이야말로 조선을 괴롭힌 가장 뿌리 깊은 병통이었다고 할 만하다.

① 글은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압축하여 표현한다.

② 조선 여성은 글읽기를 통해 삶의 욕망을 해소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③ 지라르는 조선 사대부들의 행위에 일종의 희생양 메커니즘이 들어갔다고 해석할 것이다.

④ 사대부들은 성향을 불문하고 여성의 독서 열풍을 정치적 기득권에 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⑤ 조선 사대부들은 현세적 삶이 윤리적으로 완벽하기를 추구했기 때문에 가정 질서를 뒤엎는 생각을 담은 소설의 유행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사대부들은 그들이 속한 윤리적 세계를 자신들의 사유에 따라 통제하기를 원했습니다. 여성들의 소설 읽기는 그들의 시선에서 일탈로 보일 것이고, 자신들의 사유 체계와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의 행동이 정치적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권력을 두고 다투는 것은 남성 사대부들끼리, 즉 짝패끼리의 다툼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입니다.((출전)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이민희 저, 글항아리))

[2016 언어논리 문 31] 다음 글의 내용과 상충하는 것은?

토크빌이 미국에서 관찰한 정치 과정 가운데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시민들의 정치적 결사였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단체를 만들고 스스로 규칙을 제정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관습화해왔다. 이에 미국인들은 어떤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국가기관이나 유력자의 도움을 받기 전에 스스로 단체를 결성하여 집합적으로 대응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의 항구적인 지역 자치의 단위인 타운, 시티, 카운티조차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결사로부터 형성된 단체였다.

미국인들의 정치적 결사는 결사의 자유에 대한 완벽한 보장을 기반으로 실현된다. 일단 하나의 결사로 뭉친 개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으면서 자신들의 집약된 견해를 널리 알린다. 이러한 견해에 호응하는 지지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이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결사를 확대해간다. 그런 다음에는 집회를 개최하여 자신들의 힘을 표출한다. 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집회로부터 선출된 지도부는 물론 공식적으로 정치적 대의제의 대표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도덕적인 힘을 가지고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한 법안을 미리 기초하여 그것이 실제 법률로 제정되게끔 공개적으로 입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토크빌은 이러한 정치적 결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정치적 결사가 다수의 횡포에 맞서는 보장책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미국의 입법부는 미국 시민의 이익을 대표하며, 의회 다수당은 다수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이를 고려하면 언제든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배제한 입법권의 행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입법 활동에 대한 다수의 횡포가 나타날 수 있다. 토크빌은 이러한 다수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소수 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정치적 결사는 다수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더불어 토크빌은 시민들의 정치적 결사가 소수자들이 다수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도덕의 권위에 호소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힘이 약한 소수자가 호소할 수 있는 것은 도덕의 권위뿐이기 때문이다.

① 미국 정치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체제를 토대로 한다.

② 미국에서는 처음에 자발적 결사로 시작된 단체도 항구적 자치단체로 성장할 수 있다.

③ 미국 시민들은 정치적 결사를 통해 실제 법률 제정과 관련하여 입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④ 토크빌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수자는 도덕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다수의 횡포에 저항해야 한다.

⑤ 토크빌에 따르면, 미국에서 정치적 결사는 시민들의 소수 의견이 배제된 입법 활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정답은 ④번입니다. 3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소수자는 도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다수의 횡포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31번 적중문항] 위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문덕윤 언어논리 모의고사 제1회 2번)

“내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의 관심을 끈 새로운 것 가운데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the general equality of conditions)’만큼 강렬하게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미국의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장이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고전으로 한때 잊혀졌다 2차대전 이후 재부각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와해되고 시민적 자유가 억압받는 전체주의를 목도한 전쟁 세대는 한 세기 전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재가 출현할 가능성을 진단한 토크빌에게 눈을 돌렸다.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 차이는 ‘민주적 전제’와 ‘개인주의’를 다룰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주적 전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다수의 압제’, 즉 민주적으로 추대된, 전능한 독재정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에게 “다수에게 무제한적 권한을 주는 것은 집단으로서 인민에게 개인으로서 인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민주주의> 제1권에서 토크빌은 다수의 압제를 정치 제도로 파악하고, 다수의 횡포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선양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보통선거권 요구를 거부한 자유주의자들의 입장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를 자유주의자로 분류하는 논거가 되었다.

그런데 5년 뒤에 쓰여진 <미국의 민주주의> 제2권에서 토크빌은 이제 다수의 압제를 정치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습속의 문제로 파악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암묵적인 ‘여론의 압제’는 가장 저항하기 힘든 권능이 된다. 공화정을 위협하는 진정한 압제는 법률과 제도로 나타나는 다수의 횡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견해를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익명화된 권능에 있다. 소수든 다수든 공공의 미덕이 왜곡될 때 공동체는 건전하게 유지될 수 없다. 공동체적 가치관의 왜곡에 대한 이러한 토크빌의 분석은, 공화주의 담론과 통한다.

토크빌이 볼 때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의 가장 큰 폐단은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존중한다는 ‘개인주의’를 명분으로 시민들이 물질적 향유에 집착한 나머지 공공의 업무에서 등을 돌리는 데 있다. ‘압제’와 ‘물질적 열정’이 공공의 미덕을 고갈시켜 버리는 것이다. 토크빌은 여기 저항하는 유일한 힘이 바로 ‘정치적 자유’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그는 민주주의의 폐단이 인민 주권을 등에 업은 정치적 참여의 과잉에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는 달리, 정치적 참여의 확대가 시민들을 무관심과 무기력에서 구해내고 진정한 공화정을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공공성과 참여 정신의 확대에 대한 주장은 개인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자유주의적 자유’를 넘어 정치 참여로 시민을 양성하는 ‘공화주의적 자유’인 것이다.

①‘개인주의’에 대해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는 상반된 입장을 표명할 것이다.

②다수결의 횡포는 인민주권의 원칙을 명분으로 하여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③ 토크빌은 ‘조건의 일반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제안했다.

④ <미국의 민주주의> 제1권에서 토크빌은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이 정치 제도를 왜곡한다고 분석했다.

⑤ <미국의 민주주의> 제2권에서 토크빌은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이 공동체의 가치관을 왜곡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제 모의고사 강의의 제1회 모의고사 2번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어렵습니다. 방심하고 읽었다가는 개념들이 꼬이면서 ‘내가 뭘 읽었더라?’하고 당황하기 쉽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은 이 지문에서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평등이니 좋은 것 같지만, 나쁜 겁니다. 마지막 문단을 보시면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죠? 토크빌에게 이는 문제점입니다. 따라서 3번 선택지와 같이 조건들의 일반적 평등‘을 목표로 설정하면 안 되겠죠? 지문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③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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