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89)-김구 선생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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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9)-김구 선생님을 생각한다.
  • 차근욱
  • 승인 2016.05.1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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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아보라면 김구 선생님을 떠올린다. 굳이 위대한 업적에 빛나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개인으로서, 김구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김구 선생님의 위대함은 여러 가지 면면이 있겠지만, 독립운동에 헌신 하셨다거나 임시정부를 지휘하셨다는 점 외에 개인적으로 새삼 우러르는 모습은 인간 ‘김구’에 대한 존경이다.

김구 선생님은 몰락한 안동 김씨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양반이었으면서도 양반으로 살지 못했으니 출사에 대한 열망이야 오죽했을까. 하여, 선생은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해 17세에는 과거에 응시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가 어디 그리 녹록했던가. 세상은 부패했고 매관매직으로 관직에 나아갈 사람들이 이미 정해져 있던 시절이니 과거는 그야말로 하나의 형식이 되어버려 공부해 출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노력을 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은 상처가 된다. 과거를 합격해도 아버지의 출사가 먼저라고 생각해 아버지 이름으로 과거를 볼 정도로 순수하셨던 분이니 그 상실감은 제법 컸을 것이다. 결국 유명무실한 과거제도로 인해 좌절감을 느낀 김구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와 칩거한다. 그 상황에서 칩거 말고 무슨 선택이 가능했겠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칩거하고 있던 선생님에게 선생의 아버지는 관상과 풍수지리를 공부해 볼 것을 권한다. 선생은 이를 계기로 관상공부에 매진하는데, 세상사가 아이러니인 탓에 관상공부를 하고 난 뒤 선생은 더 큰 실망감만을 얻었다. 자신의 상을 아무리 뜯어봐도 도무지 귀하거나 부귀한 상이 없어 희망을 찾아보려던 선택은 오히려 반대의 결과만을 가져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저 실의에 빠져 세상 탓만을 했을 수도 있다. 좌절과 실망이 컸다면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닥치는 대로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본인은 관상이 나쁘니 마음을 닦아 좋은 관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음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갈 길을 찾으신다.

결국 선생께서는 이렇듯 자신의 심성을 갈고 닦아 인생을 개척하리라는 다짐으로 훗날 불굴의 항일운동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마음을 닦는 방법으로 청년기에는 동학운동에 매진하였는데, 동학군을 이끌며 봉기하였지만 관군에 패한 뒤 당시 관군이었던 안태훈 선생님의 배려로 안태훈 선생님의 집에 기거하며 고명한 학자로 이름 높던 고능선 선생에게 한학을 배울 수 있었다. 안태훈 선생님은 안중근 장군의 아버님이시다. 인생의 만남이란 이렇듯 오묘하다.

김구 선생님은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으로 비로소 체계적인 학문을 접할 수 있었는데, 출세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깨이고 성장하기 위한 학문을 통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었다. 이후 선생은 나라 위한 길을 보다 크게 고민한 끝에 의병에의 길을 선택하시기도 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21세의 김구 선생님은 청나라로 향했다가 단발령 지정과 삼남 의병 봉기 소식을 듣고 고향에의 귀향길을 택하시는데,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의 밀정으로 보이는 자를 발견해 국모의 원수를 갚는 마음으로 살해하고 그의 수중에 있던 8백전 중 일부는 선주들에게 선가로 떼어주고 나머지는 동리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 직후 김구 선생님은 ‘국모보수’라는 명분의 글에 자신의 거처를 남겨 체포를 자처하셨다. 관헌에 체포된 후 선생은 사형을 언도 받았는데 고종황제의 특사로 집행 정지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김구 선생님은 이후 옥을 탈옥하여 충남 마곡사에 이르러 출가하신다. 그러나 나라걱정에 다시 환속하였고 이후에는 환등기를 이용한 시청각교육을 통해 계몽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신민회에 가입해 구국운동에 투신하게 되었고 이어 105인 사건으로 인해 두 번째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고문을 받던 당시, 밤을 새며 고문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자신은 과연 조국을 위해 저렇게 밤새 노력했나를 뒤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그는 백범일지에 남겼다. 과연 고문을 받으며 자신을 그렇게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선생은 옥중에서 우리나라의 백정과 범부 모두가 자신만큼의 애국심을 갖게 만들자는 취지로 자신의 호를 백범이라 지었다. 3·1만세운동 이후 김구 선생님은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문지기라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안창호 선생님께서 김구 선생님을 경무국장에 임명한다. 이후 김구 선생님은 항일운동조직을 임시정부로 통합하는데 힘을 쏟는가 하면, 사상논쟁과 의견대립으로 와해되어 버린 임시정부를 지키는 동시에 ‘한인 애국단’을 조직해 의혈투쟁에 뛰어든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님은 조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임시정부 주석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는 것으로 미국에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정세는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과로 인해 신탁통치는 목전의 현실이었고 선생은 분개했다. 이에 대해 김구 선생님은 국내 반탁운동을 주도해 결국 미군정과 대립하게 된다.

당시 미소공동위원회는 양자 간의 의견 불일치로 회의가 결렬되었고 미국은 한국의 문제를 UN으로 이관할 것을 제의해 결국 이는 남한 총선거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북측은 UN선거 감시단의 방북을 막아 남과 북이 각기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앞두게 되었다. 이에 김구 선생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 건너가 김일성을 직접 만나 통일문제를 협의하였으나 당시 실권이 없던 김일성과의 회담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그리고 끝내 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하신 채 안두희의 총탄으로 서거하시고 만다. 향년 74세셨다.

선생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위대한 인간이 되었다. 몰락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나 시대에 좌절하고 자신의 한계에 실망했음에도 포기를 택하기 보단 자신의 사명을 향해 나아갔던 인물. 김구 선생님을 통한 가슴의 울림은 바로 그 곳에 있었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본 경찰의 모습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부끄러워했던 사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능력은 모자르고 마음은 흔들린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자신을 믿을 수 없어 모든 것이 두려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김구 선생님을 생각한다. 초라한 자신에게 용기가 없어질 때면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했던 치열했던 인생을 떠올린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 방북 길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직접 부딪히고 온 몸으로 운명에 저항했던 사람.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욕망이 아닌 사명을 위해 살았던 사람.

나는 얼마나 처절했던가. 나는 얼마나 치열했던가. 얼마나 밤을 새며 노력했고 얼마나 불가능이라는 말 앞에서 온 몸으로 저항했던가. 그가 살던 시대의 가혹함은 내가 사는 시대의 가혹함에 비할 바 없을 터인데, 나는 무엇에 그리 가슴 아파 하던가.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고 군납업자로 승승장구 했지만, 결국 초라히 생을 마감한 안두희를 보면서 인생사 영달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추하게 가지는 말아야지. 욕심으로 초라해 지지는 말아야지.

깊은 밤, 별 빛에 끌려 나선 산책길에 나는 김구 선생님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선선한 바람에도, 청명한 새소리에도 부끄럽지 않기를. 움켜쥐려고만 들 것이 아니라 놓고 훌훌 털 줄도 알아야지. 나를 비우고 오직 치열할 수만 있다면. 어둠은, 새벽녘에 가장 짙은 법이다. 다시, 나는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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