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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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1)
  • 박준연
  • 승인 2016.05.05 18: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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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외국인, 엑스팻, 미국 변호사

도쿄대학 교환학생 시절 미국인 교수님이 수업중에 일본학생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해주신 적이 있다. 일본 학생들이 미국 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와, 길거리에 외국인들이 엄청 많다!” 그때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야, 여기선 저 사람들이 아니고 너희들이 외국인이란다.” 

뉴욕의 로스쿨에서 유학을 한 이후 줄곧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해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H1B 비자로 첫 3년을 일하고 연장신청을 한 직후에 도쿄에 오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외국인일뿐만 아니라 엑스팻(expat)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채용이 결정되었고 뉴욕에서 도쿄로 옮겨올 때 회사가 거의 모든 과정을 도와주기도 했고, 도쿄로 와서도 비자 신청이나 집 구하는 과정, 기타 정착 과정에서 회사의 도움을 받았다. 또 주거 보조, 흔히 COLA(cost of living adjustment) 라고 불리는 생활비 보조에, 1년에 한번씩 귀국 수당을 받고 있다. 

그래도 나는 전형적인 엑스팻은 아니다. 미국에서 채용되었고 미국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은 아니다. 주변을 보면 엑스팻 신분의 미국 변호사들 중에서도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우는 짧지만 교환 유학 경험도 있고, 어느 정도 업무를 할 정도의 일본어가 가능하다. 좀 특이하긴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다. 지금 생활하는 아파트에는 엑스팻 신분의 외국인들이 꽤 많은 편인데, 최근 친해진 D는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스위스에서 일하다가 스위스의 본사에서 일본으로 2년 파견온 경우이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그리 크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외무 공무원이 되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기도 했지만, 도쿄 교환학생 시절에 처음으로 “외국인”으로 생활한다는 실감을 한 후 이렇게 외국 생활이 길어질 줄은 몰랐다. 외국 유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졸업을 하고 나면 학교로부터 보호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외국인 신분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금껏 외국 생활을 해오면서 외국인 신분때문에 큰 고생을 하거나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 반대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보다 관대한 대우를 받은 경우는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감사하고 또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경험해야 하는 이런저런 절차를 겪으면서 마음 고생이 아예 없지만도 않았다. 

미국 유학을 떠날 때는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당연히 미국에서, 최소한 몇 년 간은 일하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직접 내가 그 과정을 겪어보니 그게 생각만큼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미국 취업을 위한 비자 스폰서가 가능한 직장에 취직하는 게 우선이고, 취직이 되어도 비자를 신청하여 추첨(lottery)을 통과해야 한다. 마침 내가 H1B 비자를 신청했을 때는 미국 경기가 불황이라 추첨을 통과할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국 이민국 홈페이지를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확대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외국인, 엑스팻으로서의 경험이 미국 변호사로서 한국과 일본의 기업을 돕는 내 업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법제도, 그것도 외국인 미국의 법제도가 낯선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미국내에서 소송이나 정부기관의 조사를 겪게 되면 비용뿐 아니라 기업의 구성원들이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클라이언트가 겪는 심적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변호사 업무의 핵심은 아니지만 클라이언트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효과적인 대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이민 특집 기사에서 외국에 이주하거나 장기체류하는 즐거움에는 필연적으로 상실감과 향수가 따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갔던 것은 재판 준비때문에 한 출장이었고, 마침 회의 장소와 호텔이 서울에 살 때도 자주 가지 않은 곳이기도 했지만 서울은 갈 때마다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창 밖의 공원을 내다보며 잠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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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키 2016-05-07 12:51:40
작년부터 쭉 잘 읽고 있습니다 ^^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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