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황폐화되어 버린 언어, 어버이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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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황폐화되어 버린 언어, 어버이와 엄마
  • 오시영
  • 승인 2016.04.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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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언어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말이 있다. 바로 ‘어버이’ 또는 ‘엄마’ 같은 단어가 그렇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배우는 말이 엄마이고, 가장 먼저 감사와 존경의 대상으로 느끼는 단어가 어버이다. 송강 정철은 연시조집(聯詩調集) 훈민가(訓民歌)에 부모님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은 두 편의 시를 남겼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으랴/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 대어 갚사오리”와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이다. 이해인 수녀는 최근 시집 “엄마”에 “눈물 항아리”라는 시를 발표하였다. “어머니 그리울 적마다/ 눈물을 모아 둔/ 항아리가 있네// 들키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가슴에만 키워 온/ 둥글고 고운 항아리// 이 항아리에서/ 시가 피어나고/ 기도가 익어 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빛으로 감싸 안는/ 지혜가 빚어지네// 계절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눈물 항아리는/ 어머니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네”(전문, 2016, ‘샘터’ 간).

사람이 가장 따뜻하고 아름답게 가슴에 품었던 말 “엄마와 어버이”가 타락의 꼭지점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깨어 있는 국민 모두를 참담한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삶의 낙오자들이 역사를 배반하는 완장을 차고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라는 깃발을 휘날리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종횡무진한다. 슬프고 초라한 함성을 질러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필두로 CJ와 SK 그룹 등에서 거액의 자금을 어버이연합에 제공하였고, 국민의 세금이 정부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두 단체에 지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에 번개처럼 나타나 주제를 선점하며, 올바른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를 방해할 목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듯한 반대집회 내지 맞불집회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왔고, 그러한 집회에 탈북자를 비롯한 용돈이 궁한 어르신들에게 일당을 지급하고 관제데모로 의심되는 집회 및 시위가 전개되어 왔음이 밝혀졌다.

처음에는 어버이연합이 주가 되고 엄마부대가 종이 되는 듯한 위계질서(?)였지만, 엄마부대의 독자 노선화에 따른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금을 받아내려고 두 단체가 상호 경쟁을 하다가 내부불만이 폭발하여 숨겨져 있던 내부 정보가 노출된 것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라 할 것이다.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허 모 행정관의 직접 지시 또는 협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다는 확실한 보고를 받았다.”라는 한 마디로 청와대 관련 개입설을 부인하고 있고, 허 모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행위일 뿐이라고 청와대 대변인은 밝히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저러한 거짓말의 진행순서는 이미 필자가 지난주에 본 칼럼을 통해 사건의 진행수순을 예측한 바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발가벗은 임금님 꼴과 다를 바 없다. 발가벗은 임금님은 혼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아이의 눈에는 임금님의 발가벗은 모습이 다 보이고, 일반 국민들도 말만 하지 않을 뿐 임금님 발가벗은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 회원으로 활동해 온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탈북자들을 한 마디로 이 시대의 낙오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있고, 노후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으며,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는 분들이라면 일당 2만원을 받고 길거리로 몰려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생활비가 궁하고 용돈이 궁하고 나이 들었다고, 남한 출신이 아닌 북한 탈북자라고 세상이 그들의 존재와 인격을 존중해 주지 않아 외롭게 소외되었던 이들이 유일하게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이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며 “나 살아 있어!”라고 몸짓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가 주도한 “기획데모현장”이 아니었겠는가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조차 한다. 

여러 방송 인터뷰 장면 곳곳에서 기획데모에 동원된 어르신들은 말한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무엇 때문에 가는지 몰라, 무슨 일이 있어서 가는지 몰라”라고.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장소로 무엇을 하기 위해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 몇몇 주최자들이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선동가들이 외치는 구호를 따라 외치며 무리지어 서 있는 노인네들과 탈북자들은 이 시대 슬픔의 배경화면이 된다. 무신념의 개체가 가장 확실한 맹신의 집단이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혼자일 때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존재가치도 인정해 주지 않는 노쇠하고 힘없는 그들을 돈으로 회유하여 집단화시키고 뒷배봐주기라는 완장을 채운 다음 시대정신에 반하는 무한광기를 노출케 한 기획집단이 있다면 응징되어야 한다. 노회찬 국회의원 당선자는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5억 원이 넘는 거액을 어버이연합에 지원하고서 돈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돈이 전경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정보기관에 은닉되어 있는 특수활동비가 우회적으로 전경련을 통해 어버이연합에 지원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개입 선거법 위반사건에서 국정원이 어버이연합 등을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에서 어버이연합이 어떻게 조작된 증거를 수집해 국정원에 전달했는지,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 어버이연합을 어떻게 동원하였는지 등이 점차 상호연관성을 갖고 짜깁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소외된 어르신들, 탈북자들에게 어떻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직업교육 등을 통해 정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당을 주고 그들을 관제데모에 동원하여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고, 시민단체나 선량한 시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왜곡시키는 방법을 막후 기획하거나 조정한 자가 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소외된 그들에게 소위 완장(腕章)을 채워주고, 당신들이야말로 보수세력의 대표이자 종북 좌빨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고. 하지만 완장은 허무한 것이다. JTBC 취재를 통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밝혀지니 추선희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거짓 주장을 늘어놓다가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자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사무실 임대업자는 어버이연합의 사무실을 빼라고 요구하였고, 전경련은 돈을 주고서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청와대는 허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국정원은 자신들은 개입한 바가 전혀 없다고 특별회견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가 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다는 확실한 보고를 받았다.”라고 하지만, 그 보고가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내부조사를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논리적 설명이 없다. 엄격한 조사 없이 이루어진 부하들의 거짓보고에 대통령이 춤을 추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러는 현상을 보면서 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이 새삼스럽다. 놈팽이 건달이었던 주인공 임종술이 졸부 최사장에게 고용되어 저수지를 지키는 감독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면서 저수지에 낚시질하러 온 낚시꾼들을 폭행하는 등 권력의 횡포를 부리다가 나중에 그것이 헛된 일임을 깨닫고 저수지 물을 방류하여 버림으로써 물을 모아두는 저수지, 즉 권력의 핵심부를 강타해버리는 복수(?)를 한 후 완장을 집어 내던지는 구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맡은 권력을 잘못 행사한 것에 대한 허무함을 풍자한 시대소설 말이다. 발각되기 전까지 완장의 힘은 위대하다. 어떤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뒷배가 든든하고, 짭짤하게 돈이 생길 뿐만 아니라, 완장을 차는 순간부터 무력했던 자가 이 세상 최고의 권력자가 된 듯한 착각상태에 빠져 어슬렁거리니 코미디 중의 상코미디인 것이다. 어찌 보면 청와대 허 행정관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조직 내에 있다 보니 홀홀 단신 임종술처럼 완장을 내던져 버릴 수도 없고, 가만히 있자니 모든 책임을 나중에 뒤집어 쓰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관제데모를 기획하고 돈을 대 준 누군가가 있다면 어디에서 꼬리자르기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를 통해 자신의 책임이 면책되는 방안은 무엇일까 하고 독사의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유안진 시인은 “전율”이라는 시를 통해 “누구한테 왜 당했을까/ 짓뭉개어진 하반신을 끌고/ 뜨건 아스팔트길을 건너는 지렁이 한 마리/ 죽기보다 힘든 살아내는 고통이여/ 너로 하여/ 모든 삶은 얼마나 위대한가 엄숙한가”라고 지렁이의 처절한 삶을 아파하고 있다. (전문, ‘봄비 한 주머니’에 수록, ‘창비’ 간). 짓뭉개진 하반신밖에 남지 않는 지렁이가 뜨거운 아스팔트길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가야 하는 그 처절함, 그게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어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뜯어보면 선하실 어르신들, 행복한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자들이 지금 저 시 속의 지렁이처럼 죽기보다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방치되어 있는 이 대한민국이야말로 문제 중의 문제라고 하겠다. 그들을 관제데모에 동원할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올바른 정치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 사건이 밝혀지기 전부터 길거리 시위에 동원된 듯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유안진 시인의 ‘전율’과 윤흥길 소설가의 ‘완장’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었다. 그들을 폄훼하여서가 아니라 왠지 그들이 측은해져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몸짓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필자는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맹목적이 될 수 있으며, 세월을 오래 산 경험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매몰될 수가 있는 것일까 싶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발적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검은 돈이, 검은 세력이 그들의 무지막지함을 조정하였다는 사실 앞에 안타까운 측은지심이 분노로 바뀌게 됨을 어찌할 수 없다. 단돈 몇 푼에 그들을 얼마나 세뇌시켰으면 저렇게 편집증적 사상의 일탈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법과 정치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법과 정치는 분리될 수 있는가? 정치는 국민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까닭에 정치는 법을 집행하는 주체로서 옳고 그름의 심판자가 되어야 하고, 법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과 정치는 별개의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합치된 가치관의 실현도구라 할 수 있다. 입법부를 통해 확립된 법을 행정부가 집행하는 것이 정치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 주체인 행정부가 입법부를 선도하여 국가정책에 부응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사법부로 하여금 심판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와 법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통합된 시대정신의 상호교합이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야말로 진짜 정치인이다. 입법, 즉 국민의 일반의지의 행위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이 정치를 지배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가 잘못되면 법은 이를 꾸짖어야 하고 비판해야 함이 옳다. 정치와 법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한 정치가 올바른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공격하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법과 정치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합치되어 있고, 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모태이다. 정치가의 무한질주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법이기 때문이다.

이번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의 일탈행위를 보면서, 시인인 필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가장 아름다운 말 엄마, 평생 가슴에 묻고 그리움의 대상이자 감사함의 대상으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어버이라는 좋은 단어를 이렇게 시궁창 속으로 쳐넣어 악취나게 만들어버린 자의 죄는 두고두고 갚아도 다 못 갚을 죄라 할 것이다. 비열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단체에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라는 이름을 붙인 기획자, 바로 너는 역사의 죄인이다.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의 엄마를 떠올려오고, 당신의 어버이를 떠올려보라. 그립지 않은가?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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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먼저 2016-05-20 00:24:07
안녕하세요, 기자님. 기사, 잘 읽었습니다. 벙어리의 권장용어는 언어장애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댓글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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