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 재난 ‘ADR’ 시스템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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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가 재난 ‘ADR’ 시스템의 중요성
  • 문강분
  • 승인 2016.04.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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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분 노무사(법학박사/노무법인 유앤)

2014년 4월 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침몰했다. 세월호가 침몰해 가던 102분간은 생생하게 중계되었고 이 사건은 결국 30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국가재난이 되었다. 이 참사는 그날에 멈추지 아니하고 사고 직후 단원고 교감과 단원고 학생 아버지의 자살, 극적으로 20여명의 아이들을 구했던 의인 김동수씨의 여러 차례에 걸친 자해 시도 등으로 이어졌으며 광화문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 역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간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에 대한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논란 끝에 2014년 11월, 2015년 1월 각각 제정되고 곧바로 세월호 선장 이준석에 대한 무기징역확정 등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이루어졌지만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 및 피해보상에 대한 논란도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더욱 증폭, 이제 관련 사건은 법률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국가배상을 거부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 언론사는 올 초부터 4월 초까지만 해도 세월호 관련 소송이 총 86건 선고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세월호 유족이나 일반 시민이 도심 집회에 참가했다가 교통과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로 형사처벌이 내려진 것이 각각 29건·12건, 세월호 유가족을 상대로 “세금도둑”, “시체장사를 한다”, 혹은 “입시특혜”라는 등의 악플을 단 블로거에 대해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를 인정한 사건들이 그것이다. 

필자가 미국에 머물던 2012-2013년 당시 온갖 매체에 홍수를 이루던 9·11 테러의 재조명 방송들을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재난이 생중계되었다는 점과 국민 전체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세월호 사건이 9·11테러와 비견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군의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을 받으면서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이 생명을 잃었던 9·11 사건. 이처럼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보다 신속하고 구체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재난보상을 실시하기 위하여 새로운 방안을 도입하였다. 법에서 보상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정한 후 법무부장관(U.S. Attorney General)이 임명한 특별심사관(Special Master)이 접수된 보상요청에 대하여 보상절차와 보상금액을 산정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는 정형적인 피해를 산출하기 어려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보상금액 산출”이라는 행정청의 의사결정과정에 보상대상자들에 대한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는 “조정과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대체적 분쟁해결방법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이하 ADR)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검사출신의 민간 전문가 페인버그 변호사(Kenneth Feinberg)를 특별심사관으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33개월의 활동기간 동안 단 97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상자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상을 종결하였다고 했다. 이러한 성과는 보상분야에 대한 페인버그 변호사의 탁월한 전문성에서만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없다. 그 또한 인간으로서의 복잡다단한 본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특별한 스토리에 주목하면서 대상자들의 감정과 분노 그리고 절망에 적절하게 대처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는 아내를 잃은 한 남편이 심리에서 결혼비디오를 시청하자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무역센터 103층에 갇혀 작별인사를 나누던 아내의 절규가 담긴 전화자동응답기 내용도 그의 요청대로 심리 도중 기꺼이 청취했다. 그는 재직기간 동안 무급으로 헌신(Pro bono)하면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로도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사건, BP 기름유출사건 등의 대형재난의 보상기금 등 정부와 기업의 분쟁해결에 대한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고 있다.  

9·11이라는 재난에 대하여 10일만에 법률을 통과시키고 피해자의 구체적 사정을 수렴하는 대안적 분쟁해결방식으로 이들의 보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미국이 1970년대부터 입법, 사법, 행정 모든 분야에서 비소송적 분쟁해결시스템이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로스쿨에서의 ADR 기초교육을 비롯하여, 교육시스템이 중층적으로 축적되어 있고, 실무적인 영역도 개발되어 페인버그 변호사와 같이 신뢰받을 수 있는 중립적 제3자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바쁘게 많은 것을 진행해왔다. 입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위원회를 운영하고 시민단체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우리 모두는 노란리본을 달면서...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들의 상처를 온전히 보듬고 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으로 오늘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은 팩트다.

진상조사와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는 그들이 아닌 우리 전체가 구해야할 몫이다. 눈앞에서 102분간 침몰하는 세월호를 눈뜨고 지켜보며 사랑하는 이를 잃어야 했던 유족과 생존자들에게 무차별하게 모욕하는 시민의식, 법정의 원고와 피고로 세우고야 마는 사법시스템, 시위대와 농성장의 맨 앞자리에 내모는 사회여서는 안 되겠다. 

그들의 고통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어루만지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ADR적 접근이 하나의 해결방안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적합한 대형재난에 분쟁해결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로 세월호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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