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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과 유럽사이에서 내린 위대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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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과 유럽사이에서 내린 위대한 선택
  • 신희섭
  • 승인 2016.04.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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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대한민국 국민들 참 대단하다. 4월 13일 20대 총선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단함을 넘어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 이번 선거는 많은 이들의 예측을 완전히 깨뜨리는 절묘한 수의 배열을 보여주었다. 집권당을 제 2 당으로 추락시켰고 더불어민주당을 제 1당으로 만들었지만 정당투표에서는 3위로 밀어냈다. 국민의당이 26.74%로 득표율에서 새누리당(33.50%)다음이고 더불어민주당(25.54%)보다 앞선다. 지역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105석을 얻은 데 비해 더불어민주당이 110석으로 5석을 더 많이 얻었다. 국민의 당은 25석을 얻었다. 
 
선거결과를 가지고 해석하자면 ‘저항투표(protest voting)’의 전형이다. 대통령의 독선과 옥쇄파동으로 대표되는 여당내 공천과정은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참패를 당했고 영남에서 지지기반이 흔들렸다. 새누리당은 서울 49개의 의석 중에서 13개를 건졌다. 새누리당은 묻지마 투표를 보였던 강남 3구에서 3석(강남을, 송파을, 송파병)의 자리를 내주었다. 수도권으로 보면 전체 122석 중에서 새누리당이 35석을 얻은 반면에 민주당은 82석을 획득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수도권 27석과 서울 16석으로 민주통합당이 수도권 35석과 서울 30석을 획득한 것과 대비된다.   
 
새누리당을 그나마 100석 이상으로 버티게 해준 것은 영남의 유권자들이다. 하지만 영남내 성적은 새누리당에게 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영남 67개 의석 중에서 63개를 얻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48개만 얻었다. 9개의 의석을 더 민주에 내주었고 정의당이 1석 그리고 무소속이 7석을 차지했다. 19대에서 민주통합당이 3석과 무소속 1석을 가져간 것과 비교하면 무려 15개의 집토끼에 해당하는 의석을 날린 것이다. 오만함이 원인이다. 
 
저항투표가 새누리당에만 나타났는가?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 강세인 수도권지역의 의석수가 10석이나 증대해서 의석수가 늘어났지만 국민의당에게 호남의석을 빼앗겼다. 19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호남 전체 30석 중에서 25석을 차지했다. 이 지역은 완전히 집토끼였다. 그런데 20대에서는 전체 31개 의석 중 국민의당이 23석을 확보했고 더불어민주당이 6석을 새누리당이 2석을 확보했다. 게다가 정당지지율에서는 국민의 당보다 1.2% 뒤졌다. 집권경험이 있는 정당이 선거 직전 창당한 정당보다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결과 역시 더불어민주당 내의 오만함 때문이다. 
   
지역 내에서는 될 사람을 밀어주면서 정당에서는 표를 빼앗은 ‘교차투표’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정당을 심판했다. 결과는 단순하게 설명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이나 더불어민주당의 무능함과 아집이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당에 좋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정치학자 피오리나(Morris P. Fiorina)의 개념을 빌리자면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가 동시에 작동한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낮은 정당지지나 지역에서의 묻지마식 투표 포기는 이들 정당에 대한 경고를 넘어선 처벌로서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가 적용된 것이다. 반면에 이제 막 정당정치를 시작한 안철수대표와 국민의 당에 대해서는 미래를 기대하겠으니 좋은 인물을 영입하고 선명한 정책을 기대한다는 선물로서 ‘전망적투표(prospective voting)’가 적용된 것이다.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대한 유권자가 가진 2개의 표는 이런 방식으로 정당들을 훈육했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위대한 것은 단지 선거공학적으로 두 개의 표를 어떻게 활용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를 교육할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큰 의미를 부여할 부분은 3가지이다. 
 
첫 번째,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절대권력과 같이 권력자가 안주하거나 권력보유 혹은 행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냥은 못 넘어간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은 박근혜대통령의 권력행사와 더불어민주당 친노진영의 권력행사방식에 대한 불만에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저항정신과 행동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휴전 이후 7년만인 1960년에 4.19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불러오는 기적을 보였다. 1979년에는 유신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있었고 1980년 광주에서는 민주주의를 불러오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1987년에는 민주화를 이룩해냈다. 불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정신은 일상에서 지쳐있던 시민들을 깨우기에 충분히 강력하다. 이번 선거에 대해 비민주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복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행사에 대해 언제든지 유권자는 냉정한 심판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당들이 유권자를 집토끼처럼 생각하면 집토끼에게 물릴 수도 있다. 2004년 대통령탄핵을 생각해보라. 
   
두 번째, 대통령제도의 본질이 ‘자유’에 있는데 대한민국유권자들은 대통령제도의 본질로 돌아가서 판을 깔아 준 것이다. 대통령제는 불신의 제도이다. 오죽 권력자를 믿지 못하면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를 각각 따로 실시해서 유권자의 뜻을 구분하겠는가? 몽테스키외가 주장한대로 위대한 ‘이원적 정통성’이 작동한다. 유권자가 자유를 원한다면 대통령과 의회에 따로 권력을 주라고 한다. 
   
대통령제도는 태생이 갈등이다. 제도적으로 대통령과 의회가 갈등하게 만들어 두고 대통령과 의회의원들에게 기대한 것은 대화하고 설득하고 포용하여 리더십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명령한다. 대통령에게 소통을 하라고. 그리고 의회를 비난의 대상이나 적대적 세력으로 여기지 말로 보듬어 안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제도가 갈등을 일상으로 만들어준다면 해법은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풀어야 한다.   
   
세 번째, 대한민국정치의 제도적 혼용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미국식제도와 유럽식 제도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사용하는 대통령제도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반면에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정당정치는 유럽산이다. 특히 다당제에 정당 규율이 강력한 것은 종교, 언어, 인종 등 복잡한 사회갈등을 가진 유럽의 제도이다. 원래 대통령제도를 원활하게 작동시키려면 정당이 약해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이 산다. 그리고 양당제가 편하다. 의회에서 대통령소속정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야 대통령과 의회가 협조를 하기 쉽다. 정당의 규율이 강하고 다당제가 되면 대통령은 할 만한 직업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대통령에게는 잘 해보라고 50%정도의 지지를 보내주지만 의회에서는 여러 정당에 지지를 보내주었다. 다음에 어느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든 그 대통령은 2020년까지 다당제와 대통령제라는 난해한 제도적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정당에게 애를 먹게 하려고 한 것인지 리더십을 통해 협력적 통치를 하라고 한 것인지와 관계없이 현재 선거결과는 미국제도와 유럽제도 사이에서 한국적 리더십을 기대하게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선거라는 집단적인 선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그리고 공은 정치지도자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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