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이 추구하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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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이 추구하는 정의
  • 전광출
  • 승인 2016.04.15 15: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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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출 변리사·한국저작권법학회 이사

‘법’이란 말은 친숙하다. 여기저기 하도 많이 써서 뜻도 모른 채 무심결에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 이치에 닿지 않은 말을 하면 “그런 법이 어디 있니?”라고 반문하는 식이다. 수식어가 붙은 단어도 많다. 법치, 준법, 위법, 법망에서부터 헌법, 민법, 형법은 물론 법칙, 어법, 서법, 용법 등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저명한 법철학자 라드부르흐를 존경했던 최종고 교수는 저서 법학통론에서 “법이란 물과 같이 공평하게 정의가 실현되는 것, 우리말로 보면 ‘본’, 지상에 있으되 꼭 있어야 할 상태, 그래서 남의 모범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요약했다. 

‘정의’(正義)는 조문에 적혀있지 않지만 모든 법이 지향하는 궁극 목적이다. 법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의 법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법 자체도 그렇지만 법해석도 마찬가지다. 법치를 모독하는 망발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해관계가 대립할 경우 해당 조문은 단지 힘의 균형관계만 나타내는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조문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학이 이유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유를 알면 공부도 재미있다. 이유를 따져 알면 수많은 조문이 논리정연하게 꿰어진다. 이른바 법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힘의 관계가 반영된 조문이다. 

요즘, 변호사단체와 변리사·세무사 단체 사이의 갈등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변리사법과 세무사법에 있다. 이 두 법이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떤 변호사의 명함을 받아보니 “변호사·변리사·세무사 아무개”라고 적혀 있었다. 세 가지 시험을 모두 합격한 3관왕 같다. 명함만 보면 수재다.

법이 왜 이렇게 되어 있을까. 누구나 자격을 얻으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시험 말고도 자격을 취득하는 길이 있다니. 이것이 타당할까. 법이 추구하는 정의일까.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논리와 정의를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법조권력의 오래되고 불합리한 힘이 숨어 있다. 

본시 자격이란 특정한 업무를 할 때 필요한 면허제도다. 자격증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우선, 그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이나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일반국민이 위험에 놓이는 분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운전면허증은 자동차 운전에 꼭 필요한 기능을 갖춘 이에게만 발급한다. 대충 발급하면 어떻게 될까. 보행자가 다친다. 이웃 운전자가 죽는다.

두 번째로는 자격증끼리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면허증과 중장비면허증이 호환되지 않는다. 치과의사와 일반의사의 자격증이 호환되지 않는다. 하나의 자격증으로 다른 자격 업무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다친다. 죽는다. 그래서 엄격한 시험절차를 통과해야만 면허증을 내준다.

세 번째는 자격증만 있다면 국민이 안전할까. 기능과 지식 응용에 전문가가 되기까지 실무경험 즉,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논증해보자. 첫째, 변호사시험은 일반 법률에 관한 지식과 문제해결 능력의 검증을 목표로 한다. 일반법만 필수과목이다. 변리사나 세무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변리사와 세무사자격증을 그냥 줘도 국민이 안전할까.

둘째, 변호사자격증과 변리사자격증이 호환이 될까. 특허법 하나만 봐도 조문이 232개다. 여기에 상표법, 디자인법까지 필수과목이다. 모두 일반 소유권법리와는 사뭇 다른 무체재산권의 법리가 녹아 있다.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사고도 필요하다. 조약도 포함되어 있다. 특허쪽만 파리조약, 국제특허협력조약, 미생물기탁에 관한 조약 등 한 두 개가 아니다. 자격증이 호환된다면 발명가의 지식재산이 안전할까.

셋째, 일반 변호사는 오만가지 법률을 다룬다. 특허말고도 일이 쉽고 수입 좋은 분야가 많다. 그런데도 복잡하고 어려운 특허법과 기술에 장기간 몰입하면서 지식재산권의 법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특수한 지식이 검증되지 않은 자동자격증을 들고 이곳저곳 일감만 찾은 전문가에게 내 발명과 디자인, 상표권을 맡겨도 괜찮을까.

다시 최종고의 법학통론을 펼친다. 우리말로 보면 ‘본’, 지상에 있으되 꼭 있어야 할 상태, 그래서 남의 모범이 되는 상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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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필 2016-04-16 17:39:37
논리는 자명하나, 힘에 밀리는 것만큼 사람을 허탈하게 하는 것도 없는 듯 합니다.

ㅇㅇ 2016-04-15 19:36:05
구구절절 옳은 말씀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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