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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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8)
  • 박준연
  • 승인 2016.04.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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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오피스메이트

지금 회사에선 방, 그러니까 오피스를 따로 쓰고 있지만 뉴욕에서 일할 때는 다른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와 오피스를 함께 썼다. 회사마다 방침이 조금씩 다르지만 예전 회사에서는 4년차가 될 때까지는 변호사 둘이 오피스를 나누어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뉴욕의 로펌들은 대부분이 그렇고, 같은 회사라도 지역이 다르면 1년차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게 혼자 오피스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로펌의 휴스턴 오피스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가 공간이 넉넉해서 1년차 변호사들도 뉴욕의 파트너 변호사 오피스 크기의 오피스를 배정받는다는 것이었다. 

예전 회사에서 오피스를 배정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름 프로그램때는 같은 여름 프로그램으로 들어온 동기들과 오피스를 나누어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3년차 어소시에이트 변호사 A와 함께 여름을 보냈다. 그 전까지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오피스메이트의 회사 생활을 옆에서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A와 친한 동기 또다른 A가 오피스에 자주 놀러왔다. 그 A는 일이 바쁠 때도 늘 멋있게 차려입었다. 내가 “일도 바쁜데 늘 옷차림이 완벽하고 대단하다”고 했을 때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최소한 겉모습이라도 완벽하게 보여야지 (Fake it if you can’t make it).” 

로스쿨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면서는 동기 B와 오피스를 나누어쓰게 되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B와 함께 보낼 때도 없지 않았다. 특히 일이 바쁠 때는 좁은 공간을 둘이 공유하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B는 혼잣말을 가끔 했는데,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거슬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불편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여름 2개월을 보낸 회사라고 해도 정식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하는 사소한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선배직원이나 다른 동료들한테 물어볼 수도 있지만 가장 묻기 편한 것이 B였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서로 확인해주기도 했다. 일이 힘들 때면 격려를 해주고, 불평불만을 들어주기도 했다. 일이 조용할 때는 긴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일이 바빠져서 몇 주일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일했을 때 나는 B한테 이렇게 말했다. “이게 행복한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B는 술한잔 하러 가자고 했었다. 

뉴욕의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큰 눈이나 허리케인으로 회사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집에서 일을 하기 수월하지 않기도 하고, 마침 회사로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에 살기도 해서 그런 와중에도 회사에 가면, 어김없이 B가 있곤 했다. 그때는 회사에 우리 둘만 있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B와 내가 함께 썼던 오피스는 마침 출입문 근처에 있기도 해서, 같은 층의 동기, 선후배들이 많이 모이기도 했다. 며칠 전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몇 년 전 내 생일에 컵케이크 박스를 앞에 두고 B, 같은 층의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 나와서 그때 생각이 났다. 일이 한가할 땐 문을 닫아놓고 긴 수다를 떨던 멤버들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B는 회사를 한번 옮기고, 지금은 예전부터 원하던대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1년 후배인 C는 고향인 하와이로 가서 그곳의 큰 로펌에서 일하다가 정부기관으로 옮겼다. C의 오피스메이트이고 역시 1년 후배인 B는 다른 주로 이사를 가면서 변호사 일을 그만두었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는 첫 날, 널찍한 오피스가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건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피스메이트 없는 오피스가 낯설기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찍어 이메일을 보냈더니 언제나처럼 능청스러운 “보고싶어서 연락했구나” 하는 답이 돌아왔다. B가 있어서 첫 회사 생활이 조금은 덜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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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 2016-04-16 17:12:48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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