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소리]새우깡과 족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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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소리]새우깡과 족발(3)
  • 법률저널
  • 승인 2004.04.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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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낮잠에서 깨어보니 파견 온 날이 일요일인지라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대 근처에 친척 형이 살고 있었는데 내가 자대 배치를 그 근처로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면회를 온 것이다. 그런데 원래 부대에서 이곳 파견 나온 곳을 가르쳐 주어 곧바로 뒤 쫓아 왔다며 반가워했다. 첫 면회를 남의 부대에서 하게 된 나는 파견병은 외출이 금지된다는 인사계의 지시로 PX에서 잠시 이야기만 하고 자주 오겠다며 아쉬워하는 형을 보냈다.

첫 날부터 '저 놈은 심상치 않은 놈'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파견 생활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군기가 하늘을 치솟을 만큼 들어 있던 불과 며칠 전과 달리 서서히 그들의 무리 속에서 말년병장의 모습으로 변해 모자와 군복에 붙어 있는 가냘픈 이등병 계급장만 제외하고는 퍼펙트한 말년병장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보면 스스로 가끔씩 깜짝 놀라곤 했다.


파견병들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형식상의 무늬만 점호를 받고 식사 배식 할 때까지 어디든 짱 박혀서 잔다. 그러다 배식 시간이면 칼 같이 일어나 그 부대 기간병들보다 먼저 식사를 하고(그들한테는 미운 오리새끼가 따로 없었다) 집합시간인 8시까지 또 잔다. 작업장으로 가서 공병대 소대장의 출석 체크와 작업지시가 끝나면 몇 명씩 조를 나누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격장의 형태는 설계도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뿐 작업장은 산이 전부다. 어느 세월에 저 산을 까 내려 일을 완성 시킬까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 밖의 일이다. 오히려 어떡하면 작업을 질질 끌어 이 행복한 파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까 만이 주된 관심사였다. 조를 나눠 흩어진 그들은 오전 목표량이 나무 한 개씩 베는 것이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교대로 톱질을 해서 나무를 베면(굵기 때문에 30분정도 소요됨), 바로 각자 만들어 놓은 아지트로 들어가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알아서들 시간을 보낸다. 어떤 파견병은 파견 올 때 숟가락을 깜박하고 안 챙겨 오는 바람에 항상 남들이 다 먹고 나면 빌려서 먹는게 귀찮았던지 며칠 째 나무로 숟가락을 만들고 있었고, 보통은 잠만 잤다. 오후에도 나무 하나 베고 나면 각자 알아서들 까지는데, 이 때는 순번을 정해 부식추진을 위해 돈을 걷는다. 보통 라면이나 사다가 끓여 먹는 게 아니었다. 막걸리는 빠질 수 없는 음료였고, 갖가지 안주가 등장 했다. 주변의 인근 마을에서 닭을 싸게 사다가 삶아도 먹고, 사방에 널린 게 옥수수라서 꺽어다가 삶아도 먹고 구워도 먹다 보면 하루가 갔다. 내가 당번이 되면 안주로 구멍가게에 가서 항상 새우깡만 사왔다. 내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파견병이 막걸리는 안 먹고 새우깡만 먹는 나를 보더니 앞으로 새우깡을 먹으려면 막걸리 한잔씩 먹고 먹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술에 취한적도 많았다.

꿈같은 파견생활을 한창하고 있던 어느 날, 부대에서 정상병과 나를 데리러 왔다. 복귀명령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날벼락이었다. 아직 공사는 반도 안했는데 푹신하게 만들어 놓은 내 아지트는 또 어쩌고 복귀를 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말년병장 같은 생활이 몸에 베었는데 이대로 부대로 돌아가서 어떻게 적응을 할 것인가가 제일 문제였다. 복귀 이유는 유격훈련이 있는데 열외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대대장의 특별지시로 파견 나온 우리까지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머리는 어느새 길어 말년병장같이 되어버렸는데 깍지도 못하고 부대에 돌아가니 고참들이 나를 보고 경례를 하며 놀려댔다. 첫 유격훈련이다.

유격장에서도 고참들은 밤에 간부들 몰래 소주를 구해다 먹었다. 안주는 새우깡이었다. 그날 밤도 내게 주어진 임무는 소주 한잔에 새우깡 한 개였다. 비 오는 날 밤에 후배와 콜라로 족발을 먹고 있자니 자꾸 새우깡이 생각이 나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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