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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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0)
  • 신종범
  • 승인 2016.04.0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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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지금도 그렇지만 고시공부하던 때에도 토요일이 기다려졌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의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하였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난 다음 즐기는 여유가 훨씬 달콤하기에 좀 더 달콤함을 즐기기 위하여 토요일 저녁이 가까이 올수록 더 집중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주간의 공부를 마무리하고 스스로에게 주었던 보상 중 하나가 주말에 방영했던 TV 사극을 보는 것이었다. 당시 꽤 재미있게 보았던 TV 사극이 ‘태조 왕건’이었다. 제목에서 보듯 주인공은 ‘왕건’이었지만 왕건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사람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모셨던 후고구려의 ‘궁예’였다. 궁예는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후고구려를 건국하였지만 신라 왕실 출신으로 호족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궁예는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궁예는 금빛 모자를 쓰고 승복을 입고선 스스로를 세상을 구할 미륵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나는 신통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며 관심법(觀心法)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해 나갔다. 궁예는 관심법으로 많은 호족 출신의 관료와 장군들을 숙청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져 나갔지만, 나중에는 왕비와 왕자까지 죽이는 광기에 이르게 된다. 왕비가 궁예의 실정을 비판하자 궁예는 말한다. “네가 다른 사람과 간음하니 어찌된 일인가?” 왕비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자 궁예가 다시 말한다. “나는 관심법으로 부인의 음사(淫私)를 능히 알 수 있다. 나의 관심법에 걸리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준엄한 법을 시행하겠다” 심판자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에 따라 심판하겠다고 하니 이와 다른 주장과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궁예는 그렇게 신뢰하던 왕건마저 관심법으로 몰아붙이다 결국 왕건에 의하여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변호사로 개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맡은 사건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았기에 더욱 세심하게 준비한다고 열심히 했다. 첫 기일이 열리던 날 상대방 변호사가 답변서만 제출하고 나오지 않았다. 재판장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더 제출할 증거나 주장할 것이 없는지 묻는다. ‘아, 이번 사건은 이렇게 쉽게 끝나는 구나’ 쉽게 전부승소 판결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판결 선고일 예상은 빗나갔고 일부승소 판결이 나왔다. 일부 청구원인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판결 이유가 있었다. 판결문을 보며 생각했다. ‘그 때 재판장님의 미소와 친절함은 무슨 의미였을까?’

얼마 전에는 1심에서 승소한 사건 항소심 최종 변론이 있었다. 더 이상 진행할 것이 없었기에 기일에 참석하고 별 문제 없이 변론이 종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심에서부터 항소심에서의 지난 몇 차례 기일까지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던 사실 관계를 재판장님이 물어 본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름 논리적으로 그에 대한 답변을 했다. 변론은 종결되었고 재판을 마치고 오는 내내 머릿 속에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재판장님은 왜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물어 보았을까?’, ‘재판부의 심증은 무엇일까?’

궁예가 가졌다고 주장한 관심법이 부러웠다. 관심법을 가지고 있다면 재판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재판부의 심증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승소율도 꽤 높아질 것이다. 위 첫 사건에서 필자는 재판장님의 미소와 친절함이 전부승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재판부의 심증은 그렇지 않았다. 관심법으로 재판부의 마음을 읽었다면 변론을 종결하지 않고 필요한 증거를 더 찾아 제출했을 것이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재판부의 심증을 몰라 노심초사 하고 있다. 역시 필자에게 관심법이 있다면 재판부의 심증을 알기 위해 속을 끓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관심법을 가질 수는 없다. 궁예도 실제 관심법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관심법이 있다고 사람들을 속였을 뿐이다. 다행히 우리 재판은 궁예가 심판하듯 재판관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증거를 가지고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법리를 통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사실관계를 철저히 분석하고 입증과 주장을 명확히 한다면 재판부의 심증은 그러한 방향으로 형성된다. 예전에는 재판부와 인연이 있으면 재판부의 심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필자가 아는 한 그렇지는 않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도저히 터득할 수 없는 관심(觀心)이 아니라 사건과 의뢰인에 대한 좀 더 깊은 관심(關心)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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