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개념규정과 개념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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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개념규정과 개념구속
  • 신희섭
  • 승인 2016.04.0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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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요즘 팔이 저린다. 특히 오른 쪽 팔이 매 시간 저린다. 처음에는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저렸다. 그리고 한 번 저리면 1-2분 정도. 운동 할 때 팔이 긴장한 듯이 뻐근했다. 그러더니 요즘은 그 주기가 빨라지고 길어졌다. 팔이 욱신 욱신하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이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건강한 몸뚱이라 크게 걱정을 안했지만 통증이 반복되니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X-ray촬영을 하고 진찰을 보았다. 의사선생님께서 병명을 주셨다. 약한 목디스크. 디스크는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사분의 입에서 디스크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만들거나 타이핑을 하는 일이 많고 답안지 채점을 하거나 논문을 보다 보니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지고 거북이 목처럼 늘어나는 일이 많다. 이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평상시에 구부정하게 다닌다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이런 습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컴퓨터를 보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목에 무리를 준 는 일도 늘었다. 이 또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진료를 본 뒤에 왜 팔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목건강이 나빠졌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원인들은 명확하다. 이유를 알겠는데도 자꾸 “왜?”를 곱씹게 된다.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다.

진료를 본 당일 하루가 길었다. 하루 종일 디스크 생각에 우울했다. 주변에 디스크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많으니 꽤나 오래 고통을 받을 것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와 치료를 받으러 다닐 생각 등등 하루 종일 걱정과 싸우느라 무기력해졌다. 디스크 환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늘어져서 낮잠도 좀 더 길게 잤다. 눈을 뜨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환자가 되었으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라는 생각이 앞섰다.

저녁이 되어 아주 가까운 한의사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찌 하면 좋은지 조언도 구하고 다소 위로도 받아보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한의사선생님 말씀에 한 방 더 크게 얻어맞았다. 병원에 가서 병을 얻어왔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디스크라는 병명을 얻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증상이 무엇이었건 건강은 나빠져있고 몸에 문제는 있는데 이것을 병원에서 ‘목 디스크’라고 진단을 받는 순간 실제 ‘병명’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병을 얻은 환자가 된 것이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정확히는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깨우침.

잠깐 이지만 하루를 돌이켜보면 내가 나 자신을 병에 가둔 것이다. 만약 팔이 저리고 이것이 최근 너무 목을 혹사해서 생긴 일이라 약간 쉴 수 있을 때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바쁜 생활을 조금만 벋어나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유연하게 생각하면 어땠을까? 생활습관을 고치면서 그저 요즘 컨디션이 나쁘네라며 넘어갔다면? 그럼 개선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마음을 먹는다고 지금의 증상이 사라지거나 염증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온 병이니 일상을 변화시키면 점진적 치유를 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디스크를 병원에서 진단받고 그 단어를 받아들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목디스크를 진단한 것이다. 병원의 의사분이 진단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진단을 한 것이 문제이다. 스스로 병명에 구속되어 목 디스크 환자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질병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의 실체가 없는데 몸이 아픈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목에는 문제가 있고 신경을 막아서 팔이 저릿 저릿하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그러나 병명으로 마음이 확인을 하니 병명이란 개념에 감금된 것이다.

한의사선생님 말씀처럼 근본적 원인이 일상생활에 있으니 일상생활을 고치는 것이 답이다. 현재 증상을 완화시키고 치유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다. 그렇다. 주사를 맞고 수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이 바뀌지 않는 한 다시 재발할 것이다. 게다가 디스크가 있으니 모든 활동에서 스스로를 제약할 것이다. 그렇게 ‘환자화(patientization)’가 진행되는 것이다. 환자가 환자 스스로를 환자로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병이 없었으나 의식에 의해 질병이 만들어진다거나, 디스크환자들이 단지 병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약해서 디스크환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어떤 병에 마음이 구속되면 개선의지가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주변에 암진단을 받고도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암을 이겨낸 분들이 있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이 물리적 질병에 지배당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학에 화행론(話行論)이 있다. 언어가 분석하고 진술하는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행동을 권하고 실행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식장에서 주례가 신부에게 “평생 신랑을 사랑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 진술은 타당한지 타당하지 않은지가 관건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 살라는 명령이 되는 것이다. 언어는 분석을 위한 개념적 도구를 넘어 실천의 힘이 있다.

병명 역시 단지 현상을 매개하는 분석도구만은 아니다. 병명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행동에 옮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개념의 힘에 굴복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개념규정과 개념구속의 딜레마를 만난다. 어떤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정하기 위해서는 개념 규정이 필요하다. ‘진보(progressive)’가 '급진(radical)'과 어떻게 다른지나 ‘보수(conservative)’가 ‘수구(reactionary)’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명확한 개념규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여 모호한 생각들을 명료하게 재단하고 어느 쪽에 좀 더 가까운지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개념규정에 한 번 들어가면 그 개념에 구속된다. 개념은 스스로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가치관들을 배제하거나 재단한다. 과거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의 정체성을 규정한 개념에 갇힌 경우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삶의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80년대의 개념에 구속된 경우도 있다.

이 주장 또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좀 더 부유해진 환경에서 낡은 진보적 가치를 고집한다는 것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 변화처럼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개념에 얽매여서 다양하고 유연한 시각을 방해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개념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단순하고 명료한 현실의 구획. 하지만 현실의 단순화와 구속. 병명에 자신의 몸을 구속하는 것처럼 사회현실 또한 개념구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지점에서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병명으로부터의 자유와 사회적 가치와 이념에 대한 집착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한 자유. ‘관념에서의 자유’를 꿈꿔보는 것은 진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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