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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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26)
  • 박준연
  • 승인 2016.04.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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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일상이라는 마술 

AIKOM (Abroad in Komaba)이라고 불리는 도쿄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는 도쿄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도쿄대학과 교류하는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 학생들과 도쿄대학에서 교류대학 중 한 곳으로 교환 유학을 갈 일본 학생들의 교류였다. 

어느 늦여름 주말 일본 사회 세미나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필드트립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보는 1학년 학생을 만났다. 그는 최근 마술부 활동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필드트립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트럼프와 책을 이용한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후 그를 만날 기회도 없었고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와 나누었던 대화 중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마술부 부실은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별 대단한 것 없어. 비둘기를 키워. 그것도 많이.” 그 이후로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말을 곱씹어서 생각한다. 언뜻 마술처럼 보이는 결과물의 뒤에는 다소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있다. 

힘들지 않은 공부가 있을까 싶지만 로스쿨 3년은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어떤 이유로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지금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주변에 미국 로스쿨을 나온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용감하게 진학을 결심했다고 대답을 하곤 한다. 서울에서 입시와 고시 준비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 로스쿨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결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더더욱 힘들었다. 수업 내용은 그럭저럭 따라갔지만 수업중 가끔 농담이 나오거나, 다음주 과제 설명을 할 때는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공부가 힘들기도 했지만,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더더욱 힘들었다. 

시기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1학년 첫 학기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나오고 공부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던 1학년 2학기였다. 로스쿨 도서관의 열람실 대부분은 밤 11시 반에 문을 닫는데,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면 새벽 2시 반까지 하는 스터디 홀이 개방되었다. 밤 11시 반이 되면 책을 챙겨서 더 늦은시간까지 하는 스터디 홀로 옮겨서 1시반 정도까지 공부를 했다. 그 후 기숙사로 돌아가면, 창문 밖으로는 맨하탄 미드타운의 불빛이 보였다. 저렇게 반짝이는 불빛 속에 과연 내 자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보내는 일상은 헛되지 않아서, 학기말이 다가올 때쯤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부에 자신이 조금씩 붙는 게 느껴졌다. 1학년 2학기 기말시험을 치르고, 여름방학을 보내고 우여곡절을 거쳐 예전 회사에서 여름 프로그램 오퍼를 받았다. 그리고 졸업, 뉴욕 바 시험을 거쳐 불경기로 바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몇 달 후에 일을 시작한 것, 그 과정이 지금 생각해보면 마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뉴욕에서 로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일에서 보람도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매일매일이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에서 도쿄로 옮겨오는 과정, 7-8년을 생활한 뉴욕을 떠나서 도쿄에 정착하고 새 회사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업무를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는지, 내가 놓친 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는지 하는 회의에 휩싸이는 순간도 없지 않았다. 그런 순간을 매번 현명하게 넘겨왔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럴 때는 가끔 가본 적도 없는 마술부 부실 새장 속의 비둘기를 생각하곤 한다. 비둘기를 키운다고 해서 반드시 마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둘기를 키우는 과정 없이 마술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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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2016-04-01 18:23:15
엄청난 글이에요.. 감탄하고 자극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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