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능멸과 분노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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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능멸과 분노의 정치
  • 신희섭
  • 승인 2016.03.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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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3월 24일 오늘부터 20대 총선에 나서는 이들이 등록을 한다. 선거정치가 본격적 개막을 알린다. 매 선거마다 그렇듯이 이번 선거에서도 공천이 또 문제다.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친이계를 쳐내면서 ‘학살’공천, ‘보복’공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월 23일 새누리당의 간판이자 박근혜대통령의 핵심 중에 한 사람이었던 유승민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복수의 정치가 작동하여 공천게임에 휘둘린 것이다. 공천을 둘러싼 내홍으로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갈라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도 다른 형태로 공천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야당이라는 같은 우산에 있지 않겠다고 국민의당을 만들어 나왔다. 하지만 인재 영입이 쉽지 않고 야당간 표 대결을 해봐야 의석수만 줄 것이 명확한 상황이 되었다. 공천을 위한 정당연합도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더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인 김종인위원장이 공천과정의 잡음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박근혜대통령과의 관계 청산, 비례후보 2번, 과거 전력 등등으로 인한 원성을 신경쓰는 것이다. 더민주당 최고위원들은 말리고 당내 잡음은 계속되자 더민주당 지지자들도 갈라서고 있다.

여의도 정치생태계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매체를 통해 여의도 정치생태계를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몇 주간의 공천 과정을 보면서 가장 갑갑한 것은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이다. 너무나 쉽게 분노하고 금방 삐지고 거기에 더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이번 선거로 앞으로 4년의 정치 인생이 걸려있기도 하고 길게는 자신의 정치인생 전반이 걸려있으니 공천과정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분노, 상대에 대한 능멸은 수준이하이다.

경쟁은 여의도의 정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민초들도 그보다 더한 경쟁 속에 산다. 직장에서 일과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하루하루 매출에 고통을 받는 자영업자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만드는 대학생들,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으로 치이는 초중고생들, 자기 아이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뼈 빠지게 하루를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묵묵하게 일상을 버텨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의할지 모르지만 공동체의 ‘대표’를 선출했을 때 대표는 시민들보다 더 나은 현량이라고 생각하고 선출을 한다. 물론 우리 서민들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 의견을 들어달라고 선출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 못한 사람을 우리대표로 뽑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서 국민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대표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보여야 할 모습은 인간으로서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수준은 되어야 한다.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국민들의 기대와 멀다. 소극적이고 비겁하고 야비하기까지 하다. 같은 동료 의원이거나 의원이었거나 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조차 없다. 같은 길을 가지 않으니 등을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능멸을 하고 상처를 낸다. 공당인 정당이 최고지도자의 사적인 기준으로 공천을 한다. 안 보이는 곳에서는 서슴없이 쌍욕까지 한다.

답단한 이야기를 바꿔보자. 얼마 전 첫째 아이가 학급회장 선거에 나갔다. 우연히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준비한 연설문을 보게 되었다. 그 연설문에는 자신이 반장이 되어서 친구들의 준비물을 못 챙긴 것을 챙겨주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특히 ‘자’를 가지고 오지 않은 친구들에게 자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자를 안가지고 와서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아이들이 많은 듯하다.

아이가 쓴 글에는 소박하지만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와 같은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아이를 도와주고 같이 즐겁게 지내고 싶은 작은 비전도 있었다.

아이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낙방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준비를 더 많이 했을 것이고 그 친구들이 학급회장과 부회장이 되었다. 첫째 아이는 조금 실망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나와 와이프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준비하는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이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기특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자신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족 누구도 이 일로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학급 친구들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고 자신이 결정을 하여 진심으로 호소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쟁에 나선 다른 친구들도 그보다 더 준비를 하고 친구들에게 작지만 진심어린 비전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 중 누군가가 한 표라도 더 얻었을 것이고 그 친구가 학급회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학급공동체에서의 아이들의 민주주의 실험이 부모들에 의해서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의 비전이 같은 반 아이를 설득하기 바라지 않는다. 아빠의 간섭에 의해서 화려한 연설문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과거에 보낸 경험에 기반을 두어 현재 아이들의 공동체가 좌우되기를 원치 않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준 용돈이 혹시 친구들에게 선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위해서만 쓰이는 선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 더한 것은 결과에 대해 부모가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아이의 삶이 아니고 개입한 부모의 삶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안타까움이 그 아이가 다른 아이에 대한 시샘과 시기와 미움이 되지 않아야 한다.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승자를 깎아내리고 패자가 된 자신을 도덕적으로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다. 승자의 방식에는 부정이 있었고 승장의 진정성이 약하고 자신의 진정성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심리적으로 자신의 ‘인지’를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첫째 딸아이가 4학년이 되어서도 학급회장 선거에 나가길 바란다. 그때도 자신이 연설문을 만들고 멋지게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면 좋겠다. 그 연설문이 잘 통해서 친구들에게 좀 더 많은 표를 받았으면 더 좋겠다. 진심이 통한다는 것을 어려서 배우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 믿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때도 혹시 결과가 나쁘게 된다고 해도 다른 친구를 원망하고 다른 친구의 나쁜 점을 들춰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도 다른 친구의 부모가 도와준 것 때문에 다른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안 듣기를 바란다. 친구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에서 아주 쿨 하게 결과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최소한 우리 아이가 지금의 정치권에 있는 어른들보다는 나은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지금 정치권에 있는 어른들이 현재를 부끄러워할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다음 선거 때는 우리 아이들에게 덜 부끄러웠으면 좋겠다. 같은 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쪽팔리지는”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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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6-03-25 14:53:33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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