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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너무나 인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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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너무나 인간다운
  • 신희섭
  • 승인 2016.03.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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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아름다운 배우 송중기와 그가 던지는 화려한 멘트를 넘어선 것이 있다. 최근 이세돌 9단이 검색어 1위를 한 것이다. 송중기는 여성보다 아름다운 미모로 여성들이 그리워하는 판타지 속에서 “그랬지 말입니다”를 날리며 가히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계를 대표하는 평범한 인물에 다소 화려하지는 않은 언변의 이세돌이 더 관심을 받는다.

인간계를 대표하는 이세돌이 인공지능과 싸워서 한 차례를 이겨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몰랐던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를 보면서 인공지능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기 때문도 아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사의 간격을 맞출 수 있는 희망을 전달해주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왜 이런 많은 관심을 받는가에 대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약 인간계를 대표한 이세돌 9단이 1번 기부터 이겼고 4번 기를 내주고 5번 기를 다시 찾아왔다면 어땠을까?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 경기에 지금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영역에 침범한 인공지능이 아직은 멀었다는 안도. 이 정도 따라온 기술발전에 대한 실감. 성찰의 계기. 뭐 이렇게 되면서 인류는 늘 살아왔던 대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반대이다. 3연패를 당하면서 인간계는 우선 충격을 받았다. “5연패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사후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알파고가 실제는 1202개의 컴퓨터로 연결된 구조로 엄청난 연산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마치 새로운 것처럼 제기되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이 훨씬 구조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주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구글이 유럽챔피언인 판후이 기사와 둘 때까지 아마추어기보만을 가지고 이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마기보를 이길 정도로 알고리즘을 만들고는 이세돌 9단과 싸우기 전에 프로기보를 가지고 준비를 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이 바둑을 두는 인간을 넘어서기 위해 “구글답게” 체계적 노력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알고 각성하게 된 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패배가 너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망함에 다양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준비 못한 것에 대한 위안을 찾고자 한다. 하다못해 다시 이세돌 9단이 둔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이세돌 9단이 좀 더 젊을 때 두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럼 왜 감당하기 힘든가? 인간이 만든 것에 대해 창조자인 인간이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인간이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창의력과 감각의 영역을 빼앗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점차 인간의 영역이 사라져갈 것이라고 하는 미래를 너무나도 빨리 당겨오고 있는 구글과 같은 기업의 창의력이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미쳐 준비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이세돌의 반상에서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기의 대결이 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불편한 충격으로 많은 담론을 만들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의 우울한 인간 군상에 대한 디스토피아식 예측이 나오고 있다. 1997년 체스경기에서 컴퓨터의 승리이후 인간과 컴퓨터가 같이 두면서 상호를 보완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당연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뒤처진 한국의 인공지능산업을 육성해서 한국의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알파고는 못 되어도 최소한 몇 수 앞을 보고 선진부야에 대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정치적 조언도 나온다.

구글은 ‘세기의 대결’에서 성공했다. 인간의 감각과 인공지능과 과학사이에서 현재 상항을 질문한 구글의 거대한 질문이 그리고 구글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구글의 기업가치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올라가는가는 피상적인 것이다. 이 보다는 ‘과연 인간이 어느 정도인데?’라는 인간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넘어서려는 구글의 도전정신이 대단한 것이다. 또한 인류에 보여줄 스토리를 완벽히 준비한 그 준비성이 일상속에 판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한 방 먹인 것이다.

구글의 아이디어, 인재들, 알고리즘과 체계들. 이들이 동양문화의 정수이자 감각의 공간인 바둑마저도 제패했다.

그래서 인간은 패배했는가?

이세돌 9단은 바둑경기를 끝내고 나서 “인류가 진 것이 아니다. 인간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라고 신은 인간을 완벽하게는 만들지 않았다. 신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위로를 주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감각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외로운 인간에게 같은 처지의 인간을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인간을 준 것이다. 혼자가 아닌 인간은 그렇게 해서 인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안될 것이 명확하지만 도전해보고 그 도전을 따라해 보는 사람들. 패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자신의 부족함으로 다른 이의 부족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딱딱한 이성의 등껍질을 털고 자유로운 감성으로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이들. 마음을 공감하고 기억을 나누면서 동시대 인생무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려는 아이는 인간의 노력을 대표한다. 부족함속에서도 일어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인간이 보여주는 인간다움이 아닐까? 인간은 패배하고 자극을 받고 같이 위로하고 같이 험담을 하면서도 동행을 한다. 그러니 알파고에게 진 분함과 억울함에 솔직해지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격한 공감이 사람들을 바둑판 앞으로 모은 것이다. 이세돌과 그의 친구들이 알파고를 이기기 위해 모인 것.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다. 혼자지만 또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을지로3가에 가면 ‘안성집’이 있다. 주인 할머니가 50년 넘어 을지로 공구골목에서 돼지갈비를 구워주면서 손님들을 맞이해주는 집이다. 어둡고 후진 골목에 후진 식당인테리어 때문에 젊은 이들은 내켜하지 않는 노포(老舖)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신 할머니가 손수 구워준 갈비는 어느 부분은 좀 타고 어느 부분에는 기름도 많다. 시끄러워서 뭐 하나 주문하려면 연세드신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질러야 하는 불편도 있다. 깨끗하고 너무 친절한 ‘봉피양’ 돼지갈비와 같은 체계적인 맛이 좋을 때도 있다. 어디를 가도 그 맛이 변함이 없고 그 기대만큼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기도 하고 변수가 많은 안성집이 땡길 때도 있다. 특히 거하게 취하고 싶을 때 ‘안성집’은 마음을 잘 받아준다.

체계적이고 기계적인 냉혹함을 느끼는 자본주의의 경쟁무대에서 위로받고 싶은 이들에게 문화공간인 바둑을 인공지능에 빼앗긴 것은 승패를 넘어선 충격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허름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안성집’이 있다. 거기서 알파고를 씹으면서 소주 한 잔으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한 번 지면 어떤까?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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