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웰다잉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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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웰다잉 보장해야
  • 김현
  • 승인 2016.03.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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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대한변협 변호사연수원장(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살아온 날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중요하다. 웰다잉은 고령화 및 가족 해체와  맞물려 등장했으며,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됨을 의미한다.

2016년 1월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2009년 식물인간인 김 할머니 보호자 측의 연명의료 중단요구를 대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논의가 시작돼 이번에 결실을 본 것이다. 핵심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다. 암환자에게만 지원되던 호스피스 서비스를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말기 환자에게도 적용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환자이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의 기간만 연장하는 것이다. 연명의료를 엄격한 요건 하에 중단할 수 있고, 통증완화, 영양분·산소·물 공급은 계속 이루어진다. 단순히 고통을 끝내기 위한 안락사가 아니라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태국 등이다. 네덜란드는 2000년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고, 벨기에도 2002년 존엄사를 합법화했다. 독일은 1993년 병원이 식물인간인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은 무죄라는 판례를 바탕으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스위스는 말기 환자에 대한 약물 처방 중단을 사실상 묵인한다. 미국 40개 주는 가족의 동의 아래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을 인정하고, 캐나다와 일본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환자의 고통과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 고통 제거 수단 유무에 따라 허용하기도 한다.

연명의료법이 엄격하고 까다로운 조건하에서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고 연명의료 중단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밝혔으나, 그래도 우려되는 것이 연명의료 중단의 오남용이다. 상속을 둘러싼 패륜이 흔한 상황이라, 환자의 자녀들이 재산을 노리고 연명의료중단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특히 문제다.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에 대해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진술이 있더라도 이를 환자의 의사로 무조건 간주하지 말고, 환자의 유언장, 일기, 영상, 녹취록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보완해 가족들이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중단을 남용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또 연명의료법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과 호스피스 병상 수가 말기 암환자 등 대상 환자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연명의료법의 제정과 더불어 그에 걸맞은 의료환경 조성을 통해 웰다잉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엄한 죽음이 아니라 위중한 환자가 방치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연명의료법이 제정된 것은 인간이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자기결정권이 제도화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의사 입장에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데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면 살인방조로 처벌될 우려가 있어 환자와 가족의 요청에 불구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환자는 물론 고통스런 연명치료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과 의사를 위해서도 다행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생명경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의료윤리교육이 더 강화되어야 하고 연명의료중단을 남용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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